7월 20일 화요일–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사도행전 9:36-40 (개역개정, NIV)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36 In Joppa there was a disciple named Tabitha (which, when translated, is Dorcas), who was always doing good and helping the poor.
37 About that time she became sick and died, and her body was washed and placed in an upstairs room.
38 Lydda was near Joppa; so when the disciples heard that Peter was in Lydda, they sent two men to him and urged him, "Please come at once!"
39 Peter went with them, and when he arrived he was taken upstairs to the room. All the widows stood around him, crying and showing him the robes and other clothing that Dorcas had made while she was still with them.
40 Peter sent them all out of the room; then he got down on his knees and prayed. Turning toward the dead woman, he said, "Tabitha, get up." She opened her eyes, and seeing Peter she sat up.
1.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라며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욥바라는 항구 도시에 히브리 이름으로는 다비다라고 하고 헬라 이름으로는 도르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3. 사도행전은 도르가라는 여인에 대해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4. 심히 많았다는 표현은 그녀의 삶에서 선행과 구제가 흘러 넘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5. 도르가의 삶 속에서 선행과 구제가 흘러 넘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6.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더 착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7. 사도행전은 이것에 대해 그녀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8. 도르가의 삶에서 선행과 구제가 흘러 넘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9. 그런데 선행과 구제가 흘러 넘쳤던 도르가에 대해 소개하고는 사도행전은 그녀가 병들어 죽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10. 행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11. 최초의 여제자라 칭함을 받을 정도로 선행과 구제를 흘러 넘치게 했던 도르가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12.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죽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한 이치이기에 도르가가 병이 들어 죽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13. 그런데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은 도르가가 병들어 죽자 그녀의 시체를 깨끗이 씻고는 다락에 누였다는 말씀입니다.
14.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죽은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 동굴과 같은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장례 관습이었습니다.
15. 그런데 욥바의 제자들은 병들어 죽은 도르가의 시신을 깨끗이 씻고는 무덤에 장사지내지 않고 다락방에 누인 것입니다.
16. 도대체 왜 욥바의 제자들은 병들어 죽은 도르가를 무덤에 장사지내지 않고 다락방에 누인 것일까요?
17.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유대인들에게 다락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18.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사르밧이라는 지역에서 행한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선지자 엘리야가 사르밧에 갔을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과부의 다락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20. 그런데 엘리야에게 다락방을 내주었던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21. 과부의 통곡과 하소연을 들은 엘리야 선지자는 그녀를 불쌍히 여겨 병들어 죽은 아들의 시신을 다락으로 데려가서는 자신의 침대에 누였습니다.
22. 엘리야는 다락방 침대에 과부의 죽은 아들을 누이고는 하나님께 죽은 아이를 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23.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죽은 아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24. 왕상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5.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의 후계자인 엘리사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6. 수넴이라는 지역에 사는 신실한 부부가 엘리사를 위해 다락방을 새로 만들고는 엘리사를 그곳에서 지내게 하였습니다.
27. 선지자 엘리사에게 베푼 친절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식이 없었던 부부에게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얻게 하셨습니다.
28.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서 기적같이 얻은 아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갑작스럽게 죽고 만 것입니다.
29. 아이의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시신을 엘리사가 머물던 다락방 침대에 누이고는 그 즉시 갈멜산에 있던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30. 엘리사는 자신이 머물던 수넴 여인의 집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누인 죽은 소년을 위해 기도하자 소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31. 이처럼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다락방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신비한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32. 다락방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비로운 믿음은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3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진 곳도 다락방이었습니다.
34.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두 번씩이나 찾아오셔서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직접 확인시켜 주신 곳도 다락방이었습니다.
35.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뒤 처음으로 맞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곳 역시 12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던 다락방이었습니다.
36. 이처럼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에게도 다락방은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과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생명의 공간을 의미하는 메타포입니다.
37. 성경에서 다락방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욥바의 제자들이 병들어 죽은 도르가의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는 다락방에 누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8. 이들은 도르가의 시신을 장례 치르기 위해 다락방에 누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39. 이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도르가를 다시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녀의 시신을 다락방에 누인 것입니다.
40. 욥바의 제자들에게 다락방은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부활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41. 이 사건은 매우 세심한 주의와 적용이 필요한 말씀입니다.
42. 이 사건은 죽은 시신을 다락방에 누인다고 모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3. 엘리야가 살려낸 사르밧 과부의 아들도 결국은 죽었고, 엘리사가 살려낸 수넴 여인의 아들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44. 마찬가지로 죽은 도르가 다락방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녀가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45. 그렇다면 죽은 도르가를 다락방에 눕히고는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욥바의 제자들을 통해 성경이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46.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병들어 죽은 도르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통해 사도행전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7. 예수를 구세주 그리스도라 믿는 믿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몸소 이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48. 물론 부활의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제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이 부활의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죽음이 끝이 아님을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더욱 힘쓰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