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일 화요일-용서와 용인의 차이

 

마태복음 5:9 (개역개정, NIV)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1. 우리 인생에 다시 없을 하루를 시작합니다. 후회 없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화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평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3.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평화)하라 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

 

4. 사람과의 관계가 좋은 것을 평화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불화라고 합니다.

 

5. 따라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6. 그런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7.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간의 오해나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덮어두고 묻어두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8.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있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이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9.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거진 오해나 문제를 무조건 덮어두고 묻어두기만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0. 덮어두는 것은 임시방편입니다. 거짓 평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거짓 평화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깨어지게 됩니다.

 

11.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불화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죄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중요한 원인입니다.

 

13.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4.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간절함이 없이는 절대로 제대로 된 평화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15. 예전에는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교회는 좋은 곳이며, 바르게 착하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 여겼습니다.

 

16.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더는 교회를 좋은 곳이며,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17.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잘못된 믿음과 신앙을 교인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8. 특별히 용서(죄사함)에 대한 잘못된 신앙은 교회를 세상보다 못한 곳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19. 교회는 사람은 불완전하며 이기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자신의 불완전함과 탐욕으로 인해 저지른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는 곳입니다.

 

20.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정작 있어야 할 용서의 은혜는 없고, 죄를 감춰주고 덮어주는 용인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21. 용서(容恕)와 용인(容認)은 비슷한 의미와 뜻을 가진 단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22. 용서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사람이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23. 그래서 죄지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죄 사함 즉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4. 하지만 비록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지만, 그 사람이 지은 잘못이나 죄는 악한 것이기에 용서할 수 없습니다.

 

25. 그래서 다시는 똑같은 실수와 죄를 반복되지 않도록 지은 죄를 참회하고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6.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용서는 사람이 지은 잘못이나 악한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27. 반면에 용인은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면서 그 사람이 지은 실수와 죄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덮어두는 것입니다. 숨기는 것입니다.

 

28. 하지만 교회는 죄를 덮어두고 숨기는 곳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여 도무지 그 죄를 내 안에 둘 곳이 없어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물리치는 곳입니다.

 

29.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용서이며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주장하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30. 그런데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죄라면 무조건 덮어두고 묻어두고 숨기는 것이 용서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용서가 아니라 용인입니다.

 

31. 언제부턴가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용서의 은혜 대신 죄를 덮어주고 숨겨주는 용인이라는 면죄부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32. 용서의 은혜는 사라지고 용인이라는 면죄부만 남발하는 교회가 되었기에 교회가 점점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33. 용서가 아닌 용인만 남은 교회는 세상을 바르게 하고 화평케 할 능력이 없습니다.

 

34. 역설적이지만 참된 평화는 잘못된 관행과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고는 절대로 얻어질 수 없습니다.

 

35. 평화는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무조건 덮어주고 감춰주고 용인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36. 평화는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드러내고 그것과 싸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37. 왜냐하면 죄가 있는 곳에는 절대로 평화는 없습니다. 악이 있는 곳에는 절대로 평화는 없습니다. 불법이 있는 곳에는 절대로 평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평화의 주로 오신 주님,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우리의 죄를 깨달아 비슷한 죄가 우리 삶에서 반복하지 않게 하옵소서. 거짓 평화를 위해 잘못된 일이나 불의에도 수시로 눈을 감는 우리의 비겁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죄와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