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금요일-어떻게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

 

마태복음 5:43-44 (개역개정, NIV)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3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44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1. 한 주간도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신 교우들에게 주님의 안식과 평화가 임하길 바라며 금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3.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4.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 원수를 생각만 해도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데 도대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6. 과연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현 가능한 가르침이긴 한 것일까요?

 

7. 만약 예수님께서 원수나 핍박하는 자를 좋아하라고 가르치셨다면 이 가르침은 도저히 실천 불가능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8. 아무리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원수나 핍박하는 자를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9. 좋아하는 마음은 별다른 노력이나 훈련이 없어도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생겨나는 느낌이며 감정입니다.

 

10.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거나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한다고 해도 나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11. 감정이라는 것은 생각할 틈도 없이 즉각적이며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12. 감정이란 즉각적이며 반사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나타나는 반응이기에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하기란 불가능합니다.

 

13. 감정이란 내 생각이나 의지보다 한발 앞서 자동으로 나타나는 즉각적이며 반사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14.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어도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핍박하고 욕하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15. 반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란 감정과는 달리 본인의 적극적 태도이며 의지적인 행동이자 노력을 의미합니다.

 

16.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나 핍박하는 자를 좋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시고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7.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뭉뚱그려 모두 사랑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18.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적인 반응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19.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생각과 의지를 다지고 실천하는 행동과 태도에 가깝습니다.

 

20.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란 자신의 의지와 결단 그리고 훈련을 통해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21.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란 자동적이고 반사적인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며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3. 목회하다 보면 예의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이 무례하며 교회를 이용하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듯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24. 그런데 아무리 무례하고 교회와 목사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저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심방하고 설교합니다.

 

25. 물론 제 감정은 불편하고 싫습니다. 그래도 겉으로 티 안 내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26. 때론 무례한 태도로 무리한 부탁을 해도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습니다. 제 능력이 닿는 대로 도와줍니다.

 

27. 그런데 제가 항상 그렇지 못합니다. 가끔은 감정이 제 믿음과 의지를 앞설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28. 여러분은 어떤 것이 목사로서 또는 신앙인으로서 진실하고 바른 태도라고 생각하십니까?

 

29. 믿음과 의지를 앞세워 감정이 내키지 않더라도 무례한 사람에게 친절과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까?

 

30. 아니면 감정이 내키는 대로, 싫은 티 팍팍 내거나, 은근슬쩍 피하고 마는 것이 목사나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일까요?

 

31.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내키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예의를 갖추는 것을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이라 생각합니다.


32. 이런 것이 정말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던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태도이며 신앙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33.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진실한 태도라고 한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아무런 의미도 필요도 없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34.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사람들의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35. 감정은 그냥 느끼는 것인데 감정을 옳고 그름 또는 바르고 나쁨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36. 감정은 저절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겐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싫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은 절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37. 만약 사랑이 감정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라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말씀이 될 것입니다.

 

38. 왜냐하면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말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39. 하지만 사랑이 의지와 훈련과 노력의 문제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로 실천 불가능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유일한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와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 결코, 같지 않음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물론 감정을 무시하지 않아야 하지만 감정에 따라 선택과 결정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