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일 수요일-무엇을 위한 기도인가?

 

마태복음 6:8 (개역개정, NIV)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8 Do not be like them, for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efore you ask him.

 

1. 오늘은 2023년도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순절 보내시길 바라며 수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말씀으로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18:1-8 참조)

 

3.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그 도시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과부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가서는 자신의 억울함(원한)을 해결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5. 하지만 불의한 재판장은 매번 과부의 간청을 모른 체 하며 무시했습니다.

 

6. 불의한 재판장의 무시에도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재판장을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7.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는 마지못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 주게 됩니다.

 

8. 많은 목사나 교인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과부와 재판관 비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9. 과부가 재판장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10. 따라서 기도할 때는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11. 이런 식의 기도를 교회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강청 기도 (강력하게 구하는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12.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매우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13. 만약 예수님의 비유가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구하라는 교훈이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비유하신 것이 됩니다.

 

14. 예수님의 비유에서 재판관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알면서도 뇌물만 바라고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15. 만약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실제로 그런 분이시라고 한다면, 우리도 과부처럼 어떻게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16.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17.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할 것을 아시고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려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는 강청 기도는 기독교의 신앙이 가르치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19. 이런 식의 기도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무속신앙(shamanism)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 물론 무속신앙의 기도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식의 기도를 기독교 신앙의 기도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1.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과 끈질긴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22.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3. 마가복음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4. 따라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간청하는 것을 올바른 기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25. 이런 기도의 자세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기도입니다.

 

26.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기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27. 결국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불신앙이 되고 맙니다.

 

28. 예수님의 비유에서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이었습니다.

 

29. 이런 불의한 재판관이 자기 마음을 바꾸어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30.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가 힘들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31.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과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32.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애원하면 마음을 바꾸어 불쌍한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33.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34.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대부분의 유대 백성들은 절망적인 현실만 보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35.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비록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린 과부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었던 것처럼 불의한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36.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비유하신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재판관을 불의하고 부당한 절망적인 현실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37. 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에 대한 바른 믿음,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38. 예수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39.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 불의한 현실을 살면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