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일 월요일-용서하기 힘든 이유

 

마태복음 6:12 (개역개정, NIV)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 한 주간 쉬었던 아침 묵상을 다시 시작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한 주간 되시길 바라며 월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은 우리의 상한 감정과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영적 원리입니다.

 

3.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는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4.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5. 아무리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도 용서하거나 용서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6.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사람에게 용서는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만큼 부자연스러운 게 없습니다.

 

7.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본성과 잘 맞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8.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이 받은 손해나 상처만큼 그대로 갚아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9. 이것은 결코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람의 본성입니다.

 

10. 따라서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보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훨씬 더 우리의 본성에 자연스럽습니다.

 

11. 용서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용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 질서와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우리는 어려서부터 평생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질서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13.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고, 받은 만큼 주는 것입니다.

 

14. 그래서 누구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해 주어야 하고 누구에게 손해를 받으면 받은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15.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보니 용서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사회적인 행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16.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되고 삶의 방법이 되었기에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을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기게 된 것입니다.


17. 많은 사람이 남을 용서하면 나는 손해만 보고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편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18. 아마도 이런 생각이 용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9. 하지만 용서를 통해 가장 큰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용서받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20. 왜 그렇습니까? 용서는 자신의 상처나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도 분명한 영적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21. 우리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용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22.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용서하지 않는데, 용서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계속해서 나에게 상처를 주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습니다.

 

23. 이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용서 밖에는 없습니다.

 

24.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이미 받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25.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체험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일에 가까울 것입니다.

 

26. 우리는 흔히 상처받은 사람만 힘들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27.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남에게 준 상처보다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28. 그것이 무엇입니까?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심각한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29. 전해오는 우리 속담에 맞는 놈은 두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30.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죄를 짓거나 상처를 주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31. 이런 사람을 성경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32.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3.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34. 양심은 인간의 영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죽어버렸다면 이것보다 더 엄중한 심판은 없을 것입니다.

 

35.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받은 상처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36. 하지만 예전에 받은 상처가 계속해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37.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내가 받은 상처가 내면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7.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져 살아갑니다.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지 내가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38. 이런 생각이 지나쳐 나는 상처를 받기만 한 사람이지 절대로 남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39. 우리 중 누구도 상처받기만 하거나 반대로 상처를 주기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40. 상처받았기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주었기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41.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용서입니다. 그런데 용서는 사람의 힘이나 능력 인격으로도 잘되지 않습니다.

 

42.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기 위한 기도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사람과의 관계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여기다 보니 축복이 아니라 상처가 되는 우리의 탐욕스러운 현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며 동시에 누군가를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