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일 수요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

 

마태복음 6:12 (개역개정, NIV)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 오늘도 일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라며 수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어제 아침 묵상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는 용서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는 우리가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을 나타내는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5. 더 나아가 하나님께 갚아야 할 일만 달란트의 빚은 누구도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빚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액수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7.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8. 왕에게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종이 집으로 가던 중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9.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따라서 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백일 품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고 해도 백 데나리온은 무려 4달을 꼬박 일해야만 겨우 벌 수 있는 돈입니다.

 

11. 물론 왕에게 빚진 일만 달란트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동료 사이에 백 데나리온은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는 액수입니다.

 

12.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13. 동료의 멱살을 붙잡고는 자신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빨리 갚으라고 재촉을 합니다.

 

14. 그러자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가 조금만 기다려 주면 자신이 빚을 갚겠다고 간청합니다.

 

15. 하지만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은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기의 친구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16. 이 이야기가 왕에게까지 들려지게 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왕은 자기의 종을 매우 괘씸하게 여겼습니다.

 

17. 당장 종을 불러다 꾸짖고는 왕에게 빚진 일만 달란트를 다 갚을 때까지 종을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합니다.

 

18.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까?

 

19. 종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라는 어머 어마한 빚을 왕에게 탕감받았습니다.

 

20. 하지만 종은 자신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액수를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1. 자신이 왕에게 탕감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동료가 자신에게 끼친 것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21.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용서받은 종은 왜 백 데나리온 빚진 자기의 친구를 용서하지 못한 것일까요?

 

22.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은 자신이 왕에게 용서받는 것과 자기 동료를 용서하는 것을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3. 하지만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준 왕의 생각과 뜻은 달랐습니다.

 

24. 왕이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용서해 준 것은 종도 자신과 같은 은혜를 베풀며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25. 하지만 종은 자신이 왕에게 용서받는 것과 자신이 자기 동료를 용서하는 것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26.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착각은 오늘날 수많은 목사와 교인에게서 여전히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27.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죄 사함을 왕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과 똑같이 생각합니다.

 

28.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개의 일로 여깁니다.

 

29. 자신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자신을 용서해 준다고 믿으면서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30.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매우 심각한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31.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용서를 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입니다.

 

3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입니다.

 

33.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34.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을 믿고 감사한다면 마땅히 우리는 빚진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됩니다.

 

35. 우리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용서는 받겠다는 것은 도무지 성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36. 예수님의 비유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37. 종이 왕에게 빚진 일만 달란트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탕감받았습니다.

 

38.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9.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께 받은 더 큰 용서를 잃어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과 우리의 이웃을 용서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 아님을 마음으로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람의 용서가 꼭 필요한 것처럼 우리 이웃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과 나의 용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품어 용서하고 용서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