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금요일-구원의 하나님
요나 1:4-6 (개역개정)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1.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십니다.
2.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단 한 번도 변함이 없으셨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4. 하지만 일부 목사나 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에만 초점을 둡니다.
5. 이런 식의 성경 읽기는 성경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6.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8. 요나서는 하나님의 뜻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9. 물론 요나서는 니느웨의 악독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0. 요나서는 니느웨의 악독함이 너무나 심각하여 저들의 악함이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니느웨의 악함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저들의 악함을 경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2. 욘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3. 하지만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은 선지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어 저들의 악함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14.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어 저들의 악함을 경고하시는 이유가 니느웨를 심판하여 멸망시키기 위함이었습니까?
15.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악은 스스로 파괴하고 멸망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은 그대로 내버려 두면 결국에는 저절로 파멸하고 맙니다.
16. 하나님께서 굳이 요나를 보내어 니느웨의 악함을 경고하시는 이유는 저들을 사랑하시기에 저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17. 지금도 수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야말로 말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8. 하지만 자기가 살던 시대가 말세라는 주장은 지난 이천 년 동안 계속됐던 교회의 단골 레퍼토리(Repertory)입니다.
19. 자기가 살던 시대에 일어났던 각종 전쟁과 기근 재앙을 두고는 이것이 곧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말세의 징조라며 이제 곧 말세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 지금도 여전히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나 사이비 교주들 심지어는 일부 목사와 교인들조차 말세의 징조와 심판을 강조하며 교인들을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21. 물론 말세의 징조와 현상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는 말씀이 확실합니다.
22.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말세의 징조와 심판에 대한 경고는 구원이 목적이지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3. 다시 말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말세의 징조와 현상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24.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은 항상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경고이며 심판입니다.
25. 니느웨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니느웨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26. 니느웨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니느웨를 구원하시기 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27. 이것은 지금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입니다.
28. 하지만 요나의 관심은 니느웨의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었습니다. 요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심 역시 구원이 아니라 심판일 때가 많습니다.
29.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예수님에게 데려왔습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셨습니다.
30. 죄 없는 자는 돌로 이 여인을 치라 말씀하시고는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그러자 돌을 든 이들이 손에 든 돌을 버리고는 모두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31. 이 사건은 여인에게 죄가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다.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이고,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32. 요나로 인해 그가 탄 배가 당장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요나는 배 가장 깊은 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선장은 깊은 잠에 빠진 요나를 깨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을 부탁합니다.
33. 욘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3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선장조차도 하나님의 뜻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시고 구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하나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회개와 용서와 구원이심을 요나서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깨닫게 하옵소서. 잘못된 길로 가려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