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수요일-갈등 가운데 발견하는 율법의 선함

 

로마서 7:14-20(새번역)

7: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욕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7: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7:16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7: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7: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나에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7: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7:20 내가 해서는 안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1.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이 분명히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안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흔히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우리를 억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3. 하지만 바울은 율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이 신령한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통해 선한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4. 7:14a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줄 압니다.

 

5. 이것은 율법이 인간의 욕심이나 이해타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규범이라는 의미입니다.

 

6. 예를 들어 거짓 증언하지 말라거나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명령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원칙들입니다.

 

7. 오늘날로 치면 헌법이나 법률이 사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기준이 되듯, 율법도 신앙 공동체가 건강해지도록 인도하는 선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기준이라 해도, 사람이 그 기준을 완벽하게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9.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합니다.

 

10. 7:14b 그러나 나는 욕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11. 율법은 분명히 선한 것인데, 자신을 비롯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온전히 그리고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12. 이것이 바로 바울이 느꼈던 내면의 갈등입니다. 바울은 자신 안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3. 7: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4. 이것을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라는 말이 옳은 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게 상처 준 사람을 보면 용서하기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15. 그래서 바울은 내가 이렇게 갈등을 느낀다는 자체가 이미 율법이 선하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역설합니다.

 

16. 7:16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17.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율법이 정한 선한 기준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8. 율법이라는 기준이 없다면, “이 행동이 정말 나쁘다라고 느낄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19. 교통법규가 없다면 우리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역주행해도 죄책감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20. 그런데 법이 있기에 내가 하면 안 되는 행동임을 알고, 동시에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도 들면서 고민이 생기는 것이지요.

 

21. 결국, 갈등을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바른길 또는 선한 기준을 알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2. 바울은 17절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언급합니다.

 

23. 7: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4. 언뜻 들으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내면에 있는 깊은 모순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25. 다시 말해 인간은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죄의 힘이나 욕망, 혹은 사회적 습관에 휩쓸려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26.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겪는 우리가, 어떻게 율법이 선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27. 바울의 메시지를 따라가 보면, 율법은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8. 율법이 없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29. 가령,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듣지 않았다면, 우리는 타인을 해치는 일이 죄라는 인식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30. 또한, 율법이 선하다는 것은 율법이 궁극적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정의, 사랑의 방향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31. 예수께서도 율법의 핵심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듯(22:37-40), 율법은 우리를 더 큰 자유와 사랑으로 이끕니다.

 

32. 바울이 내적 모순을 고백한 이유는, 율법이 지닌 선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33. 우리가 갈등을 느낀다는 것은, 율법이 지향하는 선한 가치에 이미 마음 한편이 끌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34.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그 선함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35. 하지만 이 갈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생명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 율법을 통해 우리에게 신령하고 선한 길을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죄와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갈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욱 사모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율법의 선함을 삶에서 실천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