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일 수요일-웃음 뒤에 찾아온 더 깊은 갈증

 

전도서 2:2-3a

2: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2:3a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1. 전도서 2장은 전도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보려고 했던 모든 시도에 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 22절부터는 전도자가 인생의 허무와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가지 인생의 쾌락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입니다.

 

3. 인생의 허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전도자가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웃음'이었습니다.

 

4. 2: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5. 전도자는 인생의 공허함을 웃음으로 채워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 웃음은 "미친 것"이고, 그 희락은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6. 우리 생각에는 슬픔과 우울함에 빠져 사는 것보다야 웃으며 사는 것이 백번 낫습니다. 그런데도 전도자는 왜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7. 전도자는 단순히 웃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웃음이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8. 전도자가 추구했던 웃음을 히브리 성경에서는 '세호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9. 히브리 성경이 사용한 세호크라는 단어는 단순히 기쁨의 미소가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 단어가 '웃는 짓, 웃게 만드는 짓' 또는 '농담'이나 '조롱'의 의미까지 내포한다고 지적합니다.

 

10. , 이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의 웃음이 아니라, 공허함을 잊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웃음입니다.

 

11. 이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의 재미난 영상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웃음은 우리를 잠깐 즐겁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지는 못합니다.

 

12. 오히려 일시적인 쾌락이 지나간 뒤 더 큰 갈증과 허무를 느끼게 할 뿐입니다. 그것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13.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도자는 이런 웃음에 대해 굳이 '미친 것'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4. 웃음을 미친 것이라고 한 전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히브리 원어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5. 미친 것에 대한 히브리어는 '메홀랄'입니다. 메홀랄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의 '할랄'과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할랄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16. 전도자가 웃음에 대해 굳이 미친 것을 뜻하는 메홀랄이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한 데에는 그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7. 본래 하나님을 향해 터져 나오는 찬양(할랄)이어야 할 에너지가 방향을 잃고 오직 나를 만족시키는 데에만 쓰일 때, 그 거룩함은 사라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미친 짓(메홀랄)처럼 변질하고 맙니다.

 

18.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해야 할 에너지가 자기에게만 집중할 때, 거룩한 찬양은 미친 소음이 되고 맙니다. 전도자는 바로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19. 웃음이 실패로 돌아가자, 전도자는 좀 더 고차원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그는 한 손에는 '지혜', 다른 한 손에는 ''을 들었습니다.

 

20. 2:3a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21. 전도자는 정신적으로는 더 깊은 지혜를 추구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육체적으로는 술의 즐거움에 빠져보고자 한 것입니다.

 

22. 하지만 전도자의 시도 자체가 지극히 모순적입니다. 어떻게 맑은 정신으로 지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술에 취해 육신의 쾌락을 탐할 수 있겠습니까?

 

23. 이것은 마치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에선 거룩하고 경건하게 행동하면서 교회 문을 나서기만 하면 세상의 방식과 쾌락에 빠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5. 전도자는 모순된 시도를 통해 인생의 허무와 헛됨을 극복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 역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26. 왜 그렇습니까? 지혜를 추구하는 것도, 술을 즐기는 것도, 그 모든 행위의 중심에 여전히 '' 자신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27. 전도자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아니라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철학이었고, 그의 술은 감사의 축배가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마취제였습니다.

 

28. 이처럼 즐거움의 모든 수단이 하나님과 이웃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향할 때, 그것은 결국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9. 나를 향한 즐거움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자신에게조차 궁극적인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30. 전도자는 인류가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의 정점에 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라는 처절한 고백이었습니다.

 

31.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웃고 무엇으로 삶을 채우려 하십니까? 혹시 전도자처럼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웃음과 자기중심적인 쾌락으로 영혼의 허기를 달래고 있지는 않습니까?

 

32. 참된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가르치길 우리의 삶의 방향이 ''에게서 '하나님''이웃'으로 향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33. 전도자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돌려 참된 즐거움의 근원이신 주님 안에서 날마다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4. 오늘 하루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그를 웃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작은 나눔을 실천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헛된 웃음과 자기중심적인 쾌락으로 영혼의 갈증을 채우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전도자의 실패를 통해 참된 기쁨과 평안은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어 지금까지 나를 향했던 시선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통해 하늘의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