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월요일-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
전도서 3:20-21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1. 전도자는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간의 자만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았습니다.
2.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부와 권력을 가졌다 한들,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숨결이 끊어지면 짐승과 마찬가지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전도서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4. 여기서 ‘흙’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파르(עָפָר)’로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용하신 티끌입니다.
5. 전도자는 이 단어를 통해 우리의 시작과 끝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6. 우리는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진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화려했던 모든 옷을 벗고 우리의 본질인 티끌로 돌아갑니다.
7. 왕도, 노예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예외 없이 ‘다 한 곳’, 바로 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8. 이 엄중한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절망이나 허무가 아닙니다. ‘겸손’입니다.
9. 우리가 이 땅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들, 이를테면 업적, 명예, 소유 등 이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한낱 먼지처럼 사라질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0.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실은,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며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우리의 끝없는 욕망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11. 이것은 인생을 헛되고 허무하게 만드는 그릇된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인생의 진리입니다.
12. 내가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교만할 이유도, 조금 덜 가졌다고 비참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13. 죽음이라는 공평한 저울 위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무게를 가진 ‘흙’이기 때문입니다.
13. 더 나아가 이 진실은 단순히 개인의 삶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14. 우리는 모두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재산이나 학식, 사회적 지위와 같은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고 구분 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강력하게 깨닫게 합니다.
15.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은혜로 한 가족이 된, 연약한 동료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16.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피조물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대전제 위에서, 전도자는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통념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17. 전도서 3: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18. 당시 사람들은 인간은 존귀하니까 죽으면 그 영혼(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은 미물에 불과하니 그 혼이 땅으로 꺼져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19. 그런데 전도자는 이 당연해 보이는 믿음에 제동을 겁니다. 전도자는 도대체 그것을 “누가 알랴?”라고 묻습니다.
20. ‘누가 알랴?“라는 전도자의 질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21.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가진 어설픈 신학 지식이나 믿음을 가지고 마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22. ‘누가 알랴?“라는 전도자의 질문은 사후세계나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무신론자의 질문이 아닙니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처절하게 인정하는 지혜자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23. 전도자는 “당신들이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는가? 당신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경험과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인가?” 묻고 있는 것입니다.
24. 전도자는 우리가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25.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와 믿음의 영역이지, 우리가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6.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음’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믿음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27. 우리의 경험과 이성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지식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온전히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28. 결국 ‘누가 알랴?’라는 이 정직한 고백은, ‘나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책임지시니 나는 평안합니다’라는 가장 신실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9. 전도자는 우리를 존재의 가장 낮은 자리, ‘흙’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지식의 가장 끝자락, ‘알 수 없음’의 경계에 세웠습니다.
30.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허무함에 주저앉아야 합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31. 내가 흙과 같은 존재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죽음 너머를 알 수 없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붙들게 됩니다.
32.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기억하며 우리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33.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우리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서의 지혜를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역설입니다.
34. 오늘 하루, 내게 주신 이웃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을 기쁨으로 누리며,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향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마치 죽음 너머의 세계마저 다 아는 것처럼 함부로 판단하며 살아온 우리의 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기쁨과 감사로 살아내게 하시며, 땅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