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수요일-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다
전도서 4:1
전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1. 전도서 3장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과 때가 있다는 말씀이었다면 전도서 4장은 전도자가 바라본 세상의 현실을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2. 전도서 4장은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3. 전도서 4장 전체에서 전도자는 “내가 보니” 혹은 “내가 보았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4. 전4:4 내가 또 본즉, 전4: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전4:15 내가 본즉
5. 전도자는 주의 깊게, 그리고 아주 예리하게 세상과 그 안의 인생을 관찰했습니다.
6. 전도자는 세상의 화려한 포장지에 가려진 아픔과 모순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7. 전도서 3장에서 전도자는 가장 공정해야 할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있으며,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일에도 악이 있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8. 전3: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9. 게다가 전도자가 본 사람의 운명은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짐승 모두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10. 그런데 전도서 4장에서 전도자가 본 세상의 현실은 전도서 3장의 말씀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비극적입니다.
11. 전도자가 본 세상의 현실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와 그로 인해 “학대받는 자들이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12. 전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13. 전도자가 관찰한 세상의 현실이 얼마나 모질었으면 전도서 4장 1절 짧은 한 구절에 학대라는 단어를 3번이나 반복하였습니다.
14. 더욱 절망적인 것은 힘의 불균형입니다. 학대하는 자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학대받는 자들에게는 위로자조차 없었습니다.
15. 전도자가 지적하는 가장 참담한 현실은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는 학대가 아닙니다.
16. 힘을 가진 자들의 학대보다 더 참담하고 비극적인 현실은, 학대받는 자들에게 위로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17. 그래서 전도자는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다”라는 한탄을 전도서 4장 1절에서 두 번이나 절규하듯 외치고 있습니다.
18.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는 순간, 어제까지 촘촘했던 관계의 끈들이 끊어지고, 가까웠던 이들조차 슬그머니 등을 돌리게 됩니다.
19.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학대받는 자를 외면하여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사람은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20. 더 나아가 위로자가 없다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21.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서로 돕고 나누며 ‘더불어 있음’을 누리는 공간이었습니다.
22. 그러나 힘의 논리와 경쟁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 이웃은 사라지고 학대하는 사람과 학대받는 사람만 남게 됩니다.
23.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대받는 자를 위로하는 위로자가 없었습니까? 전도자는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 권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24.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권세의 편에 서기는 쉬워도, 눈물 흘리는 약자의 곁에 서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25. 여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무서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정말 그 권세가 두려워서였을까요?
26. 아니면 불의를 보고도 분쟁에 휘말리기 싫어서, 혹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27. 18세기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8. 권력자의 학대만큼이나, 선한 이웃의 침묵 또한 학대받는 이들의 눈물을 더욱 차갑게 만드는 것입니다.
29. 전도자는 이처럼 비극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넘기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기를 원합니다.
30. 전도자의 고발은 여기서 멈추지만, 우리는 그가 보지 못했던 소망의 빛을 알고 있습니다.
31. 이 세상에는 진정한 위로자가 없다는 전도자의 진단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참된 위로자를 향한 갈망을 발견합니다.
32.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위로, 그 위로를 주시는 분은 바로 자비의 아버지이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33.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4.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이웃의 곁에 서는 ‘위로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35. 우리 주변에 위로자 없이 홀로 눈물 흘리는 이웃은 없습니까? 우리의 작은 위로와 격려가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딛고 일어설 힘이 될 것입니다.
36.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자가 될 때, 이 땅은 비로소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가 넘치는 나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자비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억압과 학대 속에서 신음하며, 위로자 없이 홀로 눈물 흘리는 이들의 고통을 주님 앞에 아룁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그들의 아픔을 보게 하시고,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기꺼이 서러움의 곁으로 다가가는 위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채우사 우리가 받은 그 위로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