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화요일-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도서 6장 6절
전6: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1. 전도자는 세상의 모든 복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에 ‘만족’이 없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면, 차라리 ‘낙태된 자’가 더 낫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2. 전도자가 그토록 충격적인 선언을 한 이유는 태어나지 않은 자는 고통스러운 인생을 겪지 않고 영원한 ‘안식(나하트)’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 6장 6절의 말씀은 어제 묵상하였던 말씀의 연장입니다.
4. 전도자는 더욱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만약 사람이 ‘천 년의 갑절’, 즉 2천 년을 산다고 해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그 모든 시간은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5. 전6: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6. 우리가 사는 시대를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7. 물론 여전히 100세를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100세를 기대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8. 그런데 전도자는 인간이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 년의 갑절 즉 2천 년을 산다고 해도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 말씀합니다.
9. 전도자는 아무리 오랫동안 장수한다고 해도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보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묻습니다.
10. 여기서 ‘행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조건이나 상태가 완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본다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11. 행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토브로서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실 때 사용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12. 이런 의미에서 행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울하거나 불행한 사건을 겪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 곳곳에 심어두신 ‘좋은 것(토브)’,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인 질병에 걸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13. 이런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선물을 손에 쥐고도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길어 올릴 능력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14.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영적 질병에 걸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탐욕’이라는 악한 병 때문입니다.
15.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현재를 즐기며 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의 눈은 지금 가진 것이 아닌, 아직 갖지 못한 것만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니 이런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보고도 그것을 누리며 살지 못하고 항상 지금보다 더 큰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을 바라보며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17. 이것이 바로 전도자가 경고하고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는 삶’의 비극적인 실체입니다.
18. 전도자는 이 행복 없는 삶의 종착지를 분명히 제시합니다.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19. 전도자가 말씀하고 있는 결국 모든 인생이 가야 하는 ‘한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죽음의 자리, 무덤입니다.
20. 전도자가 끊임없이 반복하여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처럼, 죽음은 해 아래 모든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종착지이자 가장 위대한 평등의 장소입니다.
21. 왕도, 노예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그리고 2천 년을 산 사람도, 빛을 보지 못한 낙태된 자도 결국 이 ‘한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22. 죽음은 우리가 평생 쌓아 올린 모든 경력과 재산, 명예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우리가 평생 이룬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허무의 공간입니다.
23. 그러나 동시에 죽음은 우리가 이 땅에서 짊어졌던 모든 억울함과 고통, 세상의 불평등한 짐을 모두 내려놓는 안식의 문턱이기도 합니다.
24. 전도자는 이 냉엄한 종착지 앞에서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25. 전도자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므두셀라(969세)보다 두 배 이상 긴 ‘2천 년’이라는 시간을 가정합니다.
26. 이것은 시간의 ‘양’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극단적인 장치입니다.
27. 인생의 가치를 ‘하나님의 좋으심(토브)을 누리는 기쁨’으로 정의한다면, 그 기쁨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제로(0)의 인생은 그 인생이 아무리 길어도 그 가치는 여전히 제로(0)일 뿐입니다.
28. 다시 말해 시간은 인생의 질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을 보지 못한 긴 인생은, 마치 제로(0)에 2,000을 곱해도 그 결과가 여전히 0인 것처럼, 그저 숫자만 늘어난 허무입니다.
29.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즐기며 누리지 못하는 2,000년은 축복이 아니라, 2,000년짜리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고역이며 형벌일 뿐입니다.
30. 긴 세월은 그의 인생에 아무런 가치도 더해주지 못하고, 오직 고통의 시간만을 연장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31.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며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것에 인생의 중요한 목적과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32. 그러나 전도자는 우리에게 단호하게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음을 경고합니다.
33. 우리의 남은 생이 그저 시간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수고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일상에 숨겨두신 ‘좋은 것(토브)’을 발견하고 누리는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3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5.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함은 단순히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든 시간을 보낼지라도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아주 작은 '좋으심'이라도 발견해 내려는 믿음의 몸부림을 의미합니다.
36. 또한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함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주어진 일상을 감사하며 사는 것이며,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관계의 기쁨을 누리는 것들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오래 사는 것에만 몰두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좋으심’을 보지 못하는 닫혀진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 주옵소서. 인생의 가치가 시간의 길이가 아닌,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깊이에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저희가 돌아갈 영원한 집을 기억하며, 헛된 것을 좇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과 안식을 누리는 지혜로운 순례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