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일 금요일-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전도서 610

6: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 혹시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벽 앞에서 답답함을 느껴보신 적 없으십니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망하며 홀로 한숨 쉬어 본 적은 없으십니까?

 

2.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바로 그 풀리지 않는 질문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들려줍니다.

 

3. 6: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4. 위 말씀을 얼핏 읽으면 우리 인생이 정해진 운명을 따라 사는 허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의 의도는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기 위해 이런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5. 오히려 우리를 짓누르는 헛된 욕망과 교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인생의 본질을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6. 전도자가 전하려는 본래 의미를 찾기 위해선 먼저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라는 전도자의 선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7.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다는 전도자의 선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뜻입니다.

 

8. 다시 말해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특히 우리가 겪는 근본적인 경험 중에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9.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없지 않았습니까?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떻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0.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기술이나 문명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1. 전도자가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12. 다시 말해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은 사랑하며 기뻐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슬퍼합니다. 성공을 향한 야망을 품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서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13. 인터넷이 생겼다고 해서 인간의 외로움이 사라졌습니까? 오히려 소셜 미디어 속에서 더 깊은 고립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14.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15. 이처럼 기술의 형태는 바뀌었을지라도, 유한한 시간 속에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6.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도자의 선언이 바로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17. 여기서 자기보다 강한 자는 단순히 세상의 권력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에서 강한 자라는 표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18. 따라서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다는 전도자의 말씀은 유한한 인간이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과 다툴 수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19. 까닭 모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욥은 끝까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원했습니다.

 

20. 마침내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가 겪는 고난의 이유에 관해 설명해 주시지는 않고 대신,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21. 욥은 하나님의 광대한 창조 섭리 앞에서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고,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2. 이사야 선지자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했습니다.

 

23. 진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항의할 수 없듯이, 지음받은 존재인 인간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우리의 존재 조건을 따져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 우리가 왜 늙고 병들어야 하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 왜 수고하고 애써도 만족을 얻지 못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습니다.

 

25.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정해 놓으신 변경할 수 없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가 말하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26.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지식과 능력 모든 면에서 한계를 지닌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해가 뜨고 지면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아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27. 그렇다면 도무지 극복할 수도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정과 고백이 우리를 좌절하고 절망하게만 할까요?

 

28.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정직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끄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29.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는 교만과 헛된 욕심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30.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수고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작은 선물들을 감사히 누리는 삶이 시작됩니다.

 

31. 내게 주어진 음식을 먹고 마시며, 나의 수고 가운데 기쁨을 찾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32. 우리의 한계는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우리에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33. 저는 한때 제 계획대로 목회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목회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34.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눈에 드러난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목회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35. 저의 연약함과 한계를 온전히 인정하고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드러난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목회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6.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바로 그 겸손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가장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마치 우리가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교만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묵상한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이며, 창조주이신 주님과 결코 다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을 주시고, 그 안에서 오히려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