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일 월요일-앞으로 살아갈 날 수(Days to Live)

 

전도서 610

6: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 지난 금요일에 이어 계속해서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한계와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2. 6: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3. 고대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름을 짓고 부르는 행위는 그 존재의 본질과 운명을 규정하는 창조적인 행위였습니다.

4. 따라서 오래전부터 그의 이름이 불렸다는 말은, 세상 모든 것과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이 이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정해져 있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5.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첫 사람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부르셨습니다.

 

6. ''을 의미하는 '아담'이라는 이름에는, 흙에서 왔기에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본질적인 특성이 이미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7. 더 나아가 사람이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다는 말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사람이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8.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간의 여러 한계 조건 중,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가장 절대적이고 확실한 운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9. 우리는 재물의 한계, 지혜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한계의 정점에 바로 죽음이 있습니다.

 

10.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죽는 걸까요? 늙기 때문에 죽는 걸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도 죽고요, 심지어 어린아이도 죽습니다.

 

11. 그렇다면 병이 들기에 죽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병에 걸려 죽는 사람도 있지만, 병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나 재해 또는 전쟁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습니다.

 

12.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은 왜 죽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에 죽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

 

13.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인간됨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인간됨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14.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15. 사람에게 죽음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죽음을 통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16. 그렇다면 영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이라는 것은 더 이상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을 영원이라고 합니다.

 

17. 더 이상 변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때를 죽음이라고 한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변할 수 있고 바꿀 가능성을 가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더는 변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때가 오기 전에 제대로 그리고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19.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을 때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20.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죽음을 생각해야 하고 죽음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21. 죽음 이후에는 인간이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22. 죽음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23. 우리 교회 교우 중 한 분의 카톡 프로필을 보면 자신이 살아갈 남은 날짜를 계산해서 보여주는 내용을 올려두신 분이 있습니다.

 

24. 아마 오늘 날짜로 그분이 생각하는 앞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날수는 6,359일입니다.

 

25. 제가 그분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집사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고 어떤 이유로 앞으로 살 날수를 그렇게 정하셨나요?

 

26. 그분이 답하길 자기의 부모 형제 등 모두의 평균나이를 계산하니 75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대 수명을 75세로 정하고 75세를 기준으로 앞으로 자신이 살 날수를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27. 물론 사람의 생명이 사람에게 달린 것은 아니기에 그 누구도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수를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덜 살 수도 있고 더 살 수도 있습니다.

 

28. 하지만 저는 그분의 이러한 모습을 언젠가 닥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도 않고 인생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이해했습니다.

 

29. 자신이 살 날수를 카톡 프로필에 표시하고 있는 그분은 매일 살 날수를 세지는 않지만, 가끔가다 갑자기 확 줄어든 날수를 볼 때면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합니다.

 

30. 개인적으로 저는 그분이 세고 있는 날 수보다 훨씬 더 오래 행복하게 장수하시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31. 아마도 이분은 자신이 세고 있는 날수를 넘는 날부터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감격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32.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분노하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네며 살 것입니다.

 

33. 이처럼 죽음에 대한 정직한 인식은 우리를 절망이 아닌,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34.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절망이 아닌 영원한 본향입니다. 우리는 죽음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35. 우리에게는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오늘을 더욱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살 것처럼 헛된 것을 좇아온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인간의 유한함을 늘 마음에 품는 지혜를 주셔서 오늘 하루가 주님의 선물임을 알고,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며,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