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월요일-초상집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전도서 7장 2절
전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1. 전도자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는 냉철한 현실 속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전도자의 첫 번째 지혜는 세상에서의 부를 나타내는 ‘좋은 기름’을 위해 사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이름’을 남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3. 지혜로운 삶을 위한 전도자의 또 다른 선택은 고통스러운 인생을 시작하는 ‘출생하는 날’보다, 마침내 인생이라는 과업을 완성하는 ‘죽는 날’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지혜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4.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했던 말씀에 대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전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6. 전도자는 기쁨과 축하가 넘치는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슬픔과 눈물이 가득한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합니다.
7.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는 전도자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전도자가 말하는 ‘잔칫집’과 ‘초상집’이 무엇에 대한 메타포인지 알아야 합니다.
8. 여기서 ‘잔칫집’과 ‘초상집’은 단순히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삶을 대하는 우리의 두 가지 태도를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9. 히브리 원문에서 ‘잔칫집’은 ‘마시는 집’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즐거움과 쾌락에 흠뻑 취해 현실의 문제들을 잠시 잊고 현재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10. 반면에 ‘초상집’은 ‘애곡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유한함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자리를 상징합니다.
11. 전도자는 결코 삶의 기쁨이나 즐거움 또는 쾌락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며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12. 전도서 3장 13절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3. 하지만 전도자가 경계하는 것은, 잔칫집의 일시적인 즐거움에 도취 되어 마치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어리석음입니다.
14. 잔칫집의 웃음은 우리를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할 수는 있지만, 인생의 참다운 의미와 가치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15. 반면에 ‘초상집’은 어떻습니까? 그곳은 인생의 어둡고 슬픈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곳을 지배합니다.
16. 초상집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에서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17. 전도자는 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19. 초상집은 잔칫집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비로소 모든 사람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배우게 됩니다.
20. 그렇습니다. 초상집에 놓인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바로 우리 모두의 미래이며 누구도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21. 이것이 바로 ‘해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정직하고 평등한 진실입니다.
22. 잔칫집의 즐거움에 취해 있을 때 우리는 이 진실을 잊어버리지만, 초상집은 모든 환상을 깨뜨리고 우리를 진실 앞에 세웁니다.
23. ‘당신도 결국 이렇게 될 것입니다.’ 이 엄숙한 선언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24. 전도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그렇습니다. 죽음을 마음에 두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입니다.
25. 죽음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우울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웃의 슬픔에 잠시 멈추어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26. 그리고 나의 삶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더 이상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27. 초상집에서 고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28. 그리고 그 질문은 곧바로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나의 삶이 끝나는 날,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까?’
29.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을 위해 살라는 전도서의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0.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잔칫집’과 같습니다. 고통과 슬픔, 죽음과 같은 불편한 주제들은 외면하거나 잊어버리고 더 즐겁고, 더 편안하고,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31. 그러나 전도자는 오늘 우리의 삶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잊지 말고 마음에 두라고 도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 나라의 지혜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32.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의 모든 슬픔과 죽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라는 가장 큰 초상집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33. 예수님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통과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이라는 참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34.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잔칫집만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때로는 기꺼이 초상집으로 향할 용기가 있습니까?
35. 당신의 삶은 당장의 즐거움만을 좇아가는 삶입니까, 아니면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으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입니까?
36. 죽음을 기억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죽음을 통해 인생의 유한함을 배우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인생의 진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슬픔과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초상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그래서 그곳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무엇이 영원한 가치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하옵소서.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주시고, 죽음을 기억함으로 오늘을 더욱 진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