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화요일-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 오늘도 전도서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2.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굴곡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굽은 길'이며, 이 길을 내 힘으로 억지로 펴려고 하는 것이 교만임을 배웠습니다.
3. 그렇다면 그 '굽은 길' 위에서 우리가 할 일은 절망이나 포기뿐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그 굽은 길을 걸어가는 가장 지혜로운 두 가지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4. 전도자는 먼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인생이 순조롭고 뜻한 바가 이루어지는 좋은 날에는,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라는 것입니다.
5. 모든 것이 형통한 날에 기뻐하라는 권면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권면입니다.
6. 우리는 순수하게 기뻐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좋은 날이 와도 이러다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그 기쁨을 만끽하지 못합니다.
7. 우리는 왜 형통한 날에도 기뻐하지 못합니까? 인생의 신비를 기뻐하고 감탄하는 경탄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8. 형통한 날을 기뻐한다는 것은 감사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9. 아침에 눈을 뜨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이 모든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0. 기뻐하라는 전도자의 권면은, 인생의 경탄을 회복하라는 전도자 요청입니다.
11. 그렇다면 이 기쁨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기쁨은 함께할 때 완성됩니다. 기쁨은 홀로 누리기 어렵습니다. 함께 기뻐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12. 생일, 결혼기념일, 입학, 졸업 등 우리가 번거롭게 여기기도 하는 삶의 소중한 의례들은 사실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한 소중한 장치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서로 축하하며 사는 게 잘 사는 것입니다.
13. 이런 기쁨의 훈련이 왜 중요합니까? 형통한 날에 비축해 둔 기쁨의 힘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닥친 곤고한 날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14. 마치 햇살 좋은 날 태양열로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 두면, 흐린 날 그 에너지로 불을 밝힐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15. 전도자의 두 번째 권면은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삶이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날, 그날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16. 여기서 되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것은 깊이 생각하고 숙고한다는 뜻입니다.
17. 많은 사람이 곤경이 닥치면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삶으로 복귀"해 버립니다.
18. 많은 이들에게 고난은 그저 빨리 벗어나야 할 시련일 뿐입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곤고한 날에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19. 곤고한 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우리 삶을 더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20. 고난 속에서 우리는 질문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곤고한 날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우리 인생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21. 이런 성찰이 왜 중요합니까? 곤경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가운데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22.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모든 곤고함이 개인의 성찰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우리가 겪는 고난은 불의한 구조와 시스템에서 비롯됩니다.
23. 그럴 때 성찰은 단순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무엇이 이 고통을 만들어 내는지, 이웃의 곤고함에 내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합니다.
24. 스스로 상실의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더 깊은 존재로 만듭니다.
25. 지혜로운 사람은 그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성숙의 기회로 삼습니다. 곤고한 날은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손길입니다.
26. 예수님께서도 배고픔과 배신, 모욕과 죽음의 곤고한 날들을 통과하셨기에, 우리의 곤고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십니다.
27.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인생에 이처럼 좋은 날(형통)과 나쁜 날(곤고)을 뒤섞어 놓으셨을까요? 왜 이 길을 굽게 만드셨을까요?
28.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래를 아는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30. 내가 미래를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31.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교차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좋은 날에 우리는 내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32. 마찬가지로 어려운 날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절망할 수 없습니다. 두 날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33. 형통한 날을 지날 때는, 죄책감이나 불안함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기뻐하고 경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시길 바랍니다.
34. 반대로 곤고한 날을 지날 때는, 나를 성숙하게 하시는 '성찰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원망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이 시간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35. 이 두 날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이 굽게 하신 길을 걷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36.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37. 전도자의 지혜는 이것입니다. 좋은 날만을 바라는 것도, 나쁜 날만을 두려워하는 것도 지혜가 아닙니다. 두 날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형통한 날을 주실 때, 어린아이와 같이 경탄하며 기뻐할 줄 알게 하시고 곤고한 날을 만날 때, 좌절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그 시간을 통해 성숙해지는 성찰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좋은 날에도 어려운 날에도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길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