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일 월요일-지혜의 끝에서 만난 하나님의 섭리

 

전도서 723-24

7: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7: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1. 전도서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복된 하루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지난 묵상에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든 말 특히 비방이나 저주에 마음을 두지 않는 '듣는 지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3.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분노하는 자신도, 결국은 가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비방하거나 저주하였기 때문입니다.

 

4.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세상에 완전한 의인이 없다는 이 냉철한 깨달음 앞에서, 전도자는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5. 7: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6.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전도자가 지금까지 관찰한 삶의 모든 모순을 의미합니다.

 

7. 구체적으로, 의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7:15), 세상에 완전한 의인이 없다는 사실(7:20),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인간관계의 본질(7:21-22) 등입니다.

 

8. 전도자는 이 모든 세상의 현상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도자는 이 모든 현상에 대해 "지혜로 시험하며"라고 말씀합니다.

 

9. 전도자는 지혜라는 도구로 이 모든 것을 분석하고 검증하려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도자가 인간의 이성과 명철,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파헤치고, 그 이치를 규명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10. 전도자는 "왜 세상은 불공평한가? 왜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 연구했습니다.

 

11. 이것이 전도자가 스스로 "지혜자가 되리라" 결심하였던 결정적 이유입니다.

 

12. 그는 '지혜'를 인간이 노력하면 정복할 수 있는 학문의 한 분야처럼, 혹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13. 그러나 지혜자가 되리라 결심하였던 전도자의 솔직한 결론은 무엇입니까?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입니다.

 

14. 이것은 지혜의 왕으로 불렸던 전도자가, 자신의 지혜로 인생의 근본적인 답을 찾으려 했으나 자기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15. 전도자는 이성, 경험, 학문과 같은 인간의 지혜로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섭리나 세상의 근본 이치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인간 지혜의 한계를 고백한 것입니다.

 

16. 책 한 권 읽은 사람은 자신이 읽은 책 한 권으로 마치 세상에 대해 다 알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17. 하지만 정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이 아는 것보다 모른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18.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밤하늘의 특정한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을수록, 그 별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멀리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19. 전도자가 깨달은 것은, 지혜는 인간이 노력해서 쟁취하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 우리는 혹시 우리의 지식과 경험, 우리의 신앙 연륜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1. 전도자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며, 왜 지혜가 멀리 있는지를 24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2. 7: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3. 전도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그것,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24. 그것은 바로 '세상의 근본 이치',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물의 질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같은 것입니다.

 

25. 전도자는 그것이 "멀고 또 깊고 깊도다"라고 탄식합니다.

 

26. 여기서 '멀다'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의미하고, '깊고 깊다'라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 감히 측정할 수 없는 차원을 의미합니다.

 

27. 인간의 지혜는 얕은 바다에서는 유용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섭리라는 깊은 바다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합니다.

 

28.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다시 말해 누가 그것을 완전히 꿰뚫어 알 수 있겠는가?”라고 묻습니다.

 

29.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없다.”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전도자가 인간의 지혜로 평생을 '시험'하며 얻은 최종 결론입니다.

 

30. 우리는 '알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로 모든 것을 분석하고 통제하려 합니다.

 

31.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통달하는 것'(mastering)이 아니라 '신뢰하는 것'(trusting)입니다.

 

32. 전도자는 인간 지혜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통달'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멀고 깊은' 섭리를 그저 경외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33. 이것이 바로 전도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34.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고난과 모순 앞에서 내가 지혜자가 되어 다 파악하겠다.”라고 발버둥 치지 마십시오.

 

35. 오히려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라는 전도자의 겸손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36.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멀고 깊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 엎드릴 때, 비로소 인간의 지혜가 멈춘 그 자리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가 시작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작은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와 하나님의 뜻까지 '통달'하려 했던 교만을 고백합니다. 평생을 바쳐 지혜를 추구했던 전도자마저도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한계와 무력함을 겸손히 인정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주님의 지혜가 시작됨을 믿으며, 오직 주님만을 경외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