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화요일-맞서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지혜
전도서 7장 25-26절
전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전7: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1. 오늘도 전도서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함께 하시어 복된 하루 살아내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어제 우리는 지혜자가 되려 했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다."라는 전도자의 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달할 수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3.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전도자가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완전한 지혜 대신,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4. 전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5. "내가 돌이켜"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완전한 지혜에 도달하려던 시도에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하던 시선을 현실로 돌린 것입니다.
6. 시선을 돌린 전도자는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합니다. 여기서 "전심으로"는 전도자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이 연구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전도자가 전심으로 연구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8. 전도서는 이것에 대해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했다고 기록합니다.
9. '지혜와 명철'을 알고 싶었던 전도자가, 왜 갑자기 '악한 것'과 '어리석은 것', 심지어 '미친 것'을 연구하겠다고 나선 것일까요?
10. 여기에 전도자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전도자는 어제 우리가 묵상했듯이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1. 그렇다면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입니다. 전도자는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역으로 선함과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2. 마치 빛을 이해하기 위해 어둠을 연구하고, 건강을 알기 위해 질병을 해부하듯이, 전도자는 지혜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인간의 악함과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지혜로 가는 새로운 길이라고 본 것입니다.
13. 전도자는 악과 어리석음과 미친 것을 연결합니다. 악한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것은 궁극적으로 "미친 것"입니다.
14. 왜 악을 행하는 것이 미친 것입니까? 죄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해로운 줄 알면서도 계속 그것을 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광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5.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발견한 악의 본질입니다.
16. 그렇다면 전도자가 연구하여 발견한 악하고 어리석고 미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17. 전7: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18. 여기서 올무는 짐승을 잡는 덫이고, 그물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이며, 포승은 사람을 묶는 줄입니다. 이 모든 이미지는 '자유를 빼앗고 옭아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 따라서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고대 문학에서 '어리석음'이나 '치명적 유혹'을 종종 의인화했던 방식입니다.
20. 이것은 단순히 특정 성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것을 은유하는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권력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으며 성적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21. 전도자는 이것을 "사망보다 더 쓰다"라고 말씀합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 있으되 자유를 잃고, 영혼이 포로가 되어, 파멸을 향해 끌려가는 것입니다.
22.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은 삼손입니다.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인 용사 삼손이 드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두 눈이 뽑힌 채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23.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나 고통이 아닙니다. 오히려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유혹에서 시작됩니다.
24. 조금만 더 돈을 벌자는 생각이 결국 불법을 저지르게 만들고, 한 번쯤은 괜찮다는 생각이 중독의 시작이 되며,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파멸의 첫걸음이 됩니다.
25. 전도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6. 여기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와 "죄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유혹을 이기는 능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유혹을 '피하느냐 맞서느냐'의 차이입니다.
27. 많은 사람이 착각합니다. “나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 나는 강하다. 나는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교만입니다.
28.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9. 자신은 절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넘어집니다.
30.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유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유혹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유혹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31.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을 이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도망쳤습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32.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유혹의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 유혹이 있는 장소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 이것이 유혹을 대처하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33. 왜 유혹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의 표현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34. "나는 약합니다. 나는 유혹 앞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며 저는 넘어집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신앙의 지혜입니다.
35. 우리는 완전한 지혜자는 될 수 없어도, 주님을 의지함으로 유혹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없어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위험한 자리를 피할 수는 있습니다.
36. 오늘 하루, 우리를 올무처럼 옭아매려는 유혹이 있다면, 용기 있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올무와 그물처럼 옭아매려는 유혹이 우리 주변에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압니다. 주님, 우리에게 겸손을 주소서. 스스로 과신하지 않게 하시고 요셉처럼 유혹의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지혜를 주시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