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화요일-죽음을 아는 자만의 축복
전도서 9:5-6
전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전9:6 그들의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이 다시는 몫을 가지지 못하리로다
1. 또 하루의 일상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소중한 하루를 잘 살아내시길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2.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전도자의 말씀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한 소망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3.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전도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4. 전도자는 오늘 본문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결정적인 차이를 한 가지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5. 전9:5a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6. 죽을 줄을 아는 것이 어떻게 축복입니까? 오히려 불행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전도자는 죽을 줄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산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말씀합니다.
7.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단순히 죽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이상입니다.
8.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뜻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9.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은 오늘을 귀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낭비하지 않게 합니다.
10.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합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분별하게 만듭니다.
11. 만약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를 대충 흘려보내도 내일이 무한히 남아 있기에 삶의 긴장감도, 의미도 사라질 것입니다.
12.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말하는 '산 자의 지혜'입니다.
13. 반면 전도자는 죽은 자들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14.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죽은 자들이 더 이상 해 아래의 삶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15. 죽은 자들은 아침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기쁨인지 모릅니다.
16. 죽은 자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해 아래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17. 전도자는 죽은 자들은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18. 전9:5b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19. 여기서 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삶에서 누리는 모든 좋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일의 보람, 관계의 기쁨, 성취의 만족입니다.
20. 산 자는 수고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한 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 하지만 죽은 자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됩니다. 죽음은 내가 수고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보람과 기쁨의 통로를 차단합니다.
22. 전도자는 계속해서 죽은 자들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졌다고 말씀합니다.
23. 전9:6a 그들의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24.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왜 산 자가 누리는 축복에 대해 사랑만이 아니라 미움과 시기도 포함하여 말할까요?
25.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전도자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삶에는 긍정적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6. 우리는 사랑도 하지만 때로 미워하기도 합니다. 감사하기도 하지만 시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며 이런 것들이 인간을 힘들게 합니다.
27. 하지만 전도자의 놀라운 통찰은 비록 부정적 감정일지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28.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관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시기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무언가를 열망한다는 뜻입니다.
29. 물론 우리는 미움과 시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죽은 자는 극복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산 자만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30.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죽은 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다고 말씀합니다.
31. 전9:6b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이 다시는 몫을 가지지 못하리로다
32. 해 아래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죽은 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영원히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3. 이것은 죽은 자들이 더 이상 이 세상의 삶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일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즐길 수 없습니다.
34. 산 자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나누어야 할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산 자의 몫입니다.
35. 하지만 죽은 자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됩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36. 전도자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37.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주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38. 내가 죽을 존재라는 정직한 자각 위에서,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감정과 수고를 하나님의 선물로 누리십시오. 그것이 헛된 세상을 가장 의미 있게 살아내는 지혜입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
영원하신 생명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죽음을 의식하며 살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을 줄을 안다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는 축복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몫을 감사히 누리게 하시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심지어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살아있기에 누리는 특권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부활과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