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일 월요일-용서를 통해 드러내신 예수님의 저항

 

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1. 이번 주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주간입니다.

 

2. 2026년 고난주간을 보내며 이번 주 아침 묵상은 전도서 묵상을 잠시 중단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3.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4. 첫 번째는 오늘 묵상하는 말씀으로 누가복음 2334절에 기록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5. 두 번째는 누가복음 2343절에 기록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6. 세 번째는 요한복음 192627절에 기록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라는 말씀입니다.

 

7. 네 번째는 마태복음 2746절과 마가복음 1534절에 기록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입니다. 이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8. 다섯 번째는 요한복음 1928절에 기록된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입니다.

 

9. 여섯 번째는 요한복음 1930절에 기록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입니다.

 

10.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은 누가복음 2346절에 기록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


11.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오늘 묵상하는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12. 발가벗겨진 채 온몸이 찢겨 나가는 극한의 고통과 군중들의 조롱 가운데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저주가 아니라 용서였습니다.

 

13. 우리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장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의 인격적인 위대함에 감탄하며, 갈등 관계에 있는 이웃을 용서해야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으로 나아가곤 합니다.

 

14. 물론 이런 식의 해석과 적용을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뜻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15.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는 단순히 몇몇 군인이, 몇몇 종교 지도자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16.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 처형은 로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여 저항을 억누르는 공포 전략이었습니다.

 

17.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로마 제국의 폭력 체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기득권 그리고 이들에게 선동된 군중심리가 한데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구조적 악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18. 예수님은 바로 이 거대한 폭력과 악의 시스템 한가운데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19. 예수님의 이 기도는 단순히 나를 괴롭힌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20. 제국의 폭력, 종교적 위선의 시스템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이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21. 불의한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자기들이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22.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또는 약자 차별의 말을 내뱉으면서 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3. 이민자의 값싼 노동으로 자신들의 삶이 지탱되면서도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정책을 아무 생각 없이 지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4. 값싼 물건을 끊임없이 소비하면서도 그것이 누구의 저임금과 착취로 가능한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25.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불의한 시스템과 제도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6. 그래서 우리에게는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기도와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27.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집단은 개인보다 더 쉽게 자기기만에 빠진다라고 경고했습니다.

 

28.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살다 보니 개인의 책임이 분산되면서 도덕적 감각이 무뎌집니다. “나 하나쯤이야”, “원래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어라며 우리는 구조적 악의 톱니바퀴가 되어갑니다.

 

29. 2013년 방글라데시에 있었던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로 1,100명이 넘는 봉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H&M, Zara 같은 미국 유명 브랜드의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30. 사고 다음 날, 한 기자가 미국 쇼핑몰에서 소비자들에게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 사고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31. 대부분 소비자는 몰랐다고 대답했고 이 사고를 안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요? 나 혼자 안 사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32.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히 모르고 지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값싼 면죄부가 아닙니다.

 

33. 예수님의 용서는 자신들이 하고서도 외면하거나 회피하였던 일들을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오늘 하루, 내가 소비하는 물건 뒤에 숨은 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34.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본회퍼 목사는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분했습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 거저 얻으려는 용서이고, 값비싼 은혜는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제자의 길입니다.

 

35.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용서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온몸으로 불의한 폭력을 받으면서도 미움이 아닌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36. 우리는 오늘 어떤 구조 속에 묶여 있으면서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편안함을 위해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는 악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직면한 자리에서 미움의 연쇄를 끊어내려는 거룩한 영적 저항입니다.

 

38. 용서를 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도 모르게 악한 구조와 시스템에서 폭력의 가담자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자비로운 부르심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사랑과 정의의 주님, 우리는 오늘도 거대한 세상의 시스템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구조적인 악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용서의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어, 미움과 저주의 고리를 끊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거룩한 저항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절망의 악순환에서 건져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