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수요일-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1. 고난주간 세 번째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2. 골고다 언덕,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세상을 향해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3. 흔히 가상칠언이라 불리는 이 말씀들은 인류를 향한 가장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4.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시던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와 그 옆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5. 또한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 마리아의 곁에 서 있던 사랑하는 제자를 바라보시고는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6.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향해 던지신 여자여라는 호칭이 오늘 우리의 생각에는 예의 없는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7. 하지만 자기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의 없는 무례한 호칭이 아닙니다.

 

8. 예수님께서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른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사적인 혈연관계에서 공적인 신앙 공동체의 관계로 확장하신 것입니다.

 

9. ‘여자여라는 예수님의 호칭은 혈연의 시대를 넘어, 믿음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10.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아들이라고 하신 사랑하는 제자는 누구일까요?

 

11. 교회의 전통으로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12. 이것은 이 제자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곁을 지키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13.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제안하신 새로운 돌봄의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14.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서 아들이 죽으면 어머니에 대한 돌봄은 친족 남성이 책임지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15. 하지만 예수님은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십니다. 동시에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이 제자를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 마리아는 단순히 아들을 잃고 누군가의 보호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제자를 아들로 받아들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됩니다.

 

17. 십자가 아래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 공동체, 이것이 예수님이 꿈꾸신 교회의 원형입니다.

 

18. 조국을 떠나 타국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가족은 가장 따뜻한 이름인 동시에 가장 아픈 단어이기도 합니다.

 

19.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은 우리 마음 한구석에 늘 무겁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 문화 속에서 자라나 부모와 언어적, 문화적 벽을 느끼는 자녀들과의 갈등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20. 그리고 우리의 가정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 문화가 다른 이들이 만난 혼혈 가정, 그리고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소수자 가족도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21. 안타깝게도 교회는 오랫동안 정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그어왔습니다. 아빠, 엄마,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틀에 맞지 않는 이들을 은근히 소외시키거나 불편해했습니다.

 

22.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을 넘어서 신앙으로 맺어진 선택 가족(Chosen Family)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23. 선택 가족이란 생물학적 연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돌보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결속을 의미합니다.

 

24. 십자가 아래 함께 서서 서로의 슬픔을 목격한 사람들, 서로의 상처를 돌볼 준비가 된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책임지기로 약속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진정한 가족입니다.

 

25.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교회는 가족들의 모임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26. 이것은 교회는 생물학적 가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 형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가족을 꿈꾸고 있습니까? 혈연과 국적과 언어가 같아야 우리 가족입니까?

 

28. 아니면, 다른 피부색과 다른 언어, 다른 성적 정체성과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까지도 보라, 네 어머니라보라, 네 아들이라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까?

 

29. 진정한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서 가족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곳입니다.

 

30. 멀리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교회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고, 부모의 손길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영적인 부모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31.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32.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가 서로를 가족으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새로운 가족으로 묶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3.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배제가 아니라 확장입니다. 경계 긋기가 아니라 품기입니다. 판단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34.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절의 자리가 아니라 연결의 자리입니다.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곳입니다.

 

35.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십자가 아래에서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책임지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모든 이의 아버지요 어머니 되신 하나님,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혈연이 아니라 선택으로, 배제가 아니라 돌봄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을 세우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외로운 이들에게는 따뜻한 품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아 소외된 이들에게는 안전한 안식처가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 아래 함께 서서 서로를 돌보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의 신비를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