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목요일-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장 46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 고난주간 네 번째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 중 가장 불편한 말씀입니다.
2. 지금 시간으로 오후 3시 즈음, 골고다 언덕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예수님은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4.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라 고백 되던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울부짖으십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당혹스러운 말씀입니다.
5. 많은 신학자가 예수님의 이 당혹스러운 외침의 모순을 덜어내려고 예수님은 시편 22편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6.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7. 하지만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저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에서 이 순간을 "하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8. 예수님은 하나님이 도무지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절대적 고독,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그야말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그 자리까지 내려가셨다는 것입니다.
9. 예수님은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신학적으로 포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향해 "어찌하여"라고 따져 물으셨습니다.
10.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불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깊은 관계에 있는 자만이 던질 수 있는 처절한 신뢰의 역설입니다.
11. 예수님의 절규에 찬 외침은 불의한 체제의 폭력 가운데서 침묵만 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입니다.
12.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13. 권력의 폭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이들,
차별과 혐오 속에 숨죽여 우는 자들, 가난과 질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망하는 이들
14. 예수님은 바로 이들의 자리, 도무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비극적인 삶의 현장에 서 계십니다.
15.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에 찬 예수님의 외침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고통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
16.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이미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17.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에서 어린 소년이 교수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저기 교수대에 매달려 계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8. 예수님은 하나님 없는 자리,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바로 그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깊은 절망에 빠진 자를 만나 주신 것입니다.
19.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슬픔이나 한탄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을 겪거나 큰 상실을 경험한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낍니다.
20. 하지만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절규는 우리에게 슬퍼할 권리를 허락합니다. 하나님께 따지고 소리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십니다.
21. 성경은 탄식의 기도로 가득합니다. 시편 150편 중 약 60편이 탄식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욥기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질문과 항의입니다.
22. 트라우마와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해결책을 서둘러 제시하기보다, 그들의 탄식을 함께 공감해 주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회복입니다.
23.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때로 이와 같습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적 고립,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 저를 이곳에 버려두신 것입니까?"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24. 예수님은 바로 그 질문을 먼저 던지셨던 분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성도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정직하게 절규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25. 예수님의 절규에도 곧바로 하나님의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침묵은 계속되었습니다.
26. 하지만 그 침묵은 외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아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계셨습니다.
27.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받는 자와 함께 울고 계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28.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탄식 없는 찬양은 값싼 찬양이다. 슬픔을 거치지 않은 기쁨은 깊이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29.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절규는 하나님께 닿지 않는 메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슴을 파고드는 기도가 됩니다.
30. 우리 교회가 누구나 찾아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어찌하여"라고 물을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1. 슬픔이 깊은 이들의 곁을 지키며,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탄식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32.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탄식이 있다면, 그것을 감추지 마십시오. 예수님처럼 정직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33. 누군가의 아픔에 섣부른 조언을 건네기보다, 그저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34. 우리가 함께 울 때, 예수님이 머무셨던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예수님의 절규가 오늘 우리의 탄식이고 절규입니다. 낯선 타국 땅에서, 또 기도가 막막한 침묵의 밤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홀로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울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 안에서 참된 위로를 얻게 하옵소서.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