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토요일-거룩한 맡김
누가복음 23장 46절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1. 고난주간 여섯 번째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다음 날 토요일입니다. 평소 토요일에는 아침 묵상이 없지만, 가상칠언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2. 오늘 묵상하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남기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3. 고난주간 우리가 나누었던 가상칠언의 여정을 돌아보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하셨고, 약속하셨고, 새로운 가족을 만드셨고, 버림받음을 절규하셨고, 목마름을 호소하셨고,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4.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예수님의 육신은 차가운 십자가에 박혀 무력해졌지만, 영혼의 손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끝까지 붙잡으십니다. 이것은 '관계적 신뢰의 정점'입니다.
5.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버려진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근원적 신뢰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6. 우리는 소위 통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통제라는 우상”을 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7. 미래를 계획하고, 위험을 관리하고, 내 인생과 내 자녀와 내 교회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합니다.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곧 공포입니다.
8.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미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 온 사람들입니다.
9.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민 생활에서 우리는 적어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꽉 붙들고 싶어 합니다.
10. 그래서 종종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을 믿는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변질되곤 합니다.
11. “하나님, 내 기도대로 해주옵소서.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꿔주옵소서.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옵소서.”
12. 그러나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철저한 무력함의 자리입니다. 몸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립니다. 가장 믿었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13.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집착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는 항복이었습니다.
14.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기와 맡김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15. 포기(Giving up)는 “어차피 안 된다, 아무 의미 없다”라는 절망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관계의 단절이자 허무주의입니다. 포기는 희망의 상실이고, 손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16. 하지만 맡김(Surrender)은 “나는 다 알지 못하지만, 당신의 품이 나의 마지막 자리라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만 나옵니다.
17. 맡김은 관계 안에서의 선택입니다. “아버지 손에”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18. 그냥 어디론가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라는 관계 속으로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19.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하나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20.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아버지의 손이 나를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21.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가 쥐고 있는 통제의 손을 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이 시작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22. 우리는 모두 맡기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것이 건강, 자녀, 사랑, 재정, 사역일 수 있을 것입니다.
23. 어떤 부모는 자녀를 맡기지 못합니다. “내가 이렇게 키워야 해. 이 대학에 보내야 해. 이런 직업을 갖게 해야 해.” 그러나 자녀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할 생명입니다.
24. 어떤 이는 건강을 맡기지 못합니다. “나는 절대 아프면 안 돼. 약해지면 안 돼.” 그러나 우리 몸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할 연약한 육신입니다.
25. 2020년 팬데믹 때, 우리는 많은 것이 우리 통제 밖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계획해도, 아무리 준비해도,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26. 그때 어떤 분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무것도 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며 탄식했습니다.
27. 우리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 손에 맡기시면 됩니다. 이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28. 맡김은 개인의 영성만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도 맡김을 배워야 합니다.
29. 한국 교회와 미주 한인 교회는 오랫동안 성장과 성공의 패러다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교회 쇠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30.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이민 2세들은 신앙을 계승하지 않고, 교인 수는 줄어듭니다.
31. 이럴 때 교회는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더 세게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옛날 방식을 고수하자. 더 강하게 가르치자. 엄격하게 관리하자.”
32. 다른 하나는 맡김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33.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오늘날 교회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붙들고 있는 전통, 방식, 구조,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겠니?
34. 기후 위기 앞에서, 민주주의의 후퇴 앞에서, 불평등의 심화 앞에서, 교회는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35.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맡김의 영성입니다. 통제의 손을 놓고, 신뢰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36. 이것은 수동적인 대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능동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맡김은 적극적 선택입니다.
3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마치셨을 때, 그 누구도 십자가 뒤에 숨은 부활의 빛을 알지 못했습니다.
38. 내일은 부활주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맡김 없이는 올 수 없습니다. 죽음을 하나님께 맡긴 자리에 부활의 아침이 찾아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 영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앞에서 내 인생을, 가족을, 교회를 내 뜻대로 주무르려 했던 통제의 욕망을 고백합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신앙을 도구로 삼았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통제하려는 손을 놓고, 주님의 선하신 손에 우리를 맡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