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 월요-내가 틀릴 수도 있다

 

전도서 10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1. 지난주에는 고난주간을 보내며 전도서 묵상을 잠시 중단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2. 오늘부터는 한 주간 중단했던 전도서 묵상을 계속해서 이어가려고 합니다.

 

3. 오늘은 전도서 10장의 말씀을 마무리하며 전도서를 묵상하며 우리가 배워야 하는 지혜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4. 전도서 10장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비시키는 격언들로 가득합니다. 전도자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비하며 반복하여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아주 작은 어리석은 일 하나가 평생을 쌓아 올린 지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전도서 10: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7. 전도자는 왜 이토록 어리석음을 경계합니까? 우리가 어리석음 대신 지혜를 갈고 닦아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8. 전도서 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9. 무딘 날을 그냥 쓰면 힘만 더 들 뿐입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가장 갈아야 할 날은 무엇입니까?

 

10. “나는 항상 옳다라는 완고한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옳다는 잘못된 확신을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 삶이 고단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상처를 입습니다.

 

11. 전도서를 읽고 묵상할 때, 반드시 마음에 품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남긴 격언이 당시에는 모두 옳았던 말씀이라도 지금은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12. 그 대표적인 예가 왕에 대한 절대복종의 가르침입니다. 전도서 8:2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13. 이것은 왕정 시대, 왕이 곧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믿던 시절의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14. 아무리 성경에 기록된 격언이라도 시대와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기록된 글자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것이 참된 성경 읽기와 묵상의 지혜입니다.

 

15.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전도자의 말도 시대에 따라 다시 검토하고 그 말에 담긴 의미와 뜻을 찾아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믿음과 확신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16. 1847,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빈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7.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분만을 도울 때 산모 사망률이 10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료 의사들에게 손을 씻자고 제안했습니다.

 

18. 당시 의학계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거의 모든 의사가 그의 주장을 비웃으며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이 옳다는 확신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19. 제멜바이스는 결국 동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다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수년 후 파스퇴르가 세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야 비로소 역사는 제멜바이스가 옳았음을 인정했습니다.

 

20.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우리가 옳다라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21. 17세기 교회는 갈릴레이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하자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틀렸습니다.

 

22. 19세기 미국 남부의 많은 기독교인은 성경을 근거로 노예제도를 옹호했습니다.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틀렸습니다.

 

23. 지나온 교회의 역사는 교회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오히려 더 크게 틀릴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4.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길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이 위험은 더 커집니다. 오랜 믿음의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믿게 됩니다.

 

25.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준이심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오히려 내가 틀렸구나를 더 자주 깨닫습니다.

 

26.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첫출발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틀렸다는 항복의 고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7. 이 겸손은 무엇보다 우리의 말에서 먼저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101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28.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말로 실수를 합니까? 근본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입을 열기 때문입니다.

 

29.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고백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30. 내가 틀릴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31. 1994,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인종차별 제도가 마침내 끝났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수십 년간 백인이 흑인을 법으로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32. 그 긴 억압이 끝났을 때,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가리 찢어진 나라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이끌었던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33. 용서는 나약함이 아니라 강함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선언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부서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34. 자기가 옳음을 증명하는 말 대신, 함께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 분열된 나라를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35.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36. 오늘 대화를 나누기 전에, 판단을 내리기 전에,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이 한 문장을 먼저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37. 배우자와 의견이 다를 때, 자녀가 내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할 때, 오래된 교우와 신앙 문제로 부딪힐 때, 단 한 번만 속으로 되뇌어 보십시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38. 이 지혜가 말의 방향을 바꿉니다. 비수 같은 말을 약이 되는 말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지혜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참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나는 항상 옳다는 교만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의 무디어진 교만의 날을 보게 하옵소서. 내가 기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준이 되심을 고백하고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는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마음에 품고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 누군가와 마주할 때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는 겸손으로 우리의 말이 비수가 아닌 약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은혜를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