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일 화요-나는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전도서 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1. 전도서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라며 화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지금까지 우리는 전도서 11장의 말씀을 통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는 인생의 바다를 어떻게 항해해야 하는지 묵상해 왔습니다.

 

3. 전도자는 우리에게 결과를 계산하지 말고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1)고 했고, 일곱에게나 여덟에게'(2) 아낌없이 나누라고 권면했습니다.

 

4. 어제 묵상에서는 완벽한 환경과 조건만 살피다가 파종과 추수의 때를 놓치는 나약함(4)을 경계하며, 알 수 없는 내일을 핑계 삼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라는 전도자의 권면을 묵상했습니다.

 

5.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 115절은 우리는 왜 미래와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도 떡을 던지고 씨를 뿌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6. 그것은 바로 인간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완전한 초월성 사이의 간극 때문입니다.

 

7.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거룩한 평안과 담대한 믿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8.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전도자는 알지 못한다는 표현을 두 번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9. 전도서 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10.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전도자의 의도적인 반복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지식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냉철한 선언입니다.

 

11. 전도자는 인간이 가장 흔하게 접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의 길과 인간의 가장 경이로운 신비인 태아의 성장 과정을 예로 듭니다.

 

12. 우리는 바람이 부는 것은 느끼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13. 또한, 어머니의 태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고 그 작은 뼈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 오묘한 생명의 신비를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전부 헤아릴 수 없습니다.

 

14. 전도자는 눈에 보이는 자연 세계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15. 하나님께 속한 감추어진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파고들어야 할 영역이 아닙니다. 그 경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16. 성경은 인간의 유한함, 즉 알 수 없음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조주를 경외하는 믿음의 필수적인 깨달음으로 여깁니다.

 

17.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높다고 선포했습니다(55:8-9).

 

18.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부요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이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11:33).

 

19. ,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존재'임을 정직하게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시작입니다.

 

20. 알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이성의 잣대로 하나님을 판단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그분의 신비로운 섭리 앞에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21. 성경에서 인간의 알 수 없음과 하나님의 신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욥입니다.

 

22.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소유와 자녀를 잃고 자신마저 몹쓸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알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23. "왜 정직하게 산 내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가?" 욥은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따져 물었지만, 고난의 구체적인 이유는 끝내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24. 마침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셨습니다.

 

25. 그러나 욥은 알 수 없음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섰고 마침내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26. 이민 생활에서 우리도 욥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성실히 일했는데 비즈니스는 왜 어려워지는지, 자녀는 왜 나의 기대와 다른 길로 가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27. 그러나 욥이 알지 못함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그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8.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 말씀은 욥이 가졌던 그 '모름의 지혜'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알지 못한다는 지혜와 깨달음이 필요합니까?

 

29. 어제 묵상한 4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해야만 씨를 뿌리고 추수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30.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완벽한 조건이 오기를 기다리는 무모한 기다림을 멈출 수 있습니다.

 

31.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할 수 있는 파종을 감행합니다.

 

32. 모든 것을 다 알아야만 평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시도입니다.

 

33. 내가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나는 모른다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염려의 짐을 하나님의 어깨 위로 옮겨놓을 수 있습니다.

 

34.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내 몫의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하나님 경외하는 삶의 평안입니다.

 

35.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36. 알지 못하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이것이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이며 가장 깊은 지혜입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하고 태 안에서 생명이 자라는 신비를 알지 못하듯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합니다. 다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임을 고백합니다. 그 한계 앞에 겸손히 무릎 꿇습니다. 욥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알지 못하기에 주님의 손을 잡습니다. 알지 못하기에 오늘도 기도합니다. 알지 못하는 우리를 온전히 아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오늘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