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일 목요-아직 괜찮다는 착각

 

전도서 12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1. 고단한 이민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 인생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 묻고 답을 찾아가는 모든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2. 지금까지 우리는 전도서 121절과 2절을 통해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전도자의 단호하고도 긴박한 명령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3.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네 번의 전에로 제시했습니다.

 

4.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낙이 없는 날이 가깝기 전에, 빛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5.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전도자가 말씀하는 그 곤고한 날이 구체적으로 어떤 날인지를 그림처럼 묘사합니다.

 

6. 12: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7. 오늘 묵상하는 말씀에서 전도자가 말씀하는 그런 날121-2절에서 전도자가 말씀한 곤고한 날, 낙이 없는 날, 빛이 어두워지는 날을 의미합니다.

 

8. 전도자는 그런 날에 네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고,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지고, 맷돌질 하는 자들이 그치고, 창으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9. 이 네 가지 전도자의 묘사를 해석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이것을 노년의 신체적 쇠락을 알레고리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10.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11. 12:3(새번역) 그 때가 되면 너를 보호하는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12.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전도서 123절과 4절의 말씀은 인간의 육체를 하나의 ''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13. 집을 지키는 자들은 우리의 '두 팔과 손'을 의미합니다. 집의 안전을 책임지고 일을 하던 든든한 일꾼이었던 두 손이,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파르르 떨리게 되는 현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14. 다음으로 힘 있는 자들은 우리 몸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인 '두 다리와 허리'를 뜻합니다.

 

15. 젊은 시절 거친 노동을 버텨내던 꼿꼿한 다리와 허리가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굽어지고 약해진다는 노년의 신체적 변화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16. 또한 맷돌질하는 자들은 음식을 먹는 '치아'를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나이가 들어 치아가 하나둘 빠지고 약해져서 음식을 씹을 수 없는 노년의 신체적 고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17. 마지막으로 창들로 내다보는 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력)'을 뜻한다고 여깁니다. 시력이 감퇴하여 예전처럼 밝고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18. 그러나 오늘날 현대 성서학자들 중에는 교회의 전통적인 알레고리적 해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본문의 말씀을 해석합니다.

 

19. 오늘 묵상하는 전도서의 말씀을 단순히 한 사람의 노화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온 집안과 공동체가 무너지는 종말적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떤다는 것은 가정과 공동체를 지키던 파수꾼들이 두려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안전망이 무너지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어떤 인생도 끝까지 안전할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21.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진다는 것은 능력과 부와 권세를 가진 자들이 허리를 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세상에서 힘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그런 날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22. 전도자는 이미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은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도 구부러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23. 맷돌질 하는 자들이 그친다는 것은 일상의 노동이 멈추는 것입니다. 맷돌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매일의 양식을 만들던 도구였습니다.

 

24. 맷돌 소리가 그친다는 것은 일상의 리듬이 끊기고, 생계를 유지하던 활동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의 일상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25. 창으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시력의 쇠퇴이자 동시에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6. 결국 신체적 노화든 사회적 종말이든, 이 모든 해석이 가리키는 진리는 우리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27. 그렇다면 전도자는 처참한 쇠락의 장면을 왜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절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떨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28. 전도자의 의도는 하나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지금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9. 우리는 종종 "아직 괜찮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건강하고, 아직 힘이 있고, 아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그 "아직"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착각합니다.

 

30. 그러나 전도자는 우리가 착각하는 "아직"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고 경고합니다. 특별히 이민자의 삶을 사는 우리는 더욱 이 말씀 앞에 멈춰야 합니다.

 

31. 우리는 아직 일할 수 있는 팔과 다리가 있고, 아직 이 땅에서 맷돌질을 계속할 수 있고, 아직 세상을 향해 창문을 열 수 있다고 하는 바로 그때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32. 쇠락은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옵니다. 하지만 창조주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쇠락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33. 떨리는 손과 흐려진 눈은,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이 오직 창조주의 손길 위에 있었음을 고백하게 만드는 흔적입니다.

 

34.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인 되신 주님께 다시 돌려드려야 할 날이 오기 전에, 오늘이라는 기회를 마음껏 누리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직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고, 두 발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눈을 열어 말씀을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고 맷돌 소리가 그치는 그날이 오기 전에, 지금 바로 이 순간 주님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이 몸과 이 하루를, 감사히 받아 창조주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