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57:19, 마태복음 18:18-19
그리스도인의 말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반복하는 말씀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는 이유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분명한 방법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가장 확실한 길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인격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분명한 길은 말을 바꾸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말에는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윌리암 디엄(William J. Diehm)이라는 목사님이 쓴 “감동을 창조하는 인간관계”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근처, 샌 페르난도 지역에서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살 난 어린 아기에게는 의붓아버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의붓아버지는 다섯 살 아기를 볼 때마다 늘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린 아이가 자신에게 늘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 의붓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 난 아빠를 즐겁게 해 드릴 수 없어요. 아빠가 저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하니 저는 죽고 싶어요.” 아이를 말을 들은 의붓아버지는 짜증을 내며 아이에게 “그럼 가서 죽어”라고 말했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자기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방검사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의붓아버지는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의붓아버지의 지속적인 불평과 원망 그리고 생각 없이 내뱉은 말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부주의한 아버지의 말 한 마디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에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의 힘이 사람의 말에 있습니다. 성경은 말의 힘에 대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말에 달려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처럼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말에 달려 있기에 한마디의 말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도 하고 힘을 내게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주의한 한 마디의 말은 사람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내게도 하고 좋았던 기분을 한 순간에 잡치게도 하고 절망과 낙심에 빠지게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오랜 속담에도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잠18:21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현대어)
얼핏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아무런 힘이나 영향력도 없어 보입니다. 사람의 말이 사람의 주먹처럼 물리적인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처럼 실질적인 가치가 있어서 무엇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의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려 깊은 말 한마디로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있고, 부주의한 한 마디의 말로도 사람의 기분을 순식간에 망치게도 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려 깊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부주의한 한 마디의 말 때문에 물질적인 손해를 보게 만드는 힘이 사람의 말에 있습니다.
옛날에 시골 장터에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사람이 고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한 양반이 다짜고짜 “이놈아, 고기 한 근만 주게 .” 반말로 말했습니다. 고기를 파는 사람이 “예. 그러지요.” 대답하고는 솜씨 좋게 고기를 칼로 베어 내어 주었습니다. 같이 온 다른 양반은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하며 고기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고기를 파는 사람이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고는 역시 솜씨 좋게 고기를 잘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똑같은 고기 한 근을 부탁했는데 두 사람이 받은 고기의 크기가 눈에 뛰게 차이가 났습니다. 나중에 고기를 부탁한 양반이 먼저 고기를 달라고 한 양반 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고기를 받은 것입니다. 먼저 고기를 달라고 한 양반이 따졌습니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양반 것은 나 보다 배나 많으냐?” 그러자 나이 지긋한 고기 파는 사람이 대답합니다. “손님 고기는 이놈이라는 백성 놈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 서방이 자른 것이라서 고기 양이 다른 것입니다.”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들어 낸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일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내가 받는 대접이 달라지게 만드는 힘이 사람의 말에 있습니다. 심지어 똑같은 돈을 내고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받는 대접이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말이 가진 힘입니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입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말이 가진 힘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의 말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과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의 권세를 주셨고 말로 세상을 다스리고 섬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대적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였던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의 권세와 힘 또한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타락했다는 것은 곧 사람의 말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이 타락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말의 권세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섬기도, 사람을 돕고, 사람들과 잘 소통하게 하는 능력이며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타락으로 사람의 말 또한 타락하여 말이 가진 본래의 선한 힘이 변질되어 악한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이 사람을 상처내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통하게 만드는 악한 힘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고 하는 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은 반드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처를 주거나 기분 나쁘게 만듭니다.
사람의 말이 엄청난 힘을 가지는 게 된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을 보면 이사야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창조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바라입니다. 여기에는 주목해야 하는 특이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사야 57장 19절에 사용한 창조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바라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어졌던 단어입니다.
사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개역개정)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말이 여전히 엄청난 권세가 있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18:18-19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것은 결코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말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닌 재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유한하나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며,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입술의 열매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을 입의 열매 또는 입술의 열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사람의 말을 입술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말한 것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람이 말 한 것이 원인이 되어, 말한 것이 어떠한 결과가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이루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말과 기도는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인생과 신앙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잠12: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잠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비록 우리 조상들은 성경은 몰랐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말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 중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남겨 주었습니다.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사람의 말은 인생이라는 밭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씨와 관련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뿌려진 모든 씨는 반드시 뿌린 대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뿌린 씨가 열매 맺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재의 우리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밭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밭이 무엇이냐 하면 말의 씨를 심는 밭입니다. 우리는 이 밭을 인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밭에 매일같이 날마다 씨를 심으며 살아갑니다. 매일같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 밭에 뿌려지는 씨입니다. 이 밭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뿌린 말의 씨가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이제 막 싹이 돋아났습니다. 어떤 것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열매가 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이미 그 열매를 따먹기도 했습니다.
씨와 같은 사람의 말과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창조의 질서입니다. 이것은 입술의 열매를 추수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축복의 말을 심으면 복을 거둡니다. 칭찬을 심으면 칭찬을 거둡니다. 용서를 심으면 용서를 거둡니다. 깨끗한 것을 심으면 깨끗한 것을 거둡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주를 심으면 저주를 거듭니다.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둡니다. 더러운 것을 심으면 더러운 것을 거둡니다. 모든 열매가 그러하듯이 입술의 열매도 심은 씨에 따라 그 거두는 열매가 결정됩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다면, 입술의 열매는 누가 추수합니까? 봄에 씨를 뿌린 사람이 가을이 되면 그 열매도 추수하는 것처럼, 말이란 씨를 뿌린 사람이 말의 열매도 추수하고 그 열매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가면서 어떤 말의 씨를 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심고 뿌린 씨는 결국 내가 거두어야 할 열매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저주하기를 좋아하면 결국 저주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향해 저주했지만, 결국 그것을 거두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됩니다. 말한 사람이 그 말의 열매를 추수하게 하시는 것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원리입니다.
시109:17-18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면서 당부하시길 너희가 가는 집이 너희를 반기든 반기지 않든지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베푼 축복이 그 사람에게 합당한 것이 되면 그 축복이 그 사람에게 임하겠지만 그 축복이 그에게 합당한 것이 되지 않으면 축복은 베푼 사람이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주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한 저주의 말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그 저주는 다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져 있습니다.
마10:12-13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이처럼 입술의 열매는 누군가 추수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 말의 씨를 뿌린 사람이 추수하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추수하기도 하고, 둘이 함께 추수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가 추수해도 좋은 말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풍성해 집니다. 만족스러워 집니다. 행복해집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이 힘이 있는 것은 우리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한 마디의 말도 함부로 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마디의 말도 들으시고 그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좋은 말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한 마디의 말이라도 믿음으로 말하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말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이라는 이유를 들어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며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교회가 처음 월드비전을 통해 14명의 어린이를 돕기 시작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감동을 주셔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오병이어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인 것처럼, 우리교회가 장차 오천 명의 어린이를 먹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교했습니다. 겨우 열네 명 후원을 시작하면서 장차 오천 명을 먹이는 교회가 되자고 설교하자 어떤 분들은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은 저에게 웃으며 목사님 뻥도 세게 하시네요. 말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매달 겨우 20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오천 명을 먹이는 교회가 되자는 말을 했기에 우리 교회가 재정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가 있었음에도 어린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 만큼은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중단하지 않고 지금까지 10년을 계속해서 같은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비록 매월 지원하는 인원은 20명이지만 지난 10년간 후원하였던 아이들을 월별로 계산하면 1800명의 어린이를, 돈으로는 6만 불 가량을 후원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니까 하다보면 언젠가는 오천 명을 먹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저들의 말 속에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하고 확대하여 말하는 뻥이나 허풍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할 수 없지만, 비록 우리 교회의 힘으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이것은 뻥이 아니라 꿈이 되는 것이며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기를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말은 인생의 씨앗과 같습니다. 내가 뿌린 말의 열매를 거두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당장 보이지 않는 거룩한 꿈을 고백하고 말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거룩한 꿈과 이상을 위해 기도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뻥과 허풍, 허세가 아니라 비전이 되고 장차 반드시 성취되는 예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