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그리스도인의 말6-말한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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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

민수기 14:26-31

 

그리스도인의 말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말한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반복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기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말에 달려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말에 달려 있기에 한마디의 말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주의한 한 마디의 말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사람을 죽게도 만듭니다.


18:21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현대어)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라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존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 존재의 수준은 의식주와 같은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생각의 그릇을 담은 것이기에 말이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사람의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존재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별 생각 없이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말하는 대로 인간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격을 성숙시키고 인생을 바꾸길 원한다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기만 해도 인격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어질 것이며, 인생 역시 그 어떤 노력보다도 더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관계나 교우관계 등 인간관계를 이전보다 더 나은 관계를 만들길 원한다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 역시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공들인 인간관계라고 할지라도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깨어지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반대로 실수나 잘못으로 깨어진 관계도 다시 회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능력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말이라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말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 살을 빼거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때마다 밥을 해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조금만 주의를 하고 조금만 생각을 하고 조금만 노력을 하면 그 어떤 습관보다도 가장 쉽게 바꾸고 고칠 수 있는 것이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는 것은 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말을 바꿈으로 얻게 되는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을 바꾸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노력 대비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의 말이 어떻게 사람을 살리기도 하도 죽게도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의 말이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리게도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과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하 만물을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을 다스리도록 사람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비슷한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말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 이유는 사람의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말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의 말에 개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모든 말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들리신 대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들으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으로 우리를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2:36-37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 날에는 너희가 내뱉은 터무니없는 말에 대해서 낱낱이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한 말에 따라서 너희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죄인으로 판결 받게도 될 것이다.(현대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눈앞에 둔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향해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와서는 자신들이 정찰한 것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합니다.


먼저 열 명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이 정탐한 것을 보고합니다. 이들의 보고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신 땅에 대해 나쁘게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합니다. 가나안에 사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다 거인들이어서 도저히 저들과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거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합니다. 이것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하였던 열 명의 정탐꾼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고한 내용입니다.


13:31-32a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런데 열 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명의 정탐꾼들과는 정반대의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이 정탐한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답고 좋은 땅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고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합니다. 비록 가나안 주민들이 키가 크고 덩치가 크다고 하지만 능히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최고의 제국이라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 합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였습니다.


14:7-9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를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똑같은 기간 똑같은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전혀 다른 내용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습니까? 그것은 바로 저들의 믿음과 영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이 비록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지 않았습니다. 현실 뒤에서 역사하시며 꿈을 이루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약속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들마다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었지만 듣는 사람들 마다 서로 다르게 말합니다. 심지어 똑같은 설교를 듣고도 어떤 사람은 깨달음이 있는 좋은 설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도저히 들어주기 힘들었던 나쁜 설교라고 합니다.


똑같은 것을 보거나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들 마다 서로 다르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내 마음에 있는 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있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그대로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사람의 착각이자 오해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그대로 듣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실 자기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봅니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보고 자기 마음대로 듣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존재입니다. 이것만 깨닫고 살아도 우리가 범하는 많은 실수와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을 보거나 들을 때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에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을 충족하는 것으로만 보이게 됩니다. 마음에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면 전에는 들리지 않던 하나님 말씀이 들립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말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모신 예수님을 통해 보고 듣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두 명의 정탐꾼이 똑같은 가나안 땅을 보고 와서는 서로 다른 말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모세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다른 두 보고를 들었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에 비하면 우리는 한낱 메뚜기와 같다는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도 들었습니다. 서로 상반된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는 열 명의 정탐꾼들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이야기만 듣고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심지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며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는 통곡하며 소리 내어 말하는 이스라엘 회중들의 고백입니다.


14:1-2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이라는 오랜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의 새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어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는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정말 저들은 자신들이 말할 것처럼 이집트에서 노예로 또는 광야에서 죽고 싶었을까요? 사람의 속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이들의 마음은 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정작 마음의 소원과는 반대되는 말을 종종 합니다. 결혼하고 싶으면서도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싱글들이 있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면서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저 하는 말이라고 대수롭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는 어떻게 말했습니까? 이집트의 노예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누구에게 들렸습니까?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그대로 행하시겠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28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그 결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때를 기준으로 이십 세 이상 된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명도 예외 없이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고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땅이 갈라져 죽기도 하고, 불 뱀에 물려죽기도 하고, 전염병으로 죽기도 하고, 전쟁하다 죽기도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십 세 이상 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한 대로 그들이 말한 그대로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14:29-30 너희 가운데 스무 살이 넘은 사람으로, 인구조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 곧 나를 원망한 사람들은, 이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뒹굴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땅을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들어갈 것이다.


우리 속담 가운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 속담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비밀스럽게 몰래 한 이야기라도 반드시 듣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몰래 한 이야기라도 새어나가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이거 비밀이니까 당신만 알아 말하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이거 비밀이라고 말한 것까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 사람의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엄청난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기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다 들으신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만 들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말도 다 들으십니다.


3:16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사람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정말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사람이 한 말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의 모든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우리가 말한 그대로 이루시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종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사람의 모든 말을 들으십니다. 들으신 후에 어떻게 하실 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들으신 후에 악인의 말은 하나님께서 뒤엎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허풍떨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들으시지만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뻥쟁이는 뻥쟁이로 남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말과 반대로 행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은 아무리 세상 사람들로부터 독한 말을 들어도 해를 받지 않는 것은 그 독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예수님으로 인해 박해를 받고 비난을 받는 것이 오히려 성도에게는 복이 됩니다.


22: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5: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의 말이 힘이 있는 것은 결코 사람의 말 자체에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는 이유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 마디의 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중요하게 들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말이 힘이 있는 것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말하고 대화하는 것이 우리를 망하게 만들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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