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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해야 맛입니다.
누가복음 6:45
그리스도인의 말 시리즈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말은 해야 맛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우리 속담의 일부분입니다. 설교 제목으로 인용한 이 속담에는 생략한 뒷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맛있게 생긴 고기도 보기만 해서는 그 맛을 알 수 없습니다. 고기의 맛을 알려면 고기를 씹어 먹어보아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말을 해야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사람의 말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어디에서 만들어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경은 사람의 말이 나오고 만들어지는 것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에 대해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선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선한 말을 하기 마련이고, 마음에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악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선한 말, 바른 말, 정의로운 말을 하려면 먼저 마음에 선한 마음, 바른 마음, 정의로운 마음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악한 말, 거짓말, 불의한 말, 저주하는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마음, 속이는 마음, 저주하는 마음을 쌓으려고 해야 합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은 굳이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말, 거짓말, 저주하는 말을 하려면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저절로 이런 말을 하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악한 말, 거짓말, 불의한 말, 저주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자신이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쫓겨 나온 사람에게로 다시 찾아 갔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가보니 그 사람 마음에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하게 비어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더러운 귀신 하나를 쫓아내기 이전보다 더 심하게 나빠졌습니다.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유행처럼 마음 비우기를 말합니다.(불교식 방법) 물론 나쁜 마음, 탐욕스러운 마음,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힘들게 비운 마음을 내버려 두면 금방 이전보다 더 악한 것으로 가득 차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마음을 비우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의 해결은 마음을 무엇으로 가득 채우느냐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악한 마음 대신 선한 마음, 불의한 마음 대신 정의로운 마음, 저주하는 마음 대신 용서하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 매일같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골1:9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사람의 말이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마음에서 만들어진 말이 입을 통해 나온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영적 원리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말이란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맺는 관계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누리는 모든 행복을 사람이 맺는 관계에 두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돈이나 세상에서의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번 많은 돈이나, 내가 이루어 낸 성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속이는 착시효과입니다.
내가 번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경우는 오로지 내가 고생하며 벌은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가족과 사람들이 있을 때뿐입니다. 만약 내가 번 많은 돈을 가치 있게 쓸 가족이나 사람이 없다면 내가 번 돈을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루어 낸 성공과 출세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경우는 오직 내가 이루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이루 성공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을 때에만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함께 만드신 창조의 원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자기 자신과의 좋은 관계,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길 원하지만 마음먹고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안 된 것이 사람이 맺는 관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관계가 마음만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신앙인들이 제멋대로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형식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그 내용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이비 신앙이 됩니다. 보이는 모습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그 마음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식하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정확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 잘 알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성경은 단호하게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5:1]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렘29:1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을 남편이, 아내가 또는 자식이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남편이나 아내 또는 자식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방 역시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말로서 대화하는 것보다 나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라는 착각을 하며 삽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내 진심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내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식은 부모가 내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을 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을 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의 오해와 갈등이 바로 내가 또는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에서 싹이 트기 시작해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남편을, 자기 아내를 혹은 자기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함께 살아온 기간이 길수록 이런 오해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하기 보다는 지래짐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 추측이고 예상인 것이지 이것이 결코 상대방의 마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오랫동안 지내온 가까운 관계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말 하지도 않은 내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주 사소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바뀌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가깝고 소중한 이들에게도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해 비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도대체 그 사람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것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바뀌는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내 배우자가 또는 부모나 자식이 다 안다고 해 보십시오. 말하지도 않은 마음을 상대방이 알게 되면 지속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관계를 지켜주시기 위한 놀라운 은총입니다.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로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우연히 자기 마음을 알아주면 행복해 하고, 알아주지 못하면 섭섭해 하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소통수업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집에 와서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남편에게 장을 보러 가서 한 시간 안에 돌아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외출을 합니다. 얼마 후 장을 보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의 차가 집 앞에 주차된 것을 보고 남편이 집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내가 온 것을 알고는 자신을 도와주러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차에서 장본 것을 하나씩 주방으로 옮깁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도무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내는 장본 것을 옮기면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나를 도우러 오지 않는 거야? 내가 장보러 간 것도 알고, 내가 자기와 똑같이 하루 종일 일했다는 것도 알잖아. 그런데 왜 나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도 소파에 누워 쉬면서 스포츠 중계나 보고 있겠지.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아내가 이토록 화가 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아내는 말하지도 않는 자신의 기대와 마음을 남편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가 나 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자신이 남편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내는 내가 가서 도와주길 바라겠지. 하지만 귀찮으니까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해야겠다. 아마도 아내는 남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더욱 화를 키워갑니다.
물론 아내의 생각처럼 남편이 정말 귀찮으니까 못 들은 척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남편이 뉴스에 정신이 팔려서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남편의 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남편은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뒷마당에서 잔디를 깎거나 딴 볼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상황은 확인하지도 않고 남편의 마음을 지레짐작하여 자신의 분노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보고는 “여보, 나 왔어.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라고 물었는데 남편이 “싫어, 당신 혼자 다 해. 난 그냥 여기 앉아서 스포츠 중계 볼래.” 뭐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면 아내가 화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남편에게 아무런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남편이 내 상황과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것은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직접 물어보지 않고 아내가 지레짐작으로 남편의 생각을 추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또한 아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남편은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괜히 말했다가 거절을 당하느니 차라리 지레 짐작하며 사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좀 더 낭만적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굳이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 형편과 사정을 알아주어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 더 낭만적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직접 말하거나 대화하려는 노력보다 내 지레짐작과 추측 또는 직감에 맡기는 것이 더 편하다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생겨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또한 가져야 합니다. 말도 하지 않고서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이기심입니다. 내 마음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버려야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부사이나 부모자식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야 하는 마음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말이 시작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선한 마음, 좋은 마음,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쌓은 선한 것을 반드시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때마다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대화를 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목적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말로 대화할 때마다 관계를 맺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관계 맺는다는 것은 서로를 세워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의 존재 가치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오해를 풀고, 미움을 풀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합니다. 말은 아름다운 관계,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