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지탱하는 말
히브리서 10:23-24
그리스도인의 말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는 사람을 단련하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을 단련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칭찬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용광로와 풀무가 돌덩이에서 금과 은을 찾아내듯이 칭찬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이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지탱하는 말”이라는 제목으로 격려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매주 반복하는 말입니다. 반복하는 이유는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삶의 원리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힘이 사람의 말에 있습니다. 성경은 말이 가진 힘에 대해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힘이 사람의 말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이처럼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엄청난 힘이 있기에 한 마디의 말로도 한 사람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내게도 하고, 한 마디의 말로도 한 사람에게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게도 합니다.
사람의 말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나오는 것입니까? 말은 단순히 사람의 입에서 만들어지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은 마음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있는 생각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있습니다.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이 사람의 마음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이 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르치기를 악한 마음 타락한 마음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에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한 말을 하여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말은 나쁜 말, 악한 말, 음란한 말, 더러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말은 선한 말, 좋은 말, 덕이 되는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은 어떤 말을 하며 사느냐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성경은 사람이 살면서 맺는 관계에 대해 세 가지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가 인간이 살면서 맺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은혜와 복을 그 사람이 맺는 관계에 두셨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살면서 누리는 은혜와 복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물론 인간관계가 실패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간관계의 실패나 실수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합니까? 말입니다. 부주의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공들여 쌓은 관계가 무너집니다. 사소한 거짓말 한 마디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도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고 오해가 생겨 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큰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깨어진 관계라고 할지라도 다시금 회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다고 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돈 때문에 깨어진 관계도 회복하는 힘이 사람의 말에 있습니다.
잠언 성경은 사람의 말에 대해 가르치기를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만드신 것으로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살게 하는 신비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잠언 기자는 사람의 따뜻한 말을 비유하여 설명하기를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살게 하는 신비한 생명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정말 영생을 산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따뜻한 말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된다는 뜻으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잠15:4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 말, 따뜻한 말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생각해 보았던 칭찬이 선한 말입니다. 따뜻한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생각할 격려가 선한 말이며 따뜻한 말입니다.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유일한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인간관계의 목적은 결코 경쟁하고 짓밟고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서로가 서로를 든든히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격려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극의 황제펭귄)
사람은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합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습니다. 인생은 전쟁과 같아서 사는 것이 마치 전쟁터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게 하는 힘은 누군가가 나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나를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넘어졌을 것입니다. 쓰러졌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힘든 인생을 여전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때를 따라 나를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고 지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격려의 말은 쓰러지려는 사람을 세워주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지탱할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해 주고, 계속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 있게 밀어주는 것입니다. 인생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격려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제가 자주 반복하는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지만 한 가지 보시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함께 지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의 관계로 만드시며 이 관계에 주신 창조의 원리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만 남편을 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서로 돕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돕는 배필은 단지 부부관계만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돕는 관계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영적원리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창조의 원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출발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말을 통해 시작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격려하는 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선 격려는 상대방의 하는 일을 지지해 주는 말이 격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상대방의 지지를 받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자신 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이 상대방에게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알아주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이 격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격려란 상대방이 잘 하는 일을 지지해 주고 의미를 부여해 주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말을 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가 없으면 사람은 금세 낙심하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아무리 선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할지로 사람의 지지와 격려가 없다면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힘든 것이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누군가 선하고 좋은 일을 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히10:24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다음으로 격려는 위로하는 말이 격려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을 때 격려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때론 실패하기도 합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비난과 책망보다는 위로입니다. 실수나 실패로 인해 가장 괴로운 사람은 실수나 실패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주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위로는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당한 사람입니다. 고난이나 예상치 못한 재앙을 당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잘못된 죄책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임한 고난이나 예상치 못한 재앙이 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합니다. 모든 고난이 죄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예상치 못한 재앙이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고난이나 재앙을 당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위로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생에서 겪게 되는 고난이나 예상치 못한 재앙에 어떠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나 예상치 못한 재앙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겪은 고난이나 재앙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난당한 자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고난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로 환난당한 사람들을 위로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함께 맞는 비-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마지막으로 격려는 용기를 불어넣어 말이 격려입니다. 격려라는 말은 영어로 encouragement입니다. 동사로는 encourage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낙심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사람은 고난이나 재앙과 같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주저앉게 됩니다. 그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해 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극과 도전을 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의욕을 상실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살려는 의욕을 상실하는 것을 침체 또는 슬럼프라고 합니다. 살려는 의욕을 잃어버릴 때 내 삶에 대한 사명의식 또한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든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 이유,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 안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격려입니다.
침체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집어넣어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쓰러진 사람에게는 무조건 힘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먹이시고 재우십니다. 40일 동안 먹고 마시며 쉬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 엘리야에게 나타나 그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왕상19:7-8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물론 하나님께서 항상 어루만지고 달래는 방식으로만 사람을 격려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엄중히 책망하시고 징계하심으로 용기를 가지게 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다윗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엄중히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과 징계를 통해 다윗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책망과 징계를 통해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행동이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대할 때 주로 그 사람의 소유나, 업적, 성취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격려하기 보다는 비난하는 것이 앞섭니다. 우리는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결과로 판단하기로 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람의 존재가치로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예수님은 저 인간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딤후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위대한 격려자는 바나바입니다. 바나바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탁월했는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셉을 바나바라고 했습니다. 바나바의 격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잡아 들였던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켰습니다. 바나바의 격려로 바울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에서 오늘날 교회의 권사 직분이 유래되었습니다.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그 격려가 지지든 위로든, 혹은 용기를 불어넣는 도전이나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는 책망이든지 우리에게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서서히, 슬프게, 그리고 비통하게 죽어 갑니다. 인간은 격려 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죽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에게 격려는 생명과 같습니다.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할 만큼 절대적인 것이 격려입니다.
격려는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시든 꽃에 물을 주는 주면 꽃이 살아나는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살리는 힘이 격려에 있습니다. 격려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워 함께 설 수 있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면 내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설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남편을 세워주어야 아내가 설 수 있고, 아내를 세워주어야 남편이 살 수 있습니다. 성도를 세워주어야 목사가 사는 것이고 목사를 세워주어야 성도가 삽니다. 이 깨달음이 우리교회 신앙공동체에서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