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2
전도서 7:29
그리스도인의 말 열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권면하기를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울 수 있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가 되는 말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말, 악한 말, 음란한 말, 더러운 말을 하지 않고 대신에 선한 말, 좋은 말, 덕이 되는 말,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선한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성경이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의 말에는 사람이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말의 힘, 말의 권세가 어느 정도입니까? 성경은 말이 가진 힘에 대해 가르치기를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힘이 사람의 말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이 사람을 죽게도 할 수 있고 살리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기고 있기에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잠18:21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현대어)
덕을 세우고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선한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축복이 선한 말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찾아 주어 좋은 사람으로 단련시키는 칭찬이 선한 말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고난이나 고통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위로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격려가 선한 말입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한 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정직한 말입니다.
잠8:6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성경의 가르침처럼 정직 또는 정직한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것이며 가장 선한 말입니다. 나아가 정직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선한 말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말씀들을 통해 반복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복 주시고 정직한 자의 기도와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정직한 말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덕을 세우고 듣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끼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선한 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12: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그럼 정직 또는 정직한 말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설명을 드린 것처럼 세 가지가 일치하는 것이 정직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마음과 말과 행동입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고 말한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대로 행동하는 것 이것이 정직이며 이것을 말하는 것이 정직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거짓이나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 하지도 않을 것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거짓이라고 합니다.
정직이 선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한 말 이를테면 축복하는 말, 찬양하는 말,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 가운데 정직을 가장 선한 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정직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직한다는 것이 축복하거나 찬양하거나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말처럼 단순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왜 여러 가지 선한 말 가운데 하필이면 정직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이라고 할까요?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이 정직을 가장 선한 말이라고 가르친 이유는 정직을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한 말과는 달리 용기가 필요하고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인생에 닥칠 당장의 손해를 감당하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정직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공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정직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잘못된 믿음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것입니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는 믿음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가르치기를 비록 정직하면 손해 보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직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과 믿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상식처럼 여겨지는 강력한 믿음입니다.
실제로 정직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회의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수시로 경험합니다. 불의한 자가 출세를 하며, 남을 속이는 자가 성공하고 부자로 살아갑니다. 사실 조금만 비겁하고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조금만 부정직하면 훨씬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조금만 비굴하면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이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이것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거짓말로 사람과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이 잘되고 승승장구하고 복을 받고 형통한다는 말씀이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잘되고 복을 받고 형통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수도 없이 반복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성경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어 보입니다. 현실은 악한 자가 잘되고 정직한 자가 손해를 보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직한 자가 복을 받고 잘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얼핏 정직한 자가 흥한다는 성경의 말씀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세상 물정을 모르시고 철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우리의 실제 삶과 현실에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현실과 하나님 말씀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생과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속여서라도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이 자신을 복되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장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영원의 관점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얼마를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에게 있어 당장 눈앞의 이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부정직함의 모든 문제들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영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당장의 성공이나 부요함이 얼마나 일시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저나 여러분들에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쉽게 아멘 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도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세상의 거짓 믿음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정직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정직한 삶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힘들어도 부담스러워도 내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라도 거짓된 믿음과 싸워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직하면 손해를 보는 곳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으로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한 사람으로 창조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셨을까요? 아니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정직한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을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받고 형통하고 복 받는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타락하여 꾀를 내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정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최고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직은 결코 완벽하거나 실수가 없거나 죄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실수가 있으면 실수가 있는 대로, 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왜 정직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말이라고 했을까요? 사람이 정직하고 정직을 말할 때에만 비로소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사람을 향하신 공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을 말하기 위해선 세상이 강요하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잘못된 믿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만든 사람과 세상을 타락시키기 위한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심으려고 하는 가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결코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과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고 형통하는 그런 세상과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과 세상이 형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 대신 거짓말을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진실을 감추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진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손해가 된다고 생각할 때 진실을 말하기보다 거짓말을 함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손해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았던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 때문에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에 위협을 느끼자 그들을 거짓말로 예수님을 모함하여 죽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람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브람이 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까?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간 아브람은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집트 왕이 아리따운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엘리사가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고칩니다.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많은 사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사례를 거절하고 그냥 돌려보냅니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을 쫓아가 거짓말을 해서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옵니다. 이처럼 필요이상의 욕심은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을 말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무엇입니까? 아부와 아첨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아부며 아첨입니다. 아부와 아첨은 듣기에는 아무리 좋게 들려도 선한 말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아부와 칭찬은 다른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동기는 다릅니다. 아부는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칭찬은 그 사람을 사랑해서 마음으로부터 하는 좋은 말입니다.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외식 또는 가식이라고 합니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신실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예배, 기도, 설교, 찬양과 같은 종교 예식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그 어떤 거짓말 보다 악한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사람을 속이는 가장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겠다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야곱이 사용한 방법은 속임수였고 거짓말이었습니다. 야곱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았지만 야곱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여 20년간의 종살이 아닌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외삼촌 라반은 열 번이나 야곱의 품값을 속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이루는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 목적을 좋은 방법으로 이루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한다고 해서 악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나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과정은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영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말의 결과에 대해 그 어떤 죄 보다도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결국은 망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성경은 거짓말의 끝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거짓 믿음을 이용해 거짓과 속임수를 써야 더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수천 년의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결국 모든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의 결과는 반드시 망한 다는 것입니다.
잠19: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정직이 아무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부정직한 세상을 살면서 정직과 진실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직을 말하기 위해선 당장의 손해를 감당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정직을 말하기 위해선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정직과 진실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직의 고통만을 마음에 두고 살다보니 정직을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직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거짓의 고통입니다. 거짓된 세상을 사는 것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한 일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어야 합니다. 당장은 정직한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복을 얻을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살아서 그 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녀들이 부모의 정직함으로 인해 반드시 복을 누릴 것입니다.
시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바라기는 비록 내가 당장 정직의 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자녀들이 부모세대가 만든 정직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정직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