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개혁과 갱신4-교회와 성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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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성전의 차이

고린도전서 3:16-17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교회와 성전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1987년 신학교를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전도사로 목사로 사역하면서 7교회를 섬겼고, 여덟 번째로 자유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11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섬겼던 여덟 교회 가운데 다섯 교회는 전도사나 교육목사로 교회를 섬겼고 나머지 세 교회는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겼고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섬기는 자유교회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여덟 교회를 섬겨 오면서 교회 건물을 가지지 않고 목회를 하였던 경우는 지금 자유교회를 섬기는 것이 처음입니다. 한 마디로 자체 건물이 없이 목회를 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처음입니다. 처음으로 교회 건물을 가지지 못한 채 지난 11년간 목회하면서 예배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면 교회 건물이 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이 생각하고 예상한 것보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을 빌릴 때 매달 일정한 금액의 렌트비를 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교회에서는 이 건물은 하나님의 것이니 렌트하지 않고 함께 나누어 쓴다면 렌트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교회는 단 한 번도 렌트비를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우리교회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미국교회 주일학교에서 우리교회 자녀들 신앙교육까지 책임져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교회가 우리교회에 대단한 배려와 친절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건물을 나누어 쓰고 있는 미국교회가 아무리 친절하고 좋다고는 하지만 매주일 예배 때마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셋방살이와 같은 심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런 심정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셋방살이를 하는 심정이기에 마음대로 교회 행사나 프로그램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배 후 친교 시간마다 한국 음식 냄새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이모저모로 불편하고 스스로 눈치 볼 일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런 불편함을 참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아직은 자체 건물을 가질 만한 교인 숫자도 얼마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체 건물을 가질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인 숫자 많아지고 교회재정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 아마 많은 분들이 자체 건물을 빌리거나 구입하자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목사가 능력을 발휘해서 빨리 교회건물을 짓던지 사던지 하라고 저를 압박하는 분들도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편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는 저는 교회 건물을 가지는 것을 우리교회의 중요한 목표나 비전으로 삼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이야 저 역시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건물을 가지고 목회하고 싶다는 마음이 수시로 듭니다. 교회건물만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목회를 잘 하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가끔 합니다. 그럴수록 교회건물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교회 건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은 목사가 별 것을 다 두고 기도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을 항상 무엇인가를 얻고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사실은 우리에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기도는 무엇을 이루고 얻고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포기하거나 이루지 않으려고 하는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기도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기도를 통해 이루는 것보다, 기도를 통해 내 욕심을 내려놓고 포기하게 하는 기도가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교회 교인들도 무엇인가를 얻고 이루기 위한 간절한 기도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기 위한 기도의 제목도 최소한 한 두 가지쯤은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으면 합니다.


흔히 목사들에게는 세 가지 인간적인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성전건축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 역시 할 수만 있다면 부목사보다는 담임목사가 되고 싶고, 많은 교인들을 두고 목회하고 싶고, 아름다운 교회건물을 가지고 목회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목사의 인간적인 소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목사의 욕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었던 다윗도 하지 못한 대단한 일을 한다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교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13: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건물이 없어 매 주일 예배마다 불편하고 힘들다고 하면서 교회 건물을 가지는 것을 교회의 목표나 비전으로 삼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저는 우리교회가 건물이 없기에, 우리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에는 건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있어 건물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차적인 것이지 건물을 가지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교회 건물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고 회복하는 데 있어서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에게 교회 건물이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다른 교회와 교인들처럼 교회를 건물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공동체가 교회라는 생각과 믿음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교회건물을 돌보고 청소하거나 교회 건물 안에서 하는 일로 제한해 버렸을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라는 단어가 112번 나오는데 단 한 번도 교회를 건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늘 사람들의 모임, 집회라는 뜻을 가진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임 또는 집회가 곧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제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교리가 아닙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교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교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건물이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기독교가 당시 세계를 점령했던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부터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박해하면 할수록 더욱 교인들이 늘어만 가는 기독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D 313년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하였고, AD 380년에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는 것은 로마제국의 시민은 무조건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당연히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와 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명예와 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핍박만 받던 교회에 엄청난 권력과 돈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의 국교에 걸 맞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교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건물이 교회가 되었고 종교 조직과 교단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공동체가 아닌 건물과 조직과 교단이 교회가 되면서부터 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더 큰 힘과 더 높은 권력과 더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교회는 교회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 되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교회라 하지 않고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교회 본질에 대한 왜곡입니다.


교회 본질에 대한 왜곡은 신학과 신앙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교회를 공동체로 생각하지 않고 특정한 건물로 여기면서 생겨난 가장 치명적인 신앙의 왜곡은 기독교 신앙을 구약시대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성전신앙을 완전히 파괴하시고 새로운 교회를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예수님께서 파괴하신 성전신앙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교인들은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사람들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건물을 거룩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의 건물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교인들의 신앙의 중심은 교회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무엇입니까? 교회건물을 성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교회를 가는 것은 곧 성당에 가는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교인들의 신앙에서 성당이 가장 중요하게 되다보니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성당을 더 거룩하고 화려하고 신비롭게 만드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거룩하고 화려하고 웅장하고 신비로운 성당을 짓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도 없는 면죄부를 만들어 교인들에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면죄부를 팔아 만들어진 성당이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심각한 타락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교회의 본질을 공동체가 아닌 건물로 왜곡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개신교회는 카톨릭 교회의 타락과 부패가 너무나 심각해 자체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생겨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개신교회가 중세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건물을 짓는 것을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무엇이라고 하냐면 성전건축 한다고 교인들에게 세뇌합니다. 이것은 카톨릭이 교회를 성당이라고 하였던 타락보다 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교회건물을 마치 구약시대의 성전처럼 여기며 가르칩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에 대하여 성전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목사가 설교하는 강대상을 성전의 제단처럼 신성시여깁니다. 그래서 강대상이 있는 단 위에는 함부로 올라갈 수 없는 곳으로 여깁니다. 올라갈 때는 항상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혹 애기들이 멋모르고 올라왔다가는 장로님이나 목사님에게 뒤지게 혼났습니다.


심지어 일부 한국의 교회들은 지금도 여전히 여자의 경우는 강대상 올라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목사나 장로만 강대상에 올라가 설교나 기도를 할 수 있고 여자 경우는 바닥에 마련된 사회상에서 기도를 하거나 사회를 보게 합니다. 성전에서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했듯이 예배당 안에서도 강대상은 더 거룩하고, 밑의 사회상은 덜 거룩한 것으로 여깁니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구약의 성전과 동일시하면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가정과 공동체와 직장이 아니라 교회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오로지 교회건물에 들어왔을 때만 거룩해 집니다. 교회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동안만 거룩한 기분을 느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교인들 또한 예배당 안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서 세상으로 진입하는 순간 교인들은 거룩함과 멀어집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는 교회의 방식으로 세상은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신앙이라고 여깁니다. 한 마디로 세상과 교회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교회에서만 거룩하면 된다고 여기게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인들은 교회건물 안에서만 거룩하고 선합니다.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소금과 빛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유일하게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은 예배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자꾸만 구약시대의 성전화 시키는 것은 심각한 신앙의 왜곡입니다.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교회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구약에서 성전은 이스라엘에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성전입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에 단 한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하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성전을 다시 짓지 않는 이유를 로마시대에 잃어버린 법궤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이후 성전의 개념은 건물에서 몸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임재가 나타났다면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 교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임재가 나타납니다.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몸이 그리고 삶이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거룩한 성전이 중요했다면,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의 모임이 거룩합니다. 따라서 교회를 건물이 아닌 모인 사람들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무슨 교회라고 하면 그 교회 건물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교인들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교인들보다 건물이나 장소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회가 여전히 성전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건물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건물을 짓고 더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최고의 방법인양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재정에 조그마한 여력만 생겨도 최우선 과제로 교회건물을 짓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알고 건물을 짓는데 교회의 모든 힘을 낭비하고 소모합니다.


교회가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교회 본래의 의미를 회복할 때 우리가 모이는 그 어떤 곳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건물 중심 또는 성전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교회개혁과 갱신의 첫 걸음입니다. 사람이 지은 그 어떤 건물도 거룩한 건물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삶과 마음을 닮고자 하는 사람만이 거룩할 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신앙이 하나님이 거룩한 영이 임재하는 거룩한 성전이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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