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개혁과 갱신6-로또신앙을 허물라
[ 첨부파일 일괄 다운로드 ] [ 첨부파일 3개 ]
교회개혁6.mp3

로또(lottery) 신앙을 허물라

고린도후서 5:17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6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로또신앙을 허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반복하지만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루터가 외쳤던 대표적인 슬로건은 세 가지였습니다. 라틴어로 이것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 Sola Fide(오직 믿음), Sola Gratia(오직 은혜)입니다. 후대의 종교 개혁자들은 루터의 세 가지 슬로건에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두 가지 슬로건을 추가하여 다섯 가지 슬로건을 종교 개혁의 핵심으로 여겼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슬로건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 교회) 교리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다섯 가지 슬로건이 복잡하게 보이지만 종교 개혁자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슬로건의 핵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개혁과 갱신은 대단하고 거창하게 교회의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개혁과 갱신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종교 개혁의 슬로건이 있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슬로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합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합니다. 예수 믿으면 자녀가 출세합니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슬로건이 한국교회와 교인들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슬로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설교나 교인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간증이나 예화가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교회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 충성하고 헌신했더니 세상에서 병이 낫거나 자녀가 성공하거나 출세하거나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합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합니다. 예수 믿으면 자녀가 잘 됩니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이 다섯 가지 슬로건은 오늘날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신학이며 교인들의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말은 예수 믿으면 뭐뭐 한다고 하지만 많은 목사들의 진짜 속내는 오로지 자기 교회를 다녀야만 부자 되고 성공하고 형통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때마다 교묘하게 이런 식의 생각을 교인들에게 세뇌시킵니다. 이것을 기복주의 신앙이라고 하고 좀 더 세련되게 번영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기복주의 신앙이나 번영주의 신앙에서 주장하는 부자 되고, 성공 하고, 형통하고, 자녀가 잘 되고, 건강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고 실제로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백 명 가운데 한 명 또는 열 명 가운데 한 명쯤은 예수 믿고 이런 복을 누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신앙을 로또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누리는 복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특정한 몇 사람들만 누리는 행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첨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매주일 마다 엄청난 로또를 삽니다. 왜냐하면 로또에는 반드시 당첨자가 있어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음번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심어줍니다. 마찬가지로 로또 신앙을 가진 교인들 역시 성공과 대박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매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로또 신앙에도 반드시 당첨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하거나 부자가 된 교인들을 보며 나머지 교인들 역시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로또 신앙을 지속해 나갑니다.


개인적인 주장일지 모르지만 로또 신앙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교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 이왕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교회 교인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도 하고 부자도 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굳이 예수를 믿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부자 되고, 성공 하고, 형통하고 자녀가 출세하고, 병이 낫는 것은 절에 다니거나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심지어 아무런 신앙도 가지지 않는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런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굳이 예수님이 아니어도 교회가 아니어도 됩니다. 부처님을 믿거나 절에 불공을 드려도 이런 일이 가끔씩 일어납니다. 이것 역시 기독교인들의 로또 신앙과 다르지 않는 불교의 로또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가 될 것처럼 복음을 팝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기독교 신앙을 왜곡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바알신앙이며 맘몬신앙입니다.


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이 사용하는 개역개정성경에는 성공이란 단어가 신구약 통 털어 단 2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그런 성공이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부자라는 단어가 총 42번 나오는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 경우도 구약성경에만 서너 번 나오고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부자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5:12]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0:10]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것처럼 여깁니다. 예수를 믿는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부자가 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하면 무언가 그 사람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더 큰 열심을 내어 교회를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게 되었습니까? 근본적으로는 복에 대한 잘못된 신앙과 신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부차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회 성장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이 대분이나 복 주머니 심지어 밭 그릇에도 복이라는 글자를 사방팔방에 써 붙인 것을 보고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선교하면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복음이라고 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을 복음서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복은 매우 선교 초기부터 매우 중요한 신앙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한글성경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500여 번이나 나오고 있고, 영어 성경 역시 복을 뜻하는 bless라는 단어가 300번 이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사람이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이며 나아가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지고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복되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사람이 가장 소원하고 바라는 것임도 불구하고 정작 복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복 있게 사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시도한 답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많은 물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더 많은 재산과 소유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우리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소유와 물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은 소유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복 있는 삶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소유를 통해, 더 높은 권세를 통해, 더 황홀한 쾌락을 통해 인생의 행복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잡았다 생각하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못된 행복을 좇아 살기 때문입니다. 소유는 우리에게 절대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소유는 늘 우리를 불만족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은 물질이나 소유 또는 성공이나 출세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은 무엇을 소유하였거나, 더 큰 성공을 이루었기에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단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에는 부자나 성공 출세와 같은 단어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좋은 또는 선한이라는 단어는 300여 번, 공의나 정의는 240여 번, 사랑이라는 단어는 무려 557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독교 신앙은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출세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이, 부자가 행복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공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출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뜻과 관심은 이런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그 사람이 누구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성공하였던지 실패했던지, 특별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별처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공이나 출세, 소유라는 삶의 방식에 집착하는 한 사람은 결코 복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을 만족케 하는 성공이나 출세 또는 소유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복을 밖에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복을 이미 우리 안에 모두 부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을 누리려 한다면 외부의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성공과 출세와 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제는 성공해야만, 출세해야만,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성공주의나 물질주의가 문제입니다. 성공과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서만 벗어나기만 해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복 있는 사람, 더 사랑 많은 사람, 더 정의로운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존귀함은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복입니다. 이것은 성공했다고, 돈이 많다고, 출세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구원의 본질입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현대어)


고린도후서 517절의 말씀에는 주목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누구든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구원의 복은 겨우 어쩌다 한 두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로또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은 겨우 특별한 한 두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로또와 같은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누구라도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정말 예수 믿는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어쩌다 누구 한 사람만 대박 나는 기복주의 번영주의 로또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굳이 예수님이 아니어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들도 주는 짝퉁 복입니다. 예수 믿는 진짜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누구든지라는 단어가 무려 205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2:50]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8:3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7:23]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고전10: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말씀을 마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누구든지를 포기하고 어쩌다 한 두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바알신앙이며 맘몬신앙입니다. 바알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숭배이며 미신입니다. 우상숭배나 미신은 나라는 존재나 내 삶에는 관심이 1도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우상에게 드리는 제물이나 정성과 노력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나라는 존재와 내 삶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집니다. 기독교 신앙의 진짜 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글 0 / 347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5553
347 십계명26-무엇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신 .. 2025.09.16 130
346 십계명25-우리를 지배하는 욕망의 물줄기를.. 2025.09.16 129
345 십계명24-마음의 수원지를 청소하라! 2025.09.16 151
344 십계명23-사람은 꺾어야 할 꽃인가, 돌보아.. 2025.09.16 150
343 십계명22-사람을 살리라는 계명 2025.09.16 163
342 십계명21-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2025.09.16 178
341 십계명20-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2025.07.20 434
340 십계명19-약속 있는 첫 계명 2025.07.19 439
339 십계명18-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 2025.07.19 414
338 십계명17-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 2025.07.19 410
337 십계명16-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 2025.07.19 413
336 십계명15-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 2025.07.19 410
335 십계명14-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5.06.07 502
334 십계명1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2025.05.24 581
333 십계명12-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2025.05.24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