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신앙을 허물라
마태복음 5:43-45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7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특혜 신앙을 허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가들이 외쳤던 대표적인 슬로건은 다섯 가지였습니다. 라틴어로 이것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 Sola Fide(오직 믿음), Sola Gratia(오직 은혜),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종교 개혁가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슬로건이 얼핏 복잡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종교 개혁자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슬로건이 지향했던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예수님께서 세우시려고 했던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개혁과 갱신 역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종교 개혁의 슬로건이 있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내세우는 다섯 가지 슬로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합니다. 예수 믿으면 자녀가 잘 됩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합니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나 교인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한결같은 패턴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 충성 봉사 헌신했더니 세상에서 병이 낫거나 자녀가 성공하거나 출세하거나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예수 믿고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거나 자녀들이 출세하거나 병이 나아야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거나 예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은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 병이 낫거나 귀신이 쫓겨나거나 굶주림을 해결한 사람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어디에도 예수 믿으면 누리는 복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거나 자녀들이 출세하거나 병이 낫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실패하거나, 사람에게 배신이나 상처를 받았거나, 삶에 대해 낙심하거나 절망한 사람들, 육체나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낙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도우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힘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병과 싸울 힘을 얻고 병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심각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진 육체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끝내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기도 했는데도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약할 때 강함 된다는 것입니다.
고후12:9-10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고 모욕을 당하고 가난하며 핍박과 괴로움 받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자녀가 잘 되고 병이 낫는 다는 설교와 간증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내가 약하고 가난할 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 교회는 내가 강하고 부해야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가르칩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갈수록 세상에서 실패하거나 육체나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은 다니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가 됐다는 간증만이 교회에 넘쳐나면서부터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사업에서 실패하거나 병이 들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위로와 기도가 필요함에도 이런 것들을 목사나 교인들에게 부탁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실패나 병을 자신의 믿음의 부족 때문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자가 되고, 경영하는 사업이나 학업에 성공하고, 자녀가 잘되고, 병이 낫는 것을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나 지나친 욕심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백 명 가운데 한두 명쯤은 부자가 되거나 출세를 하거나 자녀가 잘되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특정한 몇 사람들만 누리는 행운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이런 신앙을 로또 신앙이라고 설교 했습니다. 당장은 로또 신앙이 교인들에게 인기가 있고 한국교회를 성장하게 만든 비법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로또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게 됩니다. 결국 모양만 기독교 신앙이지 그 내용은 기독교 신앙이 아닌 가짜 신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로또 신앙으로 인해 생겨난 신앙의 왜곡은 특혜 신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국 인천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교인 가정에 장례가 있어 제가 교회 밴으로 교인들을 모시고 장례식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교회 차량을 운전하시는 기사 집사님이 계셔서 대부분 집사님이 운전을 하고 저는 보조석에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사 집사님이 출타를 해서 제가 운전을 해서 교인들을 모시고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운전석에 올라타서는 함께 가는 교인들에게 안전띠를 매시라고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뒤에 앉으신 권사님 한 분이 “오늘은 목사님이 운전하시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켜 주실 테니까 안전띠 매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권사님이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기에 계셨던 대부분의 교인들이 크게 아멘을 하면 웃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저 역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교인들의 생각에는 목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주실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목사를 특별하게 여기는 교인들의 생각은 순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운전하면 집사님이 운전할 때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생각하거나 믿는 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목사가 운전하면 더 잘 지켜주시고 권사님이나 집사님이 운전하면 목사가 운전할 때 보다 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일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목사를 특별하게 여기는 교인들의 순진한 마음이 하나님을 매우 이상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저는 제가 믿는 하나님이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교인들 보다 더 큰 특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믿는 하나님이 목사와 성도들을 구분하고 차별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그런 하나님을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설교할 수도 없을 것이며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얼마 전 기독교 뉴스에 나온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인해 많은 집들과 건물들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가 있는 지역에도 많은 집들과 건물들이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만은 그 큰 물난리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만큼은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특별히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설교를 읽으며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아마 교인들 가정 가운데에서도 갑작스런 폭우로 집이 잠기거나 가게가 잠긴 교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만에 하나 그 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집이나 가게가 물에 잠긴 교인들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그만 눈을 들어 이웃 교회나 교인들의 형편을 살펴본다면 폭우로 인해 교회가 잠기고 집이 잠기고 가게가 잠긴 교인들은 주변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목사가 설교한다는 것은 형식만 설교이지 실상은 영적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식의 신앙을 특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혜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은혜나 복을 내려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믿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헌금한 사람에게는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특혜 신앙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특혜 신앙은 로또 신앙과 함께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을 대표하는 신앙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녀들을 위한 40일 특별 기도회를 열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분명 아름답고 대단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정성과 기도를 통해 자녀가 공부한 것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를 원하거나, 부족한 점수를 가지고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식의 간증은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차고도 넘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대학입시가 자녀들의 공부나 노력이 아닌 부모의 기도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자녀가 합격하려면 정당하게 노력한 누군가가 대신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몇 년 동안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실수 없이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행여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이 인생의 끝 인양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정정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의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존귀한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부모님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저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만을 바랍니다.
특혜 신앙은 믿는 자들에게 특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넘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얼핏 대단히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독교의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만 해와 비를 주지 않고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주시는 공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5:44-55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닥친 재난이나 사고 또는 남의 나라에 닥친 재앙이나 재해에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언급합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부해안에 닥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는 등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전 세계 이 재앙으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최고 유명한 목사가 일본의 재앙에 대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를 내린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2004년에는 동남아에 쓰나미가 발생해서 거의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도 그 목사님과 많은 목사님들이 그 지역에 무슬림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쓰나미로 죽은 30만 명 가운데 물론 대부분은 이슬람교이지만 그중에는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뉴올리언스에 카트리나 태풍이 덮쳐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때도 그 목사님과 많은 목사님들이 그 지역에 동성애자가 많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허리케인을 보낸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백번을 양보해 설령 이 모든 재앙이 무신론과 이슬람과 동성애 때문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 재앙으로 인해 죽게 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연재해를 일으켜 무신론자들과 이슬람과 동성애자들을 심판하실 수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만 재앙을 내려야지 그로인해 피해를 입는 선량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런 식의 신앙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극히 편협하고 극단적인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매우 악하고 나쁜 신학이며 신앙입니다.
쓰나미나 태풍이 발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이 아닙니다. 자연의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나는 것 또한 신앙적인 죄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부주의나 사람의 실수나 자동차의 고장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의학적으로 찾지 않고 신앙의 부족이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혜 신앙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의 만들어 버리는 자기중심의 신앙입니다. 자기중심 신앙은 내 뜻과 믿음을 정해 놓고 내가 정한 뜻과 믿음에 하나님이 맞추어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 뜻과 소원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 인생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즉 순리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맞추는 마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세상에 부여하신 뜻을 찾고 거기에 우리의 채널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결코 어렵지 않다고 믿습니다.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나 우리교인들에게만 특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공평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좋습니다. 저는 목사나 교인이나 차별하지 않고 공평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너무 멋집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나 타종교인 차별하지 않고 심지어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동일하게 해를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좋고 근사하고 멋집니다. 우리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질 때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이루어질 때, 우리가 더욱 존귀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