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중심 신앙을 허물라
마태복음 5:13-16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11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교회중심 신앙을 허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설교 제목을 정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설교 제목을 잘못 이해하면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아 꽤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 제목보다 오늘 제가 전하려고 하는 주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은 없다고 여겨 그냥 그대로 정했습니다. 혹시 설교를 듣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시면 설교 후 질문을 해주시거나 카톡이나 메일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모태신앙인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심지어 목사가 되고 나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설교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교회중심은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듣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면서 그 어떤 일보다도 교회의 예배와 교회를 위한 봉사를 항상 우선시 하며 살아왔고 그 결과로 아마 목사가 된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고서도 어려서부터 배워온 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든 일에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도무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믿음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원하셨던 것 역시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까지도 교회중심으로 하는 것을 하는 것을 원하셨을까요? 저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가르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성전 신앙을 허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신앙과 삶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삶이지 결코 교회 중심의 신앙과 삶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하나님 중심이나 교회중심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얼핏 하나님 중심 신앙과 교회 중심 신앙은 얼핏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결코 같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과 교회 중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 둘이 대단히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목사를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순간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이 생기게 됩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를 구약 시대의 성전과 같은 것이라 여기거나, 종교개혁 시대의 목사를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라고 같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교인들이 이렇게 믿게 되면 교회는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과 영적 타락에 빠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교회 중심의 신앙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매우 이상하고 위험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를 위해 봉사와 희생을 많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일이라 하면 열일을 제쳐두고 교회로 달려와 교회 일을 하는 교인들을 믿음이 좋은 분이라고 여깁니다. 심지어 일부 목사들은 가정 일, 직장 일보다 교회에서 하는 일에 항상 최우선 순위를 두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것은 개신교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잘못된 교훈입니다.
지난 주 살펴보았던 개신교회의 만인 제사장 신앙이 무엇입니까? 목사가 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가정에서 또는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목회가 성직이고 목사가 성직자라고 한다면, 모든 직업이 성직이며 모든 사람이 성직자라는 것이 개신교회의 만인 제사장 신앙입니다. 따라서 만인 제사장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하느냐에 따라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지극히 탐욕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처럼 교회 일이든, 가정 일이든, 회사 일이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일이며 직업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물론 교회 일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회 일만큼 가정 일도 회사 일도 중요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심정으로 교회 일을 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며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심정으로 교회 일을 하듯이 가정 일도 회사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일 잘하기 위해 가정 일이나 회사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회의 교회론(신학)에 의하면 신약시대의 교회는 두 가지 형태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이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오늘처럼 주일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나 예배당 건물로 모이는 것을 모이는 교회라고 합니다. 흩어지는 교회는 교회로 모였던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흩어지는 교회라고 합니다.
물론 교회는 먼저 예배로 성경공부로 봉사로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마다 규칙적으로 교회로 모이는 것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로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도 해야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님을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교회로 함께 모여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함으로 세상에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심정으로 섬기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10:25 어떤 사람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 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하지만 교회로 모이는 것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상으로 흩어지기 위함입니다. 모이기만 할 줄 알지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는 교회는 결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며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유일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는 항상 파송이라는 순서입니다. 파송이란 교회로 모인 교인들을 세상으로 흩어 보내어 각자 자신이 있는 곳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역시 흩어지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 모여든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다. 너희는 교회의 빛이다.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소금과 빛이 크리스천이 감당해야 사명이라고 한다면 세상은 크리스천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소금과 같은 신앙, 빛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이자, 기독교인의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 속담에 다리 부러진 장수 성안에서 큰 소리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리가 부러져 전쟁에 나가 적군과 싸울 수 없는 장수가 성안에서만 적군을 향해 큰 소리 친다는 것입니다. 장수가 큰 소리를 쳐야 하는 곳은 성안이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적군들 앞입니다. 하지만 전쟁에는 나가지도 못하면서 성안에서만 큰 소리 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허세입니다. 허세를 부리려면 전쟁터나 적군 앞에서 해야 용기라고 할 수 있지 성 안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은 비겁하고 창피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겁하고 창피한 일을 교회가 목사가 교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교인들은 세상이 무서워, 세상이 두려워 세상과는 맞장 뜨려고 하지 않고 교인들끼리만 모여서 교회에서만 큰 소리 칩니다. 교인들에게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우니 세상과는 어울리지 말고 오로지 교회로만 모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목사와 교인들이 모여가지고 아무리 세상이 어둡다고 세상이 타락했다고 욕하고 저주한다고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구원하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죄 때문에 부패하고 있는 세상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처럼 세상의 소금이 되어 세상이 타락하고 부패하여 썩어지는 것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세상은 부패하고 타락했으니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거룩한 교회로 피신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향해서는 지옥에나 가라고 합니다.
소금이 선반 위에 있는 고기에 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소금이 그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썩을 것 같은 고기 속으로 들어가 고기에 녹아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자꾸만 도망치려하지 말고 세상과 맞장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용해되어 고기가 썩는 것을 막는 것처럼 세상 속에서 세상이 부패하고 썩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기를 잃은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을 살리고 깨끗케 하고 썩지 않게 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모인 교회조차 부패하고 썩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가장 순결하고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는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예언처럼 맛을 잃은 소금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분명 세상은 악합니다. 세상은 병들었습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다 어둡기에, 세상은 다 병들었기에, 세상은 다 죄로 가득 차 있기에 어두워도 어두운 줄 모르고, 병이 들었어도 병이 들었는지 모르고, 죄로 가득 차 있어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을 밝히게 되자 세상은 비로소 어두운 곳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8: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2: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따라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더욱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교인들은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세상은 어둡고 죄악이 가득한 곳이기에 가까이 하지 말고 되도록 멀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신앙 생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가 우리의 믿음 없음을 확인하고 믿음을 충전하는 곳이라면, 세상은 교회에서 충전한 믿음으로 믿음의 빛을 비추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믿음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곳이라면 세상은 교회에서 연습하고 훈련한 믿음으로 실전을 치러야 하는 믿음의 싸움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위한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빛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물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지만 어두움을 밝히므로 어두움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빛이 있기에 어둠이 어둠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빛이 아예 없으면 어두워도 어두운 줄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과 남을 섬기고 희생하는 이타심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자기만 알고 위하는 이기심과 남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세상은 어둡고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선포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하여금 어두움에 빠져있음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야 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는 믿음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믿음을 연습하고 훈련하고 충전하는 곳입니다. 믿음을 드러내고 자랑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입니다. 내가 경영하는 사업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교회 중심이 아니라 세상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신앙은 모이는 교회 중심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 중심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과는 다른 것을 소원하고, 세상과는 다른 성공을 말하고, 세상과는 다른 가치, 세상이 추구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복이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교인이라면 마땅히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며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