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개혁과 갱신13-잘못된 헌금신앙을 허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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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헌금신앙을 허물라

누가복음 21: 1-6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1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잘못된 헌금신앙을 허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난 614일자 기독일보 신문에 한국교회의 헌금 종류 몇 가지나 될까?”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신문 기사에 의하면 여러 교회의 헌금 종류를 조사한 결과 현재 한국교회에서 드려지는 헌금의 종류는 무려 85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85가지나 되는 헌금 종류에는 도무지 이런 제목을 붙여서까지 헌금을 해야 하는가 라는 이상한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도대체 교회와 목사는 왜 이 많은 종류의 헌금을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헌금을 요구하는 교회와 목사는 그렇다 쳐도, 정작 헌금을 내는 교인들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항목까지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목사마다 그리고 교인들마다 여러 가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별의별 헌금을 요구하는 이유나, 교인들이 별의별 항목으로 헌금을 드리는 공통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금을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에 있을 재앙을 피하게 해 주시고 자신들의 삶을 더욱 축복해 주신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말씀은 가장 많이 그 본질이 왜곡되어 해석되고 설교되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 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읽으면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앞뒤로 나오는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에 대한 연장선에서 읽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많은 부를 가진 부자들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추겨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부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더 큰 제물과 헌금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부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거짓된 종교 가르침에 우쭐하며 더 많은 헌금을 성전에 냈습니다.


더 나아가 종교지도자들은 가난하거나 평범한 유대 백성들에게 부자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헌금을 많이 내며 하나님을 잘 믿었기에 부자가 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처럼 하나님께 더 많은 헌금을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들은 가난한 과부는 자신도 부자들처럼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아 비록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난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전부였던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어 하나님께 드립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두 렙돈은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돈이었습니다. 두 렙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겨우 한 주먹의 곡식가루입니다. 한 주먹의 곡식가루는 가난한 과부의 한 끼 식사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적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두 렙돈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성전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두 렙돈은 누구에게로 갔을까요? 물론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가나한 과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성전을 관리하는 다스리는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분을 앞세워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가난한 과부의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생활비조차 빼앗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타락한 모습이었습니다.


미국을 방문하신 장인 장모님과 자동차로 근처를 여행을 하면서 지난 105일 목요일 아침묵상을 들으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몇 년 전, 장인 장모님 사시는 동네에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아내만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부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는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많은 공사금액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부흥사가 와서 교인들에게 작정헌금을 하게 했고 신실한 여자 집사님은 자신의 가난한 형편은 생각하지 않고 부흥회 분위기에 빠져 그만 천만 원을 작정했습니다.


천만 원이 부자들에게는 별거 아닌 적은 돈일 수 있지만 가난한 여자 집사님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고 교회는 교인들이 작정한 헌금을 요구했습니다. 마침 여자 집사님 집에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천만 원이 있었습니다. 이 돈은 실직한 남편이 새로운 일을 하려고 땅을 판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도 모르게 교회에 이 돈을 모두 건축 헌금으로 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남편이 교회에 가서는 오백 만원이라도 돌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끝내 돌려주지 않았고 화병이 난 남편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헌금에 대한 교회와 교인들의 잘못된 믿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헌금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더 많은 헌금, 더 정성스런 헌금을 바치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신앙입니다. 더 많은 헌금이 더 큰 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절대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맘몬신앙이며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식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말라기 310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넘치게 부어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얼핏 읽으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넘치는 복을 주시는 말씀처럼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평범한 유대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제자장들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제사장들은 유대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중간에서 자신들이 전부 차지하고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일에만 사용하였습니다.


2: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말라기 310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하는 십일조를 제사장들이 가로채고는 자기들 재산으로 삼는 것에 대해 비판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일부 목사들은 이 말씀을 왜곡해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넣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맞게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이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넣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십일조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26:12-13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신명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소산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무작정 드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 드려진 것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시 성전의 직무를 전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한 경비, 요즈음의 말로 표현하면 교회 유지 경비로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이방인들과 고아와 과부들을 돕는 일에 쓰게 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웃과의 나눔이나 구제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십일조나 성전에 바치는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일부는 기업을 받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성전 유지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성전 밖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용한 것을 하나님께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헌금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헌금만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의 책임을 다했다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헌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했을 때 비로소 헌금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별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헌금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교회에 드립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교회에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정말 돈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우리에게 돈을 원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구별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믿음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구별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믿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돈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믿음을 통해 구별되고 드려진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헌금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용하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드렸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헌금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헌금은 하나님께 결코 드려진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오랫동안 교회재정을 함부로 사용한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청해 왔습니다. 목사님에게 교회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공개하자고 건의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목사에게 대적하는 것 같이 그럴 용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당분간 그 교회에 헌금하지 말고 사회봉사 기관에 헌금 전부를 기부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순수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상담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연코 헌금에 대한 교회의 재정 비리입니다. 교회재정에 대한 문제 때문에 어려움에 빠지지 않는 교회를 찾아보는 것이 힘들 정도로 헌금에 대한 교회 재정은 거의 모든 교회마다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까? 교회는 헌금을 거두어 드리는 일에는 무척이나 열심이지만 바르게 사용하는 일에는 너무할 정도로 엉망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도 헌금을 드리는 일에는 정성과 희생을 다하지만 막상 드려진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교회재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믿음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입니다.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신앙의 문제는 성경적으로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씀 드리면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헌금이라면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이 교회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도 더 좋을 수 있는 것이 헌금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헌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구별하고 바르게 쓰는 믿음인데 하나님께 드릴 그 믿음은 포기하고 돈만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 이것처럼 큰 신앙의 착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국교회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헌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가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헌금 사용 내역을 보고하는 교회는 거의 없고 대부분 분기별로 보고하거나 일 년에 한 번 재정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인쇄된 문서를 통하지 않고 파워포인트 영상으로 보고한다고 합니다. 요즘 웬만한 교회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홈페이지에 그 교회의 재정에 대한 보고를 하는 교회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럼 교회는 왜 교인들이 헌금한 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헌금을 교인들 보기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 보기에 당당하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당하지 않기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께 헌금 드렸으니까 교회가 어떻게 사용하던 상관하지 않겠다고요. 이것은 믿음이 좋은 게 아니라 너무 무책임한 생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불신앙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재정의 문제로 인해 문제가 생기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을 받는 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얘기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교인들은 왜 헌금을 드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는 일에는 그렇게 무관심할까요? 이 모든 것이 헌금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물을 요구하시고 헌금을 하게 하시는 이유는 축복이기보다는 희생과 순종 그리고 나눔입니다. 헌금은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한 영적훈련입니다. 돈을 내어 드림으로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내 돈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것 잠시 빌려 쓰는 것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도 좀 돌보고 베풀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게 복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헌금에 대한 잘못된 믿음 중 또 다른 대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헌금은 누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이 큰 사람이 더 많이 헌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사님보다 권사님, 권사님 보다 장로님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금의 액수가 곧 그 사람의 믿음의 크기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헌금의 액수를 믿음의 수준이나 믿음의 크기로 여기는 경향이 분명 교회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교회를 타락하게 하는 아주 잘못된 믿음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헌금의 액수와 믿음의 크기를 동일시한 데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보면 생활 형편에 맞는 헌물들을 정해 놓고 형편에 따른 헌물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를 바칠 형편이 되면 소를, 양을 바칠 형편이 되면 양을, 심지어 양조차 바칠 형편이 안 되면 비둘기를 정성된 마음으로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비둘기조차 힘든 사람에게는 곡식가루 한 주먹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14:30 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리되

고전16:2 매 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헌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곧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믿음이 교회의 직분을 헌금의 액수로 결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교회가 매월 월례회 때마다 드려진 헌금에 대한 사용내용을 보고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헌금의 50%로 선교와 구제를 행하기로 하고, 교회에 필요 이상의 헌금을 모아두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바르게 쓰는 믿음을 받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헌금 그 자체가 아니라 내게 주신 물질을 구별하고 바르게 사용하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더 많은 돈이 아닙니다. 돈에 좌우되는 인생이 아니라 돈을 좌우하는 인생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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