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1-7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17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개혁과 갱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개혁과 갱신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와 타락은 단순히 목사 혼자 만들어낸 위기와 타락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목사와 교인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위기이며 타락입니다. 물론 한국 교회의 위기와 타락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교회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 혼자만으로는 결코 이토록 심각한 한국교회의 위기와 타락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라는 목사들은 오로지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 교회 교인 만들기 위해 교인들의 탐욕을 교묘하게 이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인양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가르쳤습니다. 교인들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사람이 되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습니다. 대신에 “예수 믿으면 성공합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됩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합니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이런 가짜 복음에 더욱 열광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결과가 만들어 낸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와 타락입니다.
교회개혁과 갱신이란 단순히 교회의 교리나 제도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것이란 우리의 탐욕을 위해 함부로 왜곡하고 변질시켜버린 잘못된 신학과 신앙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학과 신앙을 바르게 하는 것을 너무 대단한 것으로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신앙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내 탐욕을 따르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은 무엇이며, 회복해야 할 신앙은 무엇이며, 고쳐야 할 신앙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단순히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 문화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완전함을 뜻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당시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더 나아가 지금까지 세워졌던, 그리고 앞으로 세워질 전 세계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곱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 역시 오늘의 교회들을 위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일곱 교회 가운데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의 요충지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3대 도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당시 인구는 25만 명이나 되는 대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25,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스타디움과 극장을 갖추고 있었고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였던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에 대한 우상숭배가 성행했고 거짓 교사들도 많아서 교회가 이들을 유혹을 극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에베소에 기독교 복음이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주후 52년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곳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도 에베소에 설교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이나 이 지역에서 지내며 전도하므로 비로소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를 맡기고 전도 여행을 위해 에베소 교회를 떠났습니다. 디모데 이후에는 사도 요한이 오랫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당대 최고의 사도와 목회자들이 목회하였던 아시아 최초이자 최고의 교회였습니다.
계2: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소아시아의 최초의 교회이며 최고의 교회였던 에베소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으로 보았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다양한 상징과 비유가 그 어떤 성경보다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로마 제국의 검열을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교인들만 알 수 있는 신비로운 단어로 기록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을 의미하며 일곱 금 촛대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단어로 지상의 모든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야 말로 모든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도 바울이나 디모데라고 할지라도 또는 오랫동안 에베소 교회를 목회했던 사도 요한이라고 할지라도, 이들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소유권을 대신할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교회를 세습한다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죄입니다. 교회의 세습은 교회를 예수님의 교회가 아닌 목사 개인의 기업으로 만드는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교회를 목사나 특정 집단이 함부로 좌지우지하는 것도 예수님의 교회를 자기 개인의 소유로 여기는 죄가 됩니다. 교회는 그 소유권이 예수님께 있으므로 목사나 몇몇 교인들의 뜻이나 계획이 관철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교인들이 목사에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협박하면서도 정작 목사 자신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이것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잊으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목사의 독단적 결정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소유권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은 모든 교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를 주관하시는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능가할 존재는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사도, 장로님도 예수님의 권위를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계2:2-3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신다고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에베소 교회가 한 일과 수고와 인내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 수고한 것, 인내한 것에 대해 칭찬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에베소 교회가 했던 칭찬받을 만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악한 자들을 내버려두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여 그들의 거짓을 밝혀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견디고 참고 끝까지 낙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칭찬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으로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잘해서 칭찬받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잘해서 칭찬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은 자기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해 놓고는 마치 이것이 예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일을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건축입니다. 크고 화력하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으면 가장 좋아할 분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아님 예수님일까요?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최고의 성전이라는 헤롯 성전을 허물라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교인들이 크고 화려한 교회건물을 지었다고 기뻐하실까요? 아니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건물 지으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일차적으로는 목사이고 다음으로는 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크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을 지었다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계2:4-5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만 받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도 들어야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들었던 책망이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어쩌다 보니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씀에서 에베소 교회가 의도적으로 처음 사랑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처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많은 분들이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심각한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결코 식지 않았다는 것을 에베소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에서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에베소 교회가 한 일과 저들의 수고와 인내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악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으며,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해 낸 자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견디었습니다. 이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던 교회는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아니라 성도들 사이에 있었던 사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대해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에 감사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자들과 수많은 거짓 사도들의 거짓 가르침과 오랫동안 싸움을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의심만 남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의도적으로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위해 사랑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엡1:15-16 그러므로 나도, 여러분이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여러분이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는 것을 듣고서 여러분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올리며, 여러분을 두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교회는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사람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자기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 자기보다 학식이 낮은 사람,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함부로 여기거나 막 대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거나 존대말을 사용하는 것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예의가 아니라 마치 쓸데없는 어리석은 일쯤으로 여깁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사랑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감정에 속한 것이라면 사랑하는 것은 의지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의 그 누가 원수를 감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원수라고 할지라고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출 수는 있습니다.
물론 에베소 교회가 성도 간에 사랑을 버린 것은 악한 자들이나 거짓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비록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도들 간에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하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촛대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없애버리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예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나고 발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고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대단한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수고와 인내를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은 교회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심각한 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으로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야지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려는 것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계2:6-7 그런데 네게는 잘 하는 일이 있다. 너는 니골라 당이 하는 일을 미워한다.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신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니골라 당을 미워한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니골라는 초대 교회가 세웠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다고 합니다. 니골라 당이 내세운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인간은 육체와 영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영만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만 거룩하게 보전하기만 하면 되고, 버림받을 육체는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저지르는 우상숭배나 음행과 같은 죄를 지어도 영이 구원을 얻는 데에는 아무른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행6: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모든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이 에베소 교회에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단순히 사도 요한이 전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귀가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든지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귀 있는 자는 모두 들으라며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과실을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신앙이란 영적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만 구원을 약속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적당히 교회 다녀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이기느냐 패배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상태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저절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이기는 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후 사도 요한은 밧모 섬의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에베소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에베소 교회로 돌아온 사도 요한이 설교는 서로 사랑하는 말씀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몸이 불편한 사도 요한을 설교단 의자에 앉히고는 오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들려달라고 부탁을 해도 사도 요한이 가르친 말씀은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4:20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노벨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직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 그것은 사랑입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영성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했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출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성입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과 회개가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 반드시 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