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회 다른 신앙
요한계시록 2:12--17
교회개혁과 갱신 시리즈 19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같은 교회 다른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요한계시록 말씀하고 있는 교회개혁과 갱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여기에는 중요한 두 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믿음입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독교 교리가 가르치는 삼위일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믿음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통해 이루시고자 했던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믿음이 균형을 이루어야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더 나아가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신앙생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반드시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게 됩니다. 결국 자기 생각대로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과 욕심 또는 기도하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말씀을 우리의 믿음으로 삼을 때에만 비로소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믿음의 기초가 되고 근본이 되어야 하는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이전에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기도하시고 이루시길 원하셨던 것들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뜻에 기초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에만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공주의 번영주의 물신주의 이런 것들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바알신앙입니다. 맘몬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은 절대로 성공하지도 말고, 부자도 되지 말자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할 수 있으면 세상을 살면서 성공하는 게 좋고 부자가 되는 게 좋고 건강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부자 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잘 응답하지 않으실 줄 알면서도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떼쓰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은 결코 이런 것들을 약속하거나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약속하는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존귀해지면 사람은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자족이라고도 하고 초월이라고도 합니다. 자족할 줄 알고 초월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주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가운데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에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은 무엇이며, 회복해야 할 신앙은 무엇이고, 고쳐야 할 신앙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버가모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권면이 우리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며 에베소 교회에게는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버가모 교회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좌우에 날 선 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계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심판을 의미하는 좌우에 날선 검이 버가모 교회에 주는 영적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되지만,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따라서 버가모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2장 16절을 보면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영적도전이기도 합니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 지를 내가 아노니”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셨고,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저들의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신다고 하신 버가모 교인들이 사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버가모라는 지역은 사탄의 권좌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버가모의 가장 높은 산에는 제우스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의 신전이 있었고 로마황제들의 신전도 여러 개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유적들이 남아있습니다.
계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특별히 버가모에는 의학의 신으로 불렸던 아스클레피우스를 숭배하는 신전이자 세계 최초의 병원이라고 하는 아스클레피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 치료를 위해 버가모로 모여 들었습니다. 병 치료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치료의 신이라 불리는 신들에게 병이 낫기를 바라며 우상숭배와 제사에 열심을 다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제사가 많았는지 신전의 제사 연기 때문에 매일같이 도시 전역이 자욱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버가모 지역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가 넘치는 사탄의 본부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상의 본부와 같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진리는 어두운데서 더욱 빛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신 것처럼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죄가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입니다. 대부분의 절은 박해를 피해 산 좋고 물 좋은 산 속으로 도망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산으로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 박해와 맞서 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네가 사는 곳을 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버가모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거기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타락한 버가모에서 저들의 신앙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그곳이 사탄의 권좌가 있는 타락한 곳이지만 그곳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영적도전이 무엇입니까? 해외 선교만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사명의 자리는 내가 사는 곳입니다. 내가 사는 곳이야말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최고의 사명입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버가모 교회는 우상숭배나 황제숭배에 굴복하지 않고 굳건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지어 버가모 교인 중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안디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디바는 로마황제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살려준다는 갖은 위협과 고문가운데서도,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라고 고백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버가모 교회는 박해와 고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던 신실한 교인들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인들 모두가 안디바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잘 지켰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만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던 교인들도 많았습니다. 무엇이 버가모 교인들의 문제였습니까? 버가모 교인들은 우상숭배나 황제숭배에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가모 교인들 가운데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교인들이 있었으며,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버가모 교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잘 지켰지만,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믿음은 문제가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계2:14-15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버가모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엄중한 책망이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숭배나 황제숭배로부터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을 지켰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발람의 가르침과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인들이 있다며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은 우상숭배나 황제숭배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나 믿음을 가지는 것을 더 위험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도대체 왜 우상숭배나 황제숭배보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믿음이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나 믿음을 가지는 것이 더 위험합니까? 예순님을 믿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우상숭배나 황제숭배를 하는 경우가 있으면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교인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나 믿음을 가진 경우에는 자신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점집이나 무당을 찾은 교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잘못된 사이비 이단 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른 신앙을 가진 교인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비록 우상숭배나 황제숭배와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에는 단호하게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버가모 교인들이 빠진 잘못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먼저 발람의 교훈입니다. 모압의 왕이었던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그 지역에서 최고로 영발이 세다는 발람이라는 제사장을 많은 돈을 주고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많은 돈을 주고 데려온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입을 열면 저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이스라엘을 몰락시킬 꾀를 생각해 냅니다. 발람이 낸 꽤는 모압의 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바알 제사에 참석하도록 초청하여 그들과 음행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래 바알 제사는 여사제들과 제사에 참여한 남자들이 성관계를 하는 것으로 제사의식이었습니다. 바알제사에 초대받은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압 여인들과 바알 신전에서 음행을 합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고 하루 사이에 2만 4천명이 염병으로 죽는 대재앙이 발생했습니다.
벧후2:15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계2:14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
발람은 하나님이 두려워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했지만 결국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발락과 내통하고 이스라엘을 위기에 빠뜨린 선지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입니다. 거짓 선지자라고 해서 빤한 거짓말을 일삼지는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겉으로는 진리를 말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 이익을 탐하는 욕심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이용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도 거짓 선지자입니다. 진리를 비틀고 왜곡하는 자들도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정말 조심해야 할 거짓 선지자는 진리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발람이 바로 그런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 양을 탈을 쓴 이리는 언제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교인들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자들, 긍정의 힘을 역설하며 축복을 남발하는 자들, 이런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인들 가운데는 발람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저들에게 이용당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버가모 교회를 위협했던 니골라 당의 교훈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니골라는 초대 교회가 세웠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다고 합니다. 이방사람 니골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니골라 당이라고 했습니다. 니골라 당이 내세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인간의 육체와 영을 극단적으로 분리하여 영만 구원받고 육체는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을 영만 거룩하게 지키면 되고, 버림받을 육체는 어떤 일을 해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니골라 당의 가르침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니골라 당의 가르침대로라면 예수님을 믿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육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매혹적입니까! 니골라 당의 가르침은 단지 초대 교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교인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지금은 좀 더 세련되어진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리는 축복을 받으며 살고, 죽어서는 영원한 낙원이라는 천국도 무조건 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참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달콤하게 들리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교훈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짜 교훈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하고 교인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가짜 목사들이 만들어낸 엉터리 가짜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는 받는 자가 천국을 얻는 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보다 의롭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대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인들에게 인기 있는 가르침이 이렇게 다릅니다.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와 같이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의 순결함을 지키려는 교인들이 있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사실은 교회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같은 교회를 다니고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신앙과 예수님을 단지 전능하신 신으로 믿는 신앙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믿는 신앙과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기에 믿는 신앙은 비록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이 두 신앙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처럼 같은 교회이지만 서로 다른 신앙이 버가모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자들로만 똘똘 뭉친 교회는 세상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 양과 이리,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뒤섞임을 통해서 진짜를 연단하는 것, 가짜를 통해서 진짜를 세워가는 것 이것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