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복 있는 사람1-복 있는 사람, 복 있는 교회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교회

시편 1:1-6

 

오늘은 2018년 첫 번째 주일예배입니다. 먼저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번째 주일에 전하려고 하는 말씀은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전하려고 하는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교회는 단지 오늘 예배의 설교 제목만이 아니라 올 한 해 우리교회의 영적 목표로 삼고자 합니다.


저는 올 한해 자유교회를 섬기면서 저와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설교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목회하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올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우리교회가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교회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2017년 마지막 주일 예배에서 교회는 무슨 일을 할 것이냐?(to do)에 초점과 관심을 두는 곳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to be)에 초점과 관심을 두는 곳이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일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대부분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초점을 두기 보다는 내가 맡은 교회 일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교회 일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일이 중심이다 보니 자신이 한 교회 봉사를 가지고 남에게 자랑하거나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교회 봉사를 가지고 남들은 자신처럼 봉사하지 않는다며 불평불만 합니다. 심지어 자신처럼 봉사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하는 좋은 일 보다 더 크고 심각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모인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초점과 관심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초점과 관심은 교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에 되한 고민과 기도가 빠진 교회 일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물론 성경은 이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 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 겸손한 사람 등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 신앙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신앙의 목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올해 우리교회가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이 모이는 복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어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새해 덕담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대표적인 새해 덕담이 무엇입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입니다. 매년 반복하지만 저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영적원리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인 새해 덕담에 너무 딴죽을 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습관적인 새해 인사로만 여기기에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년 습관적으로 나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에는 복에 대한 세상의 방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매년 반복하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복에 대한 세상의 방식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복이란 무조건 받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만든 것입니다. 복을 무조건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면 복이란 지극히 물질적이거나 좋은 일이나 행운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복은 세상이 가르치고 주장하는 복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세상은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복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을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복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다시 말해 복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복에 대한 매우 중요한 영적원리입니다.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며 철학자인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는 소유형의 인간(to have)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존재형의 인간(to be)이라고 했습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더 많은 것을 소유(to hav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이 두 가지 유형 가운데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더 많은 소유를 가지도록 돕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까? 기독교 신앙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닌 더 나은 존재를 위한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육체만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도록 돋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더 많은 소유를 가지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신학과 신앙은 예수 믿고 성공했더라. 예수 믿고 부자가 되었더라. 예수 믿고 출세했더라. 이런 것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들을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나 목표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바알신앙이고 맘몬신앙의 주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은 행복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시도한 답은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소유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소유가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더 많은 돈과 소유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은 소유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멋진 옷과 더 편한 집에서 사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소유가 늘어날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만족을 느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유는 절대로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자신이 버는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습니까? 더 많은 소유는 사람을 만족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불만족하게 만듭니다.


영어단어에 보면 복을 의미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fortune, luck, happiness 그리고 blessing입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에서 복을 표현하는 단어는 딱 한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blessing입니다. 영어성경은 성경이 말씀하는 복을 fortune, luck, happiness라고 쓰지 않고 오로지 bless, blessed, blessing만 사용하여 복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복에 대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fortune이나 luck, 그리고 happiness는 무엇인가를 얻는 것을 의미하거나 또는 우연히 운이 좋아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happiness의 어원이 happe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좋은 일이 happen되었을 때 happiness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blessing의 어원은 bleed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bleed는 희생을 상징합니다. 내가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말하는 복은 운이 좋거나, 횡재를 하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무언 가를 소유할 때 가지는 행복이라면, 성경이 말씀하고 예수님이 가르치는 복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유가 복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내 가정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교회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기만 해도 행복하게 되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축복의 핵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공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출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목적이 소유나 성공이나 출세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예수를 제대로 믿기만 하면 누구나 천하보다 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 사람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성공하였던지 실패했던지, 특별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별처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을 나눈다고 해도 한 해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나쁜 일은 하나도 없고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실패나 실수는 하나도 없이 늘 성공만 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프지 않고 늘 건강하게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복을 많이 받는 것보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말 사자성어 중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생에게 닥친 위기나 나쁜 일을 복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에 좋은 일만 있고 어려고 힘든 일은 전혀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살다보면 위기도 겪고 나쁜 일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복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나쁜 일 때문에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거나 좋은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주는 진짜 복이라고 믿습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반면에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복만 원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복된 인생을 살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넘어뜨리고 무너지게 하는 화가 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탐욕스런 사람에게 주어진 돈은 그 사람을 복 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주어진 힘이나 권세는 그 사람을 복 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악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편의 말씀은 복에 대한 성경의 가장 분명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이 가르치고 있는 복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을 소유하고 사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삶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묵상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며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성경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교만한 자가 되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반면에 악인들은 당장은 승승장구하고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3-6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하느냐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이 말씀은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해 보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인정받고 칭찬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사기꾼에게 피해를 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핍박을 받으며, 겸손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이 형통한다고 하지만 현실이 보여주는 사실은 악인이 더 형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형통함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도 있지만 세상이 주는 형통함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정직하지 않아도, 성실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부유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악인의 형통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악인의 형통함으로 인해 실족하여 넘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악인들이, 죄인들이 그리고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 같지만 그래서 이들의 삶이 형통해 보이지만 조금만 길게 보면 그들이 누리는 악인의 형통함이 그리 길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단 한 세대만 지나가도 그들이 누린 것이 그들의 자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수치와 모욕이 됩니다.


시편 1편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5절의 심판이라는 단어와 6절의 주께서 인정하시나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당장 보기에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죄인들이 승승장구하고, 교만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본다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악인의 형통과 죄인들의 승승장구하는 것이 별로 대단한 것이 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길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을까요? 영원의 관점에서, 세상과 인생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원의 눈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인생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과 너무나 달라질 것입니다. 당장 이익이 된다고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이, 당장 조금 편하자고 죄인들의 길에 서는 것이, 목에 힘주고 싶어서 교만해 지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복은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해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게 합니다. 바라기는 2018년 한 해도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복을 많이 받는 보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올 한해 우리교회 성도님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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