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복 있는 사람6-복을 나누는 사람
복을 나누는 사람.mp3

복을 나누는 사람

사도행전 20:35

 

1월 첫째 주부터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복을 나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물론 사람마다 주어진 형편이나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대답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행복하게 되는 것또는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행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불행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고,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더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 자녀를 낳고 기릅니다. 마찬가지로 더 존귀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삶의 이유와 목적은 결국 행복하게 되는 것 또는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복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복되게 살게 하셨으므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사람이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것 여기에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마 여러분도 다 그러실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에게나 행복 추구의 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행복한 삶을 원하고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이것은 모든 인간이 누려야할 마땅한 기본 권리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을 보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존귀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면서도, 모든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사람의 소원이기도한데 정작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매일같이 행복하기를 원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은 복을 원하면서도 정작 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엉뚱한 것이나 잘못된 것에서 복을 구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요?”,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요?” 이 물음에 대해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돈입니다.

 

세상은 더 많은 돈이 사람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세상의 가르침을 믿고 더 많은 돈과 재산을 위해 지금까지 부단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심지어 자식을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들조차 더 많은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며 자신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세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우리 대부분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유와 재산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이 가정형편 조사를 하였습니다.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집에 전화가 있는 사람,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집에 세탁기 있는 사람, 집에 TV있는 사람 등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러면 겨우 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만 손을 들곤 했습니다. 그 때는 감히 차 있는 사람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약 지금 이런 것들을 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선생님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우리 대부분은 그 때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때보다 지금 더 행복해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기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멋진 옷과 더 좋은 집에서 사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이런 것들이 사람을 잠시 기쁘게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더 큰 욕심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통해, 더 많은 재산과 소유를 통해, 더 높은 권세를 통해 인생의 행복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잡았다 생각하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으로는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행복에 관한 믿음으로는 사람은 절대로 제대로 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정말 복 있는 사람이 되고, 복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에게 최초로 복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는 세상이 복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는 더 많은 돈이, 더 큰 성공이, 더 높은 권세가 복이라고 가르치며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세상을 믿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해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복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복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어떻게 다릅니까? 세상이 가르치는 복은 거의 대부분이 모든 사람이 얻거나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성경이 가르치는 복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세상은 부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것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부자가 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가난해져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있기 위해선 반드시 실패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1등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누군가 1등을 하려면 누군가는 23등 그리고 수많은 탈락자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출세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출세한 사람이 있으려면 반드시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복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 몇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장하는 행복은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밟고서 겨우 몇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합니까?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이라고 합니다. 제로섬 게임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장하는 돈이나 성공이나 출세는 무한정이 아닙니다. 그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반드시 덜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을 합치면 원래 그대로 되는 것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장하는 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몇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을 복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칩니다.

 

반면에 성경이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심지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고 많아지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입니다.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는 이웃만 행복할까요? 사랑하는 나도 행복할까요? 내가 이웃을 섬기면 섬김을 받는 사람만 행복할까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나도 행복할까요? 둘 다 행복해 집니다. 심지어 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이것을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라고 합니다. 또는 Win-Win Ga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너지 효과는 두 개 이상의 것이 협력할 때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1+1=2가 아니라 1+1=3 또는 4가 되는 것을 시너지 효과라고 합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복은 다른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성공을 하면 내가 가난해 지고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용서할수록 상대방도 행복해지지만 나도 더 행복해집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나 교회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길 원하시는 복은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고 오직 나 혼자서만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내가 더 행복해 지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더 행복하도록 더 사랑하고 섬기고 친절하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같이 사는 아내가 행복해야 하고 자녀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아내가 불행하고 자녀들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더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소속된 교회와 공동체가 행복해야 합니다. 나아가 내가 사는 사회와 국가가 행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려면 이웃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행복해집니다. 이웃을 불행하게 하면서 나만 행복해지는 길은 없습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친절을 베풀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영적 원리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오늘 함께 읽은 성경말씀입니다.

 

20: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선 아브라함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아니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많은 사람들을 복되게 하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처리해야 할 급한 문제가 너무 많아. 그러니 내 문제를 모두 해결한 후에 남을 도와야지 생각합니다. 내 문제가 모두 해결된 다음 남을 사랑하고 섬겨야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내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남을 돕고 섬기겠다는 생각은 죽을 때까지 남을 돕거나 섬기지 않겠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날은 죽기 전까진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씨를 뿌려야 추수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먼저 남을 돕고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지길 원한다면 남이 건강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로 고통을 당한다면 동일한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가정을 도와야 합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이웃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는 평생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문제에서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돌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기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고 이웃에게 어떤 씨앗을 뿌릴지 고민하고 아주 적은 씨앗이라도 뿌릴 수 있을 때 어느새 자기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스라엘 땅에는 바다로 불리는 커다란 저수지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헐몬산과 주변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한데 모여 바다를 이룬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고기가 많아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 모인 물은 조금씩 흘러나가 요단강을 이루고 요단강을 흘러간 물은 모두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사해는 아무리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물에 빠지지 않고 물 위에 둥둥 뜰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물 위에 누워서 신문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바다의 염도가 3.5%인데, 사해의 염도는 무려 31.5%라고 합니다. 이처럼 신비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는 바다이지만 염도가 너무 높아 이 바다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합니다. 아무런 생명체가 살 수 없어서 이 바다를 죽은 바다 사해라고 합니다.

 

물고기가 뛰어노는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인 사해가 죽은 바다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해가 죽은 바다가 된 것은 요단강에서 흘러온 물이 들어오기만 하지 다른 곳으로는 조금도 빠져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흘러올 때는 신선했던 물이 죽은 물이 된 것입니다. 보기에는 신기할지 모르지만 사해의 물은 마실 수도 없고 생명체가 살 수도 없는 죽은 물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바다가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갈릴리 바다와 같은 사람으로 창조하셨지 사해와 같은 사람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받은 것을 흘러 내보내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아두기만 하는 사해 바다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받은 것을 끊임없이 흘러 보내는 갈릴리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흘러 보내지 않으면 사해처럼 우리 역시 점점 썩어 악취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지 않고 혼자만 독식하면 복이 변질됩니다. 부패합니다. 왜냐하면 그 복에 미움과 시기와 원망과 불평과 불화가 더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나누지 않고 쌓아만 두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의 복과는 달리 나눈다고 줄어들거나 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나눌수록 더 채워지는 복입니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복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누리며 살기 원하십니까? 열심히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섬김으로 이웃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받고 섬김을 받는 이웃도 행복하겠지만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은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758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90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82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22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22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19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17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112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15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34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309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33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517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50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95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