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복 있는 사람7-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mp3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마가복음 12:28-31

 

오늘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 생각하려는 복 있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좋지 않게 여기신 것이 딱 하나가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이 혼자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서로 돕고 살아갈 수 있는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부관계만을 의미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록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갈 때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시작된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에 관하여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은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더 많은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를 사용하여 맺는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멋진 전망을 가진 넓고 큰 집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집이 아니라 그 집에 함께 사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더 많은 돈이 또는 더 큰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번 돈이나 성공을 가치 있고 행복하게 쓸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교우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이었던 김한길씨가 이어령 선생님의 딸 이민아씨와 결혼 생활 5년 만에 이혼하고 쓴 눈뜨면 없어라라는 책의 한 부분입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아내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 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어째든, 미국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말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화려하고 멋진 교회당 건물이 신앙생활을 복 되게 만들지 않습니다.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이나 교회 시스템이 교인들을 복되게 만드는 것 또한 아닙니다. 교인들을 정말로 복되게 만드는 것은 크고 멋진 교회당 건물이나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이왕이면 아름다운 집, 부족함이 없는 돈, 좋은 교회당 건물이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지 이것이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 사랑하는 관계가 항상 먼저입니다. 좋은 관계가 있고 난 다음에 거기에 좋은 집과, 넉넉한 돈, 좋은 건물이 있으면 좋은 것이지 관계가 망가지고 나면 좋은 집, 넉넉한 돈, 좋은 건물은 오히려 시험거리가 됩니다. 이 순서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많은 경우의 불행은 인생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라고는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복이 되기보다는 가장 많은 상처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많은 고통이 있지만 아마도 인간관계의 갈등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맺는 관계를 이용하고 사기치고 배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마치 성공의 처세술로 여기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늘 상처를 원인이 되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에 가기를 싫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물론 일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직장상사나 직장동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일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에 학교에 가지 싫어합니다. 물론 공부하는 게 힘들고 재미없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선생님과의 관계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교회 가기 싫어하는 이유 역시 교우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로 개를 키우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개는 동물 중에서 사람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동물입니다. 개는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없습니다. 개 때문에 주인이 상처받을 일은 기르는 개가 죽는 때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개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남자들이 더 그렇다고 합니다. 요즘은 아빠가 일 갔다 집에 와도 아무도 달려 나와 반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르는 개는 항상 달려와서는 주인을 반겨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늘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가 두려워 더 이상 누구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없으면 더 이상 상처받고 고통당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처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사람으로 인해 받는 기쁨과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8장부터 20장까지를 보게 되면 사울이 여섯 번에 걸쳐 다윗을 죽이려 한 일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세 번은 창을 던져서 죽이려 했고, 두 번은 결혼을 미끼로 하여 다윗을 블레셋과의 전쟁터로 내 보냈고, 한 번은 암살단을 보냈습니다. 여섯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대대적으로 병력을 동원해서 다윗을 없애기로 작정합니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 다윗을 탈출시키십니다.

 

이처럼 사무엘상 18장에서 20장까지 성경의 기록은 사울 왕의 다윗에 대한 증오와 살인의 음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악랄한 살인 음모가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비범한 우정 이야기도 함께 섞여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살기와 비열함, 그리고 증오를 겪는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요나단과의 우정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우정을 통해 그가 경험해야 했던 적대감을 치유하게 하시고 극복하게 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사기치고 배신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늘 상처를 원인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을 통해 받은 모든 상처를 요나단을 통해 치유하시는 것처럼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를 사람을 통해 치유하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고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하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실 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교회 때문에 상처를 입고 낙심한 사람을 좋은 교회를 만나게 하셔서 그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십니다. 목사나 교인 때문에 상처를 입고 낙심한 사람은 좋은 목사나 성도를 만나게 하심으로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게 하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아무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고 어렵다 해도 결국 하나님의 주신 우리 이웃이 얼마나 귀한 축복임을 발견하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위대한 축복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좋은 교우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으로 세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비극과 불신을 초월하게 하십니다. 독일의 철학가 에센 바흐는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관계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아래로 내려진 수직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풍성케 하는 것은 분명 기도와 금식 또는 찬양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음을 여기까지만 생각하거나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셔야 할 사실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진 사람은 수평적 관계에서도 반드시 회복이 나타납니다. 수평적 관계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풍성케 하는 것은 친절, 섬김, 나눔, 용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수직적 관계는 잘되는 데 수평적 관계는 늘 문제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수직적 관계에는 관심이 많은데 수평적 관계는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관계만 영성이라 생각하지 수평적 관계를 영성과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를 보면 성령 충만 할 때 성도들 간의 마음과 마음이 열리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이웃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까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던 그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은 큰 소리로 찬양만 한다고, 기도만 한다고, 금식만 한다고, 성경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수직적 영성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수직적 영성은 반드시 수평적 영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수평적 영성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휼, 공감, 나눔, 배려, 친절, 격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직적 영성은 반드시 수평적 영성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앙은 절대로 수직적 관계로만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핵심은 십계명입니다.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5계명부터 10계명은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핵심 신학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묻는 서기관의 질문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둘은 결코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이것이 신약성경의 핵심 신학입니다.

 

12:29-31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안과 밖입니다. 원인과 결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려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다닌 지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해도 사람을 사랑하기는커녕 늘 사람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싫어한다면 이런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냐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대접해 주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에 대한 인간의 깨달음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공이라는 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선생님! 우리가 평생 동안 실천할 도리를 한마디로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것이 바로 일생을 살아갈 삶의 지침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에게 괴로운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교훈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유대교 랍비였던 힌헬이라는 랍비(스승)네 자신에게 싫은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요, 나머지는 해설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제자들과 후대에 남기셨습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관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말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에 적용되어야 하는 황금률(Golden Rul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황금률이라 불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인간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한다면 살아가며 반드시 실천하며 적용해야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신앙생활 함에 있어서 예배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교회 봉사 잘하고, 헌금도 잘 하고 이런 것들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 때문에 자기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열심히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는 예배나 기도나 성경공부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금식하고 예배드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곧 그 사람의 영성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람이 축복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어떤 사람보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는 은혜와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756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90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82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22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22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18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17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109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15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34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308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33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517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50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95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