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개혁과 갱신23-부요하지만 가난한 교회
[ 첨부파일 일괄 다운로드 ] [ 첨부파일 3개 ]
교회개혁과 갱신23.mp3

부요하지만 가난한 교회

요한계시록 3:14-22

 

교회개혁과 갱신 2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을 부요하지만 가난한 교회라는 제목으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반복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라오디게아 교회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향한 말씀이라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교회가 끝까지 지켜야 할 신앙은 무엇이며, 회복해야 할 신앙은 무엇이며, 반드시 고쳐야 할 신앙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주 살펴보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에 가까운 칭찬만 듣고 책망은 전혀 듣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었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에 칭찬을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하기에는 모든 점에서 너무나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능력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로마제국과 유대인들의 핍박 가운데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기독교 역사에 남을만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극찬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대단하고 거창하고 엄청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큰 능력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세상과 사람들이 놀랄만한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교회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우리교회에 미친 영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던 교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는 매우 큰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우리교회가 비록 대단하고 엄청난 일은 못할지라도 우리교회가 그리고 여러분들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그런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지난주 살펴보았던 빌라델비아 교회와는 정반대로 오늘 살펴볼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만 듣고 칭찬은 하나도 듣지 못했던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처럼 크고 부요했던 교회였지만 예수님께 책망만 들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께 들었던 책망이 무엇이었습니까?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그저 미지근하여 예수님의 입에서 토하여 버린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부자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지만 자신들이 불쌍하고 비참한 처지라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16-17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왜 이런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가 처했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세 가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무역이 발달한 관계로 큰 은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보다 금이 많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양을 많이 키웠고 양털로 만든 최고급 의류 산업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유명한 의과 대학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든 안약은 당시 로마전역에서 인기 있는 매우 비싼 의약품이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은행, 최고급 의복, 최고의 안약은 라오디게아의 자랑스러운 3대 산업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산업으로 라오디게아는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서 부족할 것이 없었던 라오디게아에 유일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식수로 사용할 물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식수가 부족했던 라오디게아는 수로는 만들어 두 지역으로부터 물을 끌어왔다고 합니다. 하나는 북쪽에 있는 히에라볼리 지역에서 뜨거운 온천수를 끌어왔고, 다른 하나는 동남쪽에 위치한 골로새라는 지역에서 차가운 지하수를 끌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가 라오디게아 지역에 도달하면 미지근한 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골로새 지역에서 끌어온 차가운 지하수 역시 라오디게아 지역에 도달하면 뜨거운 날씨로 인해 미지근한 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이처럼 히에라볼리 지역에서 끌어온 뜨거운 온천수도, 골로새 지역에게 끌어온 차가운 지하수도 라오디게아 지역까지 오게 되면 미지근한 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두 지역에서 끌어온 물에는 지리적 특징으로 많은 석회가 녹아 있어서 미지근한 채로 물을 마시게 되면 도저히 비려서 마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물은 뜨겁게 해서 마시거나 차갑게 만들어야만 마실 수 있었지 미지근 채로 물을 마시게 되면 비릿한 맛 때문에 토해 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 토하여 버린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런 지역적 특징에 맞추어 책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입에서 토하여 버린다는 예수님의 책망은 라오디게아 지역을 특징을 통해 저들의 신앙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단순하게 뜨거운 신앙을 가지거나 차가운 신앙을 가지라는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차가운 신앙이나 뜨거운 신앙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아 토하여 버리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교회 본래의 모습에서 변질됐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오디게아 지역에 흘러 들어온 물이 원래부터 미지근하여 마시면 비린내가 나서 토할 수밖에 없는 못 먹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라오디게아 지역의 미지근한 물은 원래 히에라볼리 지역의 뜨거운 온천수거나 골로새 지역의 차가운 지하수였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온천수와 차가운 지하수가 라오디게아 지역에 와서는 미지근한 물이 되었고 석회질이 녹아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비린내 나는 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미지근하여 토해 버리겠다는 예수님의 책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변질되고 불순물이 섞여서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신의 교회에 대해 가장 크게 자랑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로 자랑하기를 자기들은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부자 교회였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나 교인들도 부요하여 모든 것에 부족한 것이 없는 부자 성도 부자 교회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나 교인이 자신의 믿음과 관련하여 자랑하는 것이 세상의 부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은 신앙에 있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라오디게아 교회가 변질시키고 불순물을 넣어버린 복음이 무엇입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가치와 목적을 세상에서는 누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되어 부족한 것이 없는 풍요로움 삶을 살 수 있다고 기독교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기독교 복음에 세상의 부와 풍요라는 불순물을 넣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라오디게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가르치는 변질된 복음, 불순물을 잔뜩 넣은 복음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갈수록 더욱 크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도무지 마실 수 없어 토해 버릴 수밖에 없는 쓸모없는 교회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인으로 삼았던 우상이 무엇입니까? 단연 돈(맘몬)이라는 신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대적하였던 우상은 바알입니다. 바알은 풍요와 쾌락의 우상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과 대적하였던 신은 맘몬입니다. 맘몬은 재물의 신입니다. 바알과 맘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거의 대부분의 우상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의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신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하나님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우상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이 하나님과 경쟁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우상이 된 이유는 모두 돈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돈이 정말 하나님과 비슷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 돈이 우리를 잘 살게 한다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이 돈을 하나님과 경쟁하는 우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돈이 가진 신적 능력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으니 둘 다 주인으로 삼으면 좋겠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단호하게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바알이나 맘몬을 선택하는 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바알이나 맘몬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돈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돈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도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교인이 그리고 교회가 자랑해야 할 믿음은 예수 믿고 부자가 되었다는 가짜 사이비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부자가 되고 성공했다는 믿음은 불순물이 가득하여 도무지 마실 수 없어 토해 내야 하는 가짜 사이비 믿음입니다. 교회가 자랑해야 할 믿음이 무엇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내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자랑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를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신들을 부자라고 자랑하시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하십니다. 비록 라오디게아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부요했는지 모르지만 저들의 영혼은, 저들의 영적인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심각한 가난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영적으로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음에도 자신들이 비참한 모습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돈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돈은 자신을 마치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을 마치 꽤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교회가 교인들이 가진 많은 돈은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얻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역설적이지만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은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유했고 그것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유함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부유함 때문에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부유함 때문에 간절함을 잃었습니다. 부유함 때문에 영혼과 마음과 삶이 미지근해졌습니다. 부유함 때문에 진리와 정의에 대해 둔감해졌습니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배가 불렀는데 어떻게 의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배가 불렀는데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이미 배가 불렀는데 어떻게 미지근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오디게아교회는 부유함 때문에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토해내고 싶을 만큼 혐오스럽고 역겨운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정작 그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유함에 취한 채 자기들이 가난하고 가련하고 곤고하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는 것입니다. 금와 비싼 옷과 안약은 이 세 가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교인들을 부자가 되게 만든 것입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는 것은 불순물이 제거된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순전한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믿음은 부요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가운데 신앙은 성장하고 강해집니다. 성도는 불로 연단한 금 같은 믿음으로 자기영혼을 부요하게 해야 합니다.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비록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비싸고 화려한 옷으로 육신을 그럴듯하게 가렸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의 영적인 모습은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상징하는 흰 옷으로 영적인 수치를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는 말씀은 비록 자신들이 부자라고 자랑하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비참한 자신들의 영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영혼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가난은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한 인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가난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필요를 넘어서는 부유함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부유함 때문에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옷을 입지 않은 교회, 하나님의 눈을 뜨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토해내고 싶을 만큼 혐오스럽고 역겨운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자신들이 가진 부 때문에 자신들의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유함에 취한 채 자기들이 가난하고 가련하고 곤고하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들에게는 부요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부요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잘 믿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며 변질이며 불순물로 가득한 가짜 사이비 신앙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는 교훈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저들이 가진 부요함 때문에 오히려 가장 비참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은 수치로운 인생과 영혼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부유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여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신앙의 위험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사도 바울의 경고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결코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742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88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80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21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21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17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16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108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13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31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305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31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516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46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93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