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 나라
창세기 1:26-28
하나님의 형상 시리즈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은 사람이란 어떠한 존재이며, 살아가면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과 신앙 그리고 교회에 주는 영적 교훈과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창세기 1장 기록된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패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면 세상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창조 이야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1:1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그런데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에 대해서는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다르게 지으셨습니까?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다고 창세기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창1: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a)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 말씀은 사람이 자기 맘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다스려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해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물론 전능한 신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힘과 권세를 부여받아 신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한다는 믿음은 유대교나 기독교만의 고유한 신앙은 아닙니다. 신으로부터 권세를 물려받아 신을 대신해 통치한다는 믿음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보편적인 인류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고대의 왕들은 자기 자신을 신의 아들 또는 신의 대리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 거대한 왕의 형상을 세움으로 자신의 통치권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가 거대한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를 만든 것도 이집트의 왕 파라오를 태양의 아들로 숭배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제국 역시 지역마다 황제의 동상을 세우고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는 동전에 황제의 얼굴을 그려넣은 것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황제를 신의 아들 또는 신의 대리자라로 숭배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김일성 동상을 남한이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이유 역시 자신들의 지도자를 마치 신의 대리자로 여기는 고대 신앙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고대 신화에도 고주몽 박혁거세 김수로와 같은 왕들은 신이 보낸 알에게 태어나서 나라를 세우고 이끌었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이것을 난생신화라고 하는데 난생신화는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나라를 세운 왕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화입니다. 이런 고대의 신화는 왕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알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신이 보낸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통치는 곧 신의 통치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신이 보낸 왕에게 무조건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신의 보낸 왕, 신의 대리자인 왕, 신의 아들인 왕을 잘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곧 자신들에게 왕을 세워주신 신을 잘 섬기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일부 목사들이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을 마치 하나님의 사자나 하나님의 대리자라며 자신을 잘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 교인들을 기만합니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종교 지도자를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이 보낸 사람으로 주장하거나 여기는 것은 일종의 제왕신화입니다. 제왕신화란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권세와 힘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능력이 아니라 신의 선택을 받은 소수의 몇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제한적이며 특별한 권세이며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권세를 잡은 자들이 자기들만 특별하다며 백성들을 세뇌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이데올로기입니다.
물론 창세기 역시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라고 점에서 세상의 왕은 신의 대리자나 아들이라는 세상의 신화들과 얼핏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말씀이 세상의 신화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세상의 신화들은 비범한 탄생 신화를 지닌 극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지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든 사람을 지으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은 사람에게는 귀천이 있고 높고 낮음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에게는 그 어떤 귀천도 없으며 높고 낮음도 결코 있을 수 없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악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든 사람을 창조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은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 다스리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권세에게도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도록 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를 다스리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며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나 자신의 신앙을 송두리째 목사에게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직무를 태만하며 유기하는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야 말로 최고의 신본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공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왕의 통치는 왕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왕의 통치는 반드시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적’인 통치여야 합니다. 왕은 모든 백성들을 위한 ‘공동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씀은 단순히 사람의 존귀하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뜻 즉 ‘공공을 위한 선’이 나타나야 합니다.
롬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만약 왕이 자기 신분과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면, 자신이 가진 권세를 이용하여 오로지 자기 욕심만 채우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통치 행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이든, 세상 역사에 기록된 왕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왕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해 왕의 자라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사사로운 부귀영화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은 더 이상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창세기의 선포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행위가 필연적으로 공공의 선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왕의 직무가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며, 이 사명과 책임이 우리의 인생을 존엄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 왕의 모습에 휩쓸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 만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은 다른 피조물과 다른 사람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낮은 자세로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어가기 위함이심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다스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 민족들을 구출하셔서 저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나라를 만들게 하셨던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이 타락하고 죄를 지어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타락하고 죄를 지어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데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시고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만드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확장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만 생각합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까? 그럼 영원히 죽지 않는 지옥도 하나님 나라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도 없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파라다이스가 하나님 나라입니까?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도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거긴 그냥 극락이거나 파라다이스이지 결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통해 발견하는 아니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 나라일까요? 세상 나라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는 저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세상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하나님 나라라고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맨 처음 만드신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고 그냥 세상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더 이상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의 욕심만 이루어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사람의 욕심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어떻게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앞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과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 받았으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제멋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과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신 이유는 제멋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이 제멋대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시길 원하셨다면 굳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실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1장에서 우리가 반드시 발견하고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 거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곳이 또는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느냐 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곳 그곳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과 다스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그곳이 아무리 파라다이스라고 할지라도 그곳은 지옥이지 결코 천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는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오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까? 앞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 권세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막1: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오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인들은 가는 하나님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는 하나님 나라 보다 오는 하나님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모두 빨리 죽어 하나님 나라에 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 모두가 새로운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 욕심과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내 삶과 신앙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을 오는 하나님 나라 또는 통치(다스림)로서의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가는 하나님 나라보다 오는 하나님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고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은 결코 현실도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는 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루 빨리 죽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아닙니다. 비록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삶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를 결정하는 것 역시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삶을 사느냐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를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사람이 자기 맘대로 자기 욕심대로 함부로 다스려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사람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결코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믿어서는 결코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땅을 살면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