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강해20-새로운 세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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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0-새로운 세상의 시작.mp3

새로운 세상의 시작

창세기 7:1-8:19

 

오늘은 창세기 71절부터 819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는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셨던 세상에 가득한 사람들의 죄악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연합하여 만든 네피림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세상이었습니다. 네피림이 세상을 지배하며 저들이 만들어 내는 죄악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다고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시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모조리 파괴하여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는 스스로 파괴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거대한 방주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도무지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주 만드는 일을 완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만드는 것을 완성하자 마침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7장과 8장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홍수 심판의 과정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7장과 8장을 읽어보면 굳이 그렇게 자세하게 홍수 심판의 과정을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날짜와 숫자들을 이용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짐승들이 방주에 탔고 40일간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40일간 내리던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른 다음에 노아가 그 가족들 그리고 짐승들이 방주에서 나왔다. 뭐 이런 식으로 기록한다고 해도 충분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여러 날짜와 숫자를 이용하여 그야말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자세하고 기록하고 있는 홍수심판의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간 다음 7일이 지난 다음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40일 밤낮으로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불어난 물로 인해 150일 동안이나 땅을 뒤덮었습니다. 이후 150일 동안 물이 빠졌고 40일을 더 기다린 다음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 보내서 상황을 살폈지만 물 빠진 땅을 찾지 못한 까마귀와 비둘기가 방주로 되돌아왔습니다. 7일이 지난 후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올리브 잎을 물로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7일을 더 기다려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더 이상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노아는 방주 문을 열어 바깥을 보자 땅바닥이 말라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심으로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방주에 탔던 모든 짐승들이 나오므로 심판이 끝이 났습니다.


7:10 이레가 지나서, 홍수가 땅을 뒤덮었다.

7:17 땅 위에서는, 홍수가 사십 일 동안 계속되었다.

7:24 물이 불어나서, 백오십 일 동안이나 땅을 뒤덮었다.

8:3 땅에서 물이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서 백오십 일이 지나니 물이 많이 빠졌다.

8:6 사십 일이 지나서,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서

8:10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그 비둘기를 다시 방주에서 내보냈다.

8:12 노아는 다시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창세기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날짜를 다 합치면 이런 식이 되고 7+40+150+(150)+40+7+7, 총 날수는 401일이 됩니다. 모두 합쳐 1년이 넘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것은 홍수 심판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계산하기 위함이 아니라 숫자가 주는 상징과 의미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7이나 12, 또는 40과 같은 숫자는 실제의 숫자를 나타내기 보다는 특별한 상징으로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홍수와 관련하여 7, 40, 150일과 같은 날짜들은 실제 정확한 날짜로 생각하기보다는 숫자가 가진 상징을 통해 창세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세기가 기록한 여러 날 수 가운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미리 알려주신 것은 날 수는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방주에 들어가고 7일이 지나면,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7일과 40일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알려주신 유일한 날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7일과 40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숫자입니다.


7: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다 만들었지만 비가 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앞으로 7일 후에는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비를 내릴 것이니 방주에 들어가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비가 내릴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방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에게 비가 내릴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7일 후에 큰 비가 내릴 것이니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하늘에는 비가 내릴 그 어떤 기미도 없는 상황에서 방주에 들어가서 7일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어마어마한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만큼이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작은 비라도 내리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 당장이라도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면 방주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하늘 그 어디에서 비가 내릴 기미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하늘에는 비가 내릴 그 어떤 기미도 없는 상황에서 장차 있을 홍수를 피해 방주에 들어가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수백 년에 걸쳐 거대한 방주를 만들 때보다 더 큰 비웃음과 조롱을 참아야 했을 것입니다.


홍수가 있을 기미도 있기 훨씬 전에 방주에 들어가서는 7일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그대로 순종할 수 있는가를 시험받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가를 시험받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순종하였던 것처럼 도무지 비라고는 내릴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방주에 들어가 7일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노아의 믿음, 이 믿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시작할 사람으로 노아를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노아가 살던 시대는 네피림이 활약하던 시대로 뛰어난 용사와 영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 명성을 떨치는 유명한 이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뛰어난 힘과 재능과 물질로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강함을 칭송했습니다. 용사라 불렸던 네피림에 비해 노아는 유명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네피림이 아니라 노아를 택하셨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방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성을 떨치던 네피림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노아를 선택하고 그를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구원을 신앙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다면 용사라 불리던 네피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노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유능한 자, 힘 있는 자, 권세 있는 자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홍수가 시작되기 전, 방주에 들어가 홍수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7일간의 시간은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의 시간이었다면, 방주에 타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방주에 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며 은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 올랐지만 당장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7일 동안 홍수 심판을 미루심으로 방주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방주에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 7일의 시간은 비가 오지도 않는데 방주에 오른 노아를 실컷 비웃고 조롱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당장이라도 노아를 비웃고 조롱하는 일을 중단하고 방주에 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노아에게 7일은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방주에 타지 않은 사람들에게 7일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일이라는 기다림이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신 그대로 40일간 밤낮으로의 비를 내리셨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늘 시련과 연단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노아가 40일의 홍수를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 것처럼, 모세는 시내 산에서 사십일을 지내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이집트 제국에서 해방된 히브리 노예들은 모세와 함께 40년을 광야생활 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 역시 40일간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 역시 40일 동안 광야 금식을 통과하신 후에 비로소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40이라는 시련과 연단은 노아나 모세 또는 이스라엘 백성, 또는 엘리야나 예수님에게만 한정된 시련이란 연단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모든 믿음의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시련과 연단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시련과 연단을 피하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40일 간 밤낮으로 내리는 비가 마침내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겪었던 40일간의 지독한 홍수로 모든 시련의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밤낮으로 내리는 비는 멈추었지만 물은 계속해서 불어났습니다. 창세기는 그 기간을 무려 150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일의 홍수가 끝났다고 노아가 겪어야 할 모든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40일의 홍수보다 더 길고 더 힘든 150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150일은 노아가 겪은 40일 홍수의 4배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이것은 노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40일을 시내 광야에서 지내며 마침내 십계명을 받았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모세의 앞길엔 더 힘든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에서 연단 받았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꽃길만 걸었습니까? 아니오. 더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40일로 상징되는 인생의 크나큰 시련이나 위기를 넘겼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를 넘겼지만 시련을 여전히 계속됩니다. 40일은 시련의 끝이 아니라, 장차 겪을 더 큰 시련을 견디고 이기는 힘을 기르는 시간입니다.


당장에 닥친 큰 위기를 넘겼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40일간 밤낮으로 내리는 비보다 비가 그쳤음에도 150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불어나는 물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큰 시련이나 고비를 잘 견디어 내고는 오히려 큰 시련 뒤에 찾아오는 우울증이나 허무함에 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40일간 밤낮으로 내리던 비가 그쳤습니다. 비가 그치면 모든 시련이나 어려움이 끝나고 이젠 꽃길만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큰 시련이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당장 꽃길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모든 시련이나 위기 다음에는 반드시 후유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장의 큰 시련이나 위기를 견디거나 극복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긴 시간을 후유증으로 고생해야 합니다. 이것까지 잘 견디어 내야 비로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고되지도 않았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150일간 계속해서 불어나는 물을 보면서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 인생의 승패가 갈라집니다. 물이 불어나는 기세에 압도당해 두려워 떨면 결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물이 빠지기 전에 스스로 물속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아 도무지 내가 지나는 터널의 끝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지만 모든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출구가 있습니다. 150일 동안 불어나는 물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결코 노아와 방주에 있던 동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의 7일의 기다림, 40일간 밤낮으로 계속되는 비, 150일간 불어나는 물을 잘 견디어 내자 비로소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어 드디어 물을 빠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몰아치니 그 엄청났던 홍수와 물의 범람도 어쩌지 못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8:1 그 때에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돌아보실 생각을 하시고,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산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150일간 불어났던 물이 150일간에 걸쳐 빠지고는 마침내 산봉우리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보이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대홍수 40일이 장차 있을 시련과 위기를 준비하고 훈련하는 기간이었다면, 물이 빠지고 산봉우리를 보며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40일의 시간은 방주에서 나온 이후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40일의 시간은 아마도 40일간 밤낮으로 내렸던 시간보다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급한 마음에 서두른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40일을 채우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8:5 물은 열째 달이 될 때까지 줄곧 줄어들어서 그 달, b) 열째 달 초하루에는 산봉우리들이 드러났다


산봉우리를 보고도 40일을 더 기다려 까마귀와 비둘기를 보냈지만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방주 주변을 날아다녔고 비둘기는 이내 방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노아는 또 다시 7일의 시간을 더 가집니다. 홍수가 일어나기 전 7일이 심판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었다면, 홍수 이후의 7일은 방주에서 나가기 전 새로운 세상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일이 지나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땅이 드러나고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방주의 시간은 마무리 되어갑니다. 이제 방주에서 언제 나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노아는 또 다시 7일을 더 기다린 다음에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날려 보낸 비둘기가 더 이상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방주는 그곳에서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두 번째 7일의 기다림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12 노아는 다시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비둘기가 그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젠 모든 심판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드디어 방주에서 나와 세상으로 나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 문을 열고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방주에서 데리고 있었던 모든 동물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아가 가족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방주의 문을 닫아주셨습니다. 하지만 방주에서 나올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방주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고 노아로 하여금 문을 열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를 눈앞에 둔 방주의 문을 친히 닫아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저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반면에 노아로 하여금 직접 방주의 문을 열고 가족과 동물들을 데리고 세상으로 나오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시작하라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7:16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살과 피를 지닌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의 수컷과 암컷이, 짝을 지어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노아가 들어가니, 주께서 몸소 문을 닫으셨다.


8:16-17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네가 데리고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물들,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서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데리고 나가거라.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면,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사람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방주의 문을 닫으시어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의 방주를 지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고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방주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와서 새로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책임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을 사람이 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자 불신앙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속한 일과 우리에게 속한 일을 제대로 분별할 줄 알아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노아와 같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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