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강해21-무지개 언약에 담긴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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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언약에 담긴 메타포

창세기 8:20-22, 9:8-17

 

오늘은 창세기 21번째 시간으로 함께 읽은 창세기 820-22절과 98-17절의 말씀을 가지고 무지개 언약에 담긴 메타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노아는 40일간 밤낮으로 내리는 홍수가 끝나고도 거의 일 년에 가까운 기다림 끝에 겨우 방주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방주에서 갓 나온 노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가족들과 방주에 함께 있었던 수많은 동물들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들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을 뒤로 미루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노아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뿐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 대부분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람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브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방법으로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쳐 주는 방법입니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이것은 지금도 명심해야 할 성경의 교훈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어려운 위기를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과 초점을 두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당장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만 모든 관심과 초점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당장의 해결책이나 당장의 이익만으로 살아 갈수 있을 만큼 그렇게 만만하거나 단순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당장의 해결이나 당장의 이익이 인생에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크고 심각한 인생의 위기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노아가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구별하여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당장의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무엇이 하나님께 옳고 그른가를 분별하려고 노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노아가 그러했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성경에서 복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악인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을까요? 아마도 노아는 다시는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짓밟고 죽이는 포악한 세상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혹여 인간이 또 다시 악해져서 똑같은 죄를 반복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자신이 겪었던 무서운 재앙과 심판이 또 다시 되풀이되는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마음으로 드리는 노아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악하다고 해도 또 다시 땅을 저주하고 심판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당장 자신에게 급한 일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피므로 당장의 이익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노아는 자신의 제사를 통해 후손들의 안전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8:21a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는 것을 땅이 있을 동안에는 영원히 씨를 부리는 때와 거둘 때가 있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으로 선포하십니다. 씨를 뿌리면 거둘 때가 있고, 추울 때가 있으면 더울 때가 있고, 낮이 지나면 밤이 되고 밤이 지나면 낮이 된다는 말씀이 얼핏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홍수 심판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황량한 세상으로 이제 막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위대한 희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도무지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를 뿌리면 거둘 날이 있고, 추울 때가 있으면 더울 때가 있고, 낮이 되며 밤이 계속된다는 말씀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약속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지겨워합니다. 뭔가 새롭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위대한 은총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사람과 땅을 없애는 멸하는 심판이 없을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한 순간에 파괴하고 멸망시킨 홍수 심판은 인간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비가 다시 내리기라도 한다면 또 다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사람과 땅을 심판하지 않을 것을 단순히 선포가 아닌 증표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증거로 보여주신 증표는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비가 온 다음에 햇빛이 날 때 공기 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햇빛이 통과하면서 생겨나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또는 홍수 심판에 대한 인류의 트라우마를 무지개라는 증표를 통해 극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 멸망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매년마다 홍수나 태풍으로 수많은 피해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수년마다 쓰나미라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고 쓰나미가 일어나면 또 다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지진이나 가뭄 또는 산불과 같은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시작된 것처럼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 거짓 종말론을 가르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부 목사나 신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인류가 겪은 홍수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홍수 심판의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에 의해 생겨나는 불안이며 두려움입니다.


창세기 9장은 언약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사람과 땅을 모두 멸하는 홍수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강조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언약은 단순히 말로만 맺은 것이 아니라 무지개라는 언약의 증거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9장에 나오는 언약을 무지개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려 7번이나 반복하신 무지개 언약은 단순히 단지 물로 인한 심판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무지개 언약의 숨겨진 진짜 의미는 다시는 그 어떤 자연 재해를 통해서라도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추위와 더위가,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의 숨겨진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합니다.


9:9-10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9: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9: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물로 사람과 땅을 멸하시고는 다시는 물로 사람과 짐승과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7번이나 언약하신 것일까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멸망해 버린 세상을 보시고는 마음이 아프고 참담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일까요? 아니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마음이 아프셨다고 기록하였지, 홍수 심판으로 파괴되고 멸망해 버린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마음 아프셨다고는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물로 사람과 땅을 멸하셨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물로 사람과 땅을 멸하셨을까요?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오. 본질적으로 홍수 심판은 세상을 파괴하고 멸망시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은 파괴의 신이 아니라 창조의 신이며, 멸망의 신이 아니라 구원의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 이후에는 인간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기대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물든 모든 생명을 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홍수 이후에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홍수 이전부터 사람이 그러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면 사람은 이내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전적인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과 땅을 모두 멸하셨지만, 머지않아 인간은 또 다시 홍수 심판 이전과 똑같은 타락과 부패를 반복하실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땅을 모두 멸하시는 홍수 심판을 내리시고는 다시는 물로 사람과 땅을 멸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언약하십니다. 차라리 또 다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더 큰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 훨씬 나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양 빠지게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제시하면서까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것일까요? 우선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은 완전히 멸망당해야 마땅한 세상이라는 걸 분명히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홍수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쓸어버림을 당한다 해도 그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세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본래부터 더럽고 추악하고 포악한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타락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악한 세상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악한 세상은 지금 당장 완전히 멸망한다고 해도 아무런 후회도 없고 차라리 더 나음을 가르쳐 주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조금도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는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다시는 물로 사람과 땅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약하신 것일까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과 땅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사람과 땅을 물로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노아의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어려서부터 악합니다. 홍수 이후의 세상도 홍수 이전의 세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홍수 이후에도 홍수 이전처럼 멸망당해 마땅한 세상이 계속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향해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과 땅을 모두 멸하는 방식으로는 사람과 세상이 새롭게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이 직접 세운 언약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들과 세운 언약입니다. 더욱이 이 언약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반드시 기억하시겠다고 하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악으로 가득한, 멸망 받아 마땅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더 이상 심판의 진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세상은 멸망당해 마땅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불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되고 회복될 뿐이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사람과 땅을 멸하는 것으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지 않겠다고 직접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지개 언약에 담겨진 메타포입니다.


9: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물론 세상은 지금도 쉬지 않고 멸망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죄악이 더 큰 죄악을 낳고, 욕망이 더 큰 욕망을 부르고,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고, 힘으로 약한 자를 억압하고,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생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완전히 폭파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환경 오염도 심각한 지경입니다. 강력한 쓰나미, 극심한 가뭄, 홍수, 전쟁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 같은 징조들이 여기 저기 차고 넘칩니다. 지구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들도 끊임없이 들립니다. 분명 세상은 지금도 파멸과 멸망을 향해서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짓을 보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도대체 왜 안 망하나 신기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짓을 보면 세상은 백번도 더 망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세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으면서 세상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고 세상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은 사람은 맹렬하게 멸망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면서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시며 세상을 지키시기에 지금까지 세상이 망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모든 생명은 무지개 언약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 언약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을 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무지개 언약을 믿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세상의 멸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하실 세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세상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열심히 세상을 잘 경영하기 때문에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멸망당해 마땅한 세상, 심판 받아 마땅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시므로 세상은 여전히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홍수 사건과 무지개 언약 속에는 두 가지 역설적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홍수 심판은 이 세상은 멸망당해 마땅한 세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면, 무지개 언약은 세상을 파괴하고 멸하는 방식으로는 세상을 변하게 하지도 새롭게 할 수도 없기에 파괴와 멸망으로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심판, 새로운 방식의 구원을 암시합니다.


히브리어로 무지개는 케쉐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쟁의 무기인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무지개는 둥굴게 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당긴 활시위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던 하늘을 향해 화살이 당겨져 있는 활의 모습과 같은 무지개는 인간의 반역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시겠다는 뜻입니다. 무지개 언약이 암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파괴와 멸망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과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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