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11:1-9
창세기 강해 2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1장 1-9절의 말씀을 가지고 “흩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말씀은 흔히 바벨탑 사건으로 알려진 매우 유명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매우 잘못 알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성경의 이야기일수록 잘못 알고 있는 말씀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읽은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탑 이야기로만 알고 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로 알려진 이 이야기 역시 이전에 살펴보았던 창세기의 여러 이야기들처럼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한 메타포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복하여 설명하지만 성경은 인간 역사에 대한 팩트를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해석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바르게 읽는 것은 역사의 팩트를 확인하고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세상은 얼마가지 않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불순종하는 것이 악이었습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에덴동산 한 가운데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진 사람에게 선과 악은 무엇으로 변했습니까? 자신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고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손해가 되는 것을 악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선과 악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타락은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삼을 대 일어나게 되는 일을 보여주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인과 그의 후손들을 하나님께 쫓겨나 에덴의 동쪽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얻은 셋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렸던 셋의 후손들은 서로 연합하더니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 시대가 되었을 때 세상은 죄로 가득 찼습니다. 가인의 후손이건 셋의 후손이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찬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창6:11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인간 세상의 타락을 그래도 내버려둘 수 없으셨습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대 최고의 의인이라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시고는 그의 가족들과 땅과 공중의 짐승들을 구원하십니다. 40일간 밤낮으로 계속되었던 홍수 심판이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홍수 심판 이전의 세상을 아담과 하와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홍수 심판 이후의 세상은 노아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 이후 새롭게 시작한 노아의 후손들이 만들어 간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세상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세 아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맨 처음 사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맨 처음 사람에게 주신 명령과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세 아들에게 주신 명령이 같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무엇입니까? 홍수심판은 단순히 타락한 세상과 사람을 파괴하고 멸망시킨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홍수심판의 목적은 파괴와 멸망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제2창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타락한 세상과 사람을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의 유일한 목적은 타락한 세상에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7-28a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세 아들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세상은 언어가 하나였으며 말이 하나였습니다. 땅의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은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그중에는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손 가운데 니므롯이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함의 후손 니므롯에 대해 소개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용사라고 했습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가다가 시날 평지에 이르자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는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했습니다. 시날(메소포타미아)은 두 강의 사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실제로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있던 평지였습니다. 두 강 사이에 펼쳐진 시날 평지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로 인해 사람들이 살기에 그야말로 최고의 위치였습니다.
창10:8,10 구스는 또 니므롯을 낳았다.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이다.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 지방 안에 있는 바벨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이다.
창11:2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니므롯과 그가 이끄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다고 시날 평지라는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에 이 보다 더 좋은 곳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좋은 땅을 발견하고서 거기서 머물러 산 것까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날 평지에 머물게 된 사람들은 그곳에 도시를 세우고 도시 한 가운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으려는 탑을 쌓게 됩니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높은 탑을 쌓기 위해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사용했고, 흙 대신에 방수가 되는 역청으로 벽돌을 쌓아올렸습니다. 벽돌과 역청의 사용으로 거대한 도시와 엄청난 높이의 탑을 쌓을 수 있는 그야말로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창11: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럼 이들이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 한 가운데 하늘에 닿는 높은 탑을 쌓으려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들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고, 더 이상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시날 평지에 머물러 도시를 만들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만드는 니므롯과 그의 후손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세상으로 흩어져 온 땅에 충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니므롯과 그의 후손들은 세상으로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탑을 쌓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높은 탑을 쌓은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날 평지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 한 가운데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인간의 탐욕을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창11: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시날 평지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사건의 반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온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노아의 후손들은 또 다시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해서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후손 니므롯과 그의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해서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도시 한 가운데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것입니다. 거대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온 땅으로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사람들을 모아 거대한 제국을 만드는 것을 상징하는 메타포라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 것은 거대한 홍수에도 결코 잠기지 않는 안전한 곳을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무기력하게 만들겠다는 것을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의 심판을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저들의 모습을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저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려고 들 것임을 아셨습니다. 저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무엇이라고 하려고 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도무지 못할 것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저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네피림의 시대처럼 또 다시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찬 무법천지의 세상을 만들 것임을 아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거대한 제국, 강력한 제국을 만들려는 저들의 탐욕을 중단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창11:6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시날 평지에서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도시 한 가운데 하늘에 닿는 탑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사람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지금까지 하나였던 저들의 말을 뒤섞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들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들에게 하나의 언어 하나의 말을 있었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람들끼리 소통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였던 언어와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뒤섞으시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나쁜 일에 하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대한 도시를 만드는 일을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탑 쌓는 일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저들이 중단한 것은 도시를 세우는 일을 중단한 것입니다.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11:8 주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거대한 도시를 짓고 제국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하나였던 말을 뒤섞으시고 사람들을 흩으신 것은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모든 하나님의 심판은 형벌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에게 주신 명령 역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명령과 똑같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흩어져 온 땅에 가득하기 보다는 함께 모여 도시를 만들고 탑을 쌓아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습니다. 실제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강력한 제국을 만들었던 나라들이 어떤 일을 했습니까? 제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 보다 약한 나라들과 그 나라의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더 크고 강력한 제국을 만들기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큰 탐욕을 위해 뭉친 사람들과 제국을 흩으십니다.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으셨다는 것은 제국의 붕괴를 의미하는 메타포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말을 뒤섞어서 저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지자 저들이 중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탑 만드는 일을 중단했다고 알고 있지만 저들이 중단한 것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 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말을 뒤섞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뒤섞었다는 말을 바랄이라고 합니다. 바랄에서 바벨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바벨은 바랄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혼란, 혼동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창11:9 주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언어와 말을 뒤섞으시고는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신 사건은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훗날 시날 평지 바벨이라는 지역에서는 수메르,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와 같은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이 연달아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니므롯의 거대 도시가 중단되고 흩어졌던 것처럼 그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못하고 결국은 모두 무너지고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 가운데 더 크고 강력한 제국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 보다 더 크고 강력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단체나 조직이 세상의 다른 단체나 조직보다 더 크고 힘 있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마저도 세상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교회를 만들기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들이 진짜로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대한 도시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들의 말을 섞어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사람을 흩으신 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온 땅으로 흩으셨을까요? 사람들은 늘 더 높은 세상만을 바라보며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더 높은 세상만 바라보며 살기 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이 사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획일적인 하나의 생각이나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생각과 주장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획일적인 세상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이 허용되는 세상이 사람들이 살기에 더 좋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섞으신 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불통하여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섞으신 것은 강력한 힘과 더 큰 권세를 위해 사람들을 획일적이고 오로지 하나의 생각으로만 통일하려는 인간의 방법을 중단시키신 것입니다. 얼핏 하나의 생각과 의견만이 존재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이나 교회가 대단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체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이나 교회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 조직이나 교회 지도자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에 앞장서게 됩니다. 비록 어수선해보일지라도 서로가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과 주장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이나 교회가 훨씬 더 건강하고 바른 조직이나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우리끼리 똘똘 뭉쳐 우리만 구원받아 우리만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으로 훈련받아 세상으로 잘 흩어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는 사람을 교회로 모으기만 할 줄 알지 세상으로 흩어지지 못하게 막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헌금을 모으기만 할 줄 알지 세상을 위해 흩어주지 못합니다. 그 결과 몇몇 대형교회와 목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욕보이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상으로 잘 흩어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흩어지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