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28-하나님의 언약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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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과 믿음

창세기 12:10-12:20

 

오늘부터 지난해 중단했던 창세기 강해를 계속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강해 28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계속되는 아브람의 이야기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옛날의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하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발견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가라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유는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그를 복이 근원이 되게 하여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12:1-2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었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단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심지어 들어본 적도 없는 미지의 땅 가나안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브람의 고향 갈대아 우르에게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무려 900마일이 넘는 엄청난 여정이었습니다. 지금이야 900마일이 별것 아닌 거리이지만 아브람이 살던 당시 900마일은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그 먼 길을 아브람이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언약만을 붙잡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만을 믿고 그 먼 길을 여행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했더니만 그 땅에 기근이 든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의 기근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기근이 든 것입니다. 이제 막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람으로서는 도무지 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적잖이 복잡했을 겁니다. 기근은 생존 문제입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아브람은 당장의 기근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땅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을 합니다.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은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몸 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다


여러분이 아브람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작정 하나님의 언약만을 믿고 가나안에서 기근을 참고 견디겠습니까, 아니면 생존할 수 있는 이집트로 잠시 피하겠습니까?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잠시 피난을 떠난 것을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합니다. 아브람이 비록 심각한 기근이 든 가나안 땅이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 주셨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많은 교인들이 너무나 쉽게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질병 문제도, 자녀들 문제도, 부부간의 문제도, 심지어 국가와 정치 문제도 믿음만 있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지, 믿음만 있으면 그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겪는 모든 문제를 믿음의 문제로만 해석해서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기도하기만 하면 자신이 겪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위험한 생각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이 없었기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든 것입니까? 아브람이 기도하지 않았기에 가나안 땅에 든 기근을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은 눈앞의 현실을 당장 바꾸어 버리는 신비한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눈앞의 기근을 해결하는 신통력도 아닙니다. 믿음은 밥도 아니고, 당장의 현실을 바꾸는 초능력도 아닙니다. 어쩌면 믿음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지극히 무기력해 보입니다. 물론 믿음이 마침내 세상을 이길 것을 믿지만, 당장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믿음은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다는 믿음이 당장의 현실에서 큰 힘을 나타내지 못합니까? 왜냐하면 믿음은 본질적으로 당장의 현실, 눈앞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당장의 현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미래의 일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돈 나와라 뚝딱하면 돈이 나오고, “밥 나와라 뚝딱하면 밥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당장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한다면 이것을 믿음이라고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 돈이고, 권력이고, 힘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뿌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서 비롯됩니다. 언약은 당장의 현실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돈으로 비유하자면 언약은 현찰이 아니라 어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 현찰이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어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야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어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믿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은 현찰이 아니라 어음이라는 진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를 얻으려고 합니다. 눈곱만한 증거라도 눈으로 보거나 확인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불안해합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믿음의 증거에 매달립니다. 하다못해 랄랄라 하는 가짜 방언이라도 받아야만 안심합니다. 왜 이렇게 믿음의 증거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믿음이 좋으면 언약이 곧바로 현실화된다는 잘못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눈앞의 현실이 되고, 믿음이 약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공수표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 안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람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믿음의 결단을 하고 순종했지만 그에게 닥친 눈앞의 현실은 심각한 기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기적처럼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이 만난 현실은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아브람과 모세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난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모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광야의 현실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전혀 다른 현실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현실입니다. 믿는 대로 당장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믿음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믿음이란 당장 이루어질 언약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역사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언약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참고 견디고 인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차이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그 차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에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브람도 모세도 언약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믿음으로 견뎌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훈련되고 자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진짜 문제는 심각한 기근이 든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잠시 피난을 간 것이 아닙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는 것은 믿음과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 누구라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브람의 진짜 문제는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 간 것이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집트 사람들이 미모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래를 자신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누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12:12-13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이집트의 왕 바로는 아브람이 누이라고 하는 사래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아브람에게 많은 양떼와 소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종과 낙타까지 선물하며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거짓말과 비겁함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거짓말로 인해 바로가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브람과 사래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아브람의 믿음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만 믿고 900마일이나 되는 여행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으로 왔습니다. 그야말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명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자신의 후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가진 믿음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존재가 현실의 위협 앞에서 한없이 유약한 것처럼, 인간의 믿음 역시 현실의 두려움 앞에서 한없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아내로 삼은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람의 믿음에 달려 있었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라도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후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람의 거짓말로 인해 산산조각 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집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로 하여금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보내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람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언약을 지켜내신 것입니다.


12:17 그러나 주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12:19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으냐? ,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성취는 우리의 믿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마치 자신들의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믿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눈앞의 현실이 되고, 믿음이 약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공수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오직 하나님만이 성취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인내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믿음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언약을 성취를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언약과 뜻이 성취되는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의 믿음이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질 수 있습니까? 많은 교인들이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신념과 확신을 더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이 성숙하고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내가 아무리 구원에 대해 확신을 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결코 자기 신념이나 내적 확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성숙하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생각과 신념의 테두리에 가두어 버리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더 성숙한 믿음, 더 깊이 있는 믿음을 위해선 자기 신념이나 확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만큼 영적으로 깊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만족하지 말고 자신이 모르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에 대해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는 자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끊임없이 묻는 것입니다. 모든 의심과 의문을 물리치고 확신에 확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묻고, 생활 속에서도 묻고, 기도하면서도 묻고, 자연을 관찰하면서도 묻고, 설교를 들으면서도 물어야 합니다. 묻는다는 것은 자기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묻는 다는 것은 자기의 신념과 확신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묻는 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묻는다는 것은 진리의 문을 열기 위해 거짓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예배나 기도나 설교나 묵상은 모두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묻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물음의 깊이만큼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깊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이 평생을 그토록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도 좀처럼 그 믿음이 성숙하거나 깊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맨날 믿습니까아멘만을 반복하며 자기 신념과 확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념과 확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자기 확신이나 신념으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오로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것을 통해서만 자라고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서는 자꾸만 물어야 합니다. 물음은 마음을 자라게 하고, 생각을 자라게 하고 마침내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성숙하고 깊이 있는 믿음만이 당장에 성취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풍성하여 날마다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고 성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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