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32-세상의 질서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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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서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창세기 14:11-16

 

창세기 강해 32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세상의 질서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전하려는 말씀은 창세기 강해 31번째 말씀으로 전했던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설교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는 설교입니다.


설교에 앞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 설교가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지만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불편하게 들렸다고 제가 의도적으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설교를 했다고 오해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도 의도적으로 듣는 분들이 불편하라고 설교를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설교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최대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물론 똑같은 설교를 듣고도 어떤 사람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불편하게만 듣기 이전에 목사가 왜 저런 설교를 하는지 그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신다면 제가 전하는 말씀이 불편하게 들리기 보다는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세기 14장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국가 간의 전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14장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북쪽 네 나라와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으로 한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의 전쟁은 세상의 전쟁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4장이 자세하게 기록한 북쪽 네 나라와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의 전쟁을 통해 세상의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남쪽의 다섯 나라가 멀리 있었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12년 동안 섬겨왔습니다. 가나안 남쪽의 다섯 나라가 엘람 왕을 섬겼던 이유는 오로지 엘람이라는 나라가 힘이 센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가 12년 동안 섬기는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도대체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는 왜 12년 동안 섬기던 엘람 왕에게 갑자기 반기를 들었습니까?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가 자신들의 힘으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14: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그러자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가나안 남쪽 다섯 나라들의 반란에 맞서기 위해 즉각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을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1년에 걸쳐 북쪽 지역 네 나라와 동맹을 맺고는 네 나라가 연합해서 가나안 땅을 침략했습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왜 북쪽 네 나라와 연합해서 가나안을 침략했을까요? 세상에서의 전쟁은 더 많은 군사, 더 성능 좋은 무기를 가진 더 힘 센 군대가 전쟁을 이긴다는 세상의 질서를 따른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나라들의 전쟁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여 세상 나라의 전쟁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세상의 질서와 원리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이 기록한 세상 나라의 전쟁을 통해 가르쳐 주는 세상의 질서와 원리가 무엇입니까? 세상은 늘 더 센 놈이 이기며, 이긴 놈이 늘 진 사람을 함부로 짓밟고 약탈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에서 이긴 북쪽 네 나라는 소돔과 고모라를 침략해서는 모든 재물과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갔습니다.


14:11-12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창세기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의 전쟁은 군사가 더 많은 군대가, 무기가 더 좋은 군대가, 물자가 더 많은 군대가 그렇지 못한 군대를 이깁니다. 이것을 흔히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고 합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부자가 가난한 자를, 권세를 가진 자가 권세 없는 자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약탈하는 약육강식의 현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엄중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남들보다 더 큰 힘, 더 큰 권세, 더 많은 재물에 목숨을 걸며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를 무작정 따르며 살기 이전에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약육강식의 질서가 과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약육강식의 질서와 원리로 유지되고 지속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동물들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힘 센 동물이 더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질서로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마치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육강식의 질서와 원리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아무리 힘이 세다고 무조건 약한 동물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코끼리가 힘이 센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오직 육식 동물만 정말 배고플 때만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의 세계를 무조건 약육강식의 세계라고도 할 수도 없습니다. 야생의 세계를 보면 살찐 소나 양이 있어도 살찐 사자나 호랑이는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동물의 세계는 결코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만약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가 동물의 세계를 지배한다면 동물의 세계에는 사자나 호랑이가 소나 말,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보다 더 많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넓은 초원을 가득 채운 동물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라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온순하고 연약한 동물들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주장이고 생각이지 결코 동물들의 세계에 나타나는 질서가 아닙니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필요와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사냥에 나서지 않습니다. 또한 사자나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사자나 호랑이에게 나 잡아먹으라고 자신을 맡기는 동물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아무리 약한 동물이라도 때론 자신보다 강한 동물들에게 저항합니다.


약육강식이라는 질서는 결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대적하려는 타락한 인간이 만든 세상의 질서가 약육강식입니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 만든 가장 악한 세상의 질서가 약육강식의 질서입니다.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을, 힘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고 빼앗는 것을 마치 당연한 자연의 질서처럼 여기기 위해 만든 가장 타락한 세상의 질서입니다.


자신이 아들처럼 여기는 조카 롯이 노예로 붙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사병 318명을 이끌고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 군대를 쫓아갔습니다. 아브람의 구출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남쪽 다섯 나라를 단숨에 격파한 북쪽 네 나라가 아브람의 기습공격에 패하고 맙니다. 세상 질서가 힘 센 놈이 항상 이기는 것 같지만 늘 예외는 있습니다. 가나안 전역을 돌며 가는 곳마다 가나안 모든 족속을 격파했던 북쪽 네 나라 연합군이 아브람이 이끄는 아주 적은 숫자의 군대에 패하고 만 것입니다.


14:14-15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아브람은 어떻게 해서 318명이라는 아주 적은 숫자의 사병으로 가나안 전역을 돌며 가는 곳마다 가나안 모든 족속을 격파한 북쪽 네 나라 연합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가 아브람의 군대에 패배한 것은 결코 저들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이 아브람 군대의 기습공격에 패배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는 곳마다 가나안 족속을 격파한 북쪽 네 나라의 군대에 맞서 싸우려는 가나안 족속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려는 타락한 인간이 만든 약육강식의 질서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계속해서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그 어떤 족속도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의 강력한 군대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은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도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 저항하며 싸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약육강식의 질서를 마치 당연한 세상의 질서처럼 여기며 인생의 목적을 가장 높은 자리, 가장 강한 자리에 올라서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기로 이름난 한국의 교육 현실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는 부모들의 비뚤어진 욕심을 풍자한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떤 부모는 집안에 커다란 피라미드를 가져다 놓고는 자식들에게 피라미드의 맨 윗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드라마는 분명 자식 사랑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부모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려는 비참한 현실을 풍자하고 비웃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를 본 수많은 부모들은 드라마가 비웃고 풍자하는 비뚤어진 부모들의 잘못된 열정에 오히려 감탄하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 나온 수백만원짜리 책상이 불티나게 팔리고, 드라마에서 비극적인 결말에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수억대의 입시 코디네이터들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드라마가 풍자한 상류사회의 비극적 결말은 약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속이기 위한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며 실제 현실은 피라미드와 같은 약육강식의 질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모일 때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교인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찬양하면서도 약할 때, 실패 할 때, 고난당할 때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로지 강할 때, 성공할 때, 형통할 때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깁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세상의 잘못된 질서와 맞서 싸우기 보다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진 수 천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잘못된 질서와 싸워야 할 교회마저 이러니 세상의 잘못된 질서가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318명이라는 적은 숫자의 군대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의 강력한 군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아브람은 저들이 힘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지레 겁먹고 저들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힘 센 놈이 항상 이긴다는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에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조카 롯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엘람 왕이 이끄는 막강한 군대와 싸우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작정한 전쟁은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질서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는 게 곧 전쟁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전쟁 같은 인생을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우기 전에 내가 싸워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보고 싸울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길 수 있거나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할 때만 싸우려고 합니다. 도무지 이길 가능성이 없으면 아예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을 사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이렇게만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세상이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나 세상 역시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조차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도무지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전쟁일지라도 반드시 싸워야 하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브람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약육강식이라는 잘못된 세상질서와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질서로 유지되고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밥이라도 먹고 살기 위해선 권력을 가진 자가, 돈 많은 재벌이나 부자가, 또는 힘이 센 사람이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벌어져도, 부당하게 약한 사람들을 괴롭혀도 모른척하거나 외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저항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행여 자식들이 이런 일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저항하려고 하면 부모들은 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라.”며 자녀들을 훈계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너 하나만으로는 교회를 바꿀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사람이 만든 약육강식이라는 악한 세상의 질서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 역사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줄 알면서도 약육강식이라는 부당한 세상 질서에 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저들이 던진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는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들이 던졌던 수많은 계란이 바위를 뒤덮었습니다.


도무지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에 도전하고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종교차별, 여성차별, 소수자 차별과 같은 세상의 악한 질서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나 만든 현상입니다.


북쪽 네 나라와 싸우려는 아브람의 목적은 저들과의 싸움에서 이겨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저들의 재물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저들에게 대적하려는 이유는 오로지 노예로 끌려가는 자신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로 잡혀가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그리고 저들이 약탈해간 모든 재물과 양식까지 되찾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에 대한 아브람의 도전이 힘 있는 자들에게 빼앗긴 것을 모두 회복하게 만든 것입니다.


14: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의 질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어 사는 존재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산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하고 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가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은 인생을 사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치열하고 바쁜 인생을 사는 데 왜 중요합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을 알아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붙잡고 살만큼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인생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길 원한다며 무엇이 중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사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세상 바람 부는 대로, 세상 물결이 치는 대로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면 살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살면 죽을 때까지 그냥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가 후회하며 죽을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또 다른 방식은 세상 바람에,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 바람을 거스르고 세상 물결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면 사사건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사람의 삶은 더욱 존귀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삶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물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오로지 여러분 각자에게 달린 사명이며 책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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