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33-이기면 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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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면 남 주자!

창세기 14:17-24

 

창세기 강해 3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함께 읽은 창세기 1417절로 24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기면 남 주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엘람 왕 그돌아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 연합군을 쫓아갔습니다. 아브람이 군대를 이끌고 북쪽 연합군을 쫓아간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아브람이 이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이끄는 군대는 너무나 적었고,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북쪽 네 나라 연합군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람이 이끄는 군대가 도무지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였던 전쟁에서 이긴 것입니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겠지만 특별히 고대 사회에서 전쟁은 전쟁에서 이긴 군대와 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한 군대와 나라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선 이유도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리품과 노예 때문이었습니다. 북쪽 네 나라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이긴 아브람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약탈해간 엄청난 재물과 잡아간 사람들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의 전리품이 된 것입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승리한 아브람을 맞이하기 위해 가나안 지역의 두 나라 왕이 왕의 골짜기라고 불리는 사웨 골짜기로 마중을 나갑니다.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사웨 골짜기까지 마중을 나온 가나안 지역 두 왕은 누구였습니까? 소돔 왕과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람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소돔 왕과 살렘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돔 왕은 엘람 왕이 이끄는 군대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소돔은 엘람 왕이 이끄는 군대에게 재물과 식량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까지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아마도 엘람 왕에게 반기를 일으킨 소돔 왕이 다시는 반기를 들지 못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소돔이 빼앗긴 재물뿐만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까지 모두 되찾아서는 돌아온다고 합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사웨 골짜기까지 마중을 나선 것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소돔 왕과 함께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나선 살렘 왕 멜기세덱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듭니다. 살렘 왕은 이번 전쟁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왕입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군대에 침략을 받은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을 영접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살렘 왕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람은 맞이하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창세기는 살렘 왕 멜기세덱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살렘 왕 멜기세덱의 등장은 창세기 14장의 말씀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우선 살렘이라는 지역에 대해서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살렘에 대해서 세겜이라는 주장과 예루살렘이라는 엇갈린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살렘을 훗날 이스라엘의 성전이 세워진 예루살렘이라는 주장이 대세이지만 살렘이 예루살렘의 옛날 지명이었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습니다. 살렘 왕이라는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 14장 이후로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에서는 시편 1104절 다윗의 시에 단 한 번 등장하고 신약성경에서는 히브리서에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편 110편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실 것인데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에 보내실 메시야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시편 1104절 다윗의 시를 근거로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차 오실 메시아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의 두 가지 조건을 도저히 충족할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무슨 지파 사람입니까? 유다지파 사람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유다지파는 결코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은 오직 누구만 될 수 있었습니까? 레위지파 중에서도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아론의 서열(반차)만이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율법의 규정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의 두 조건 다윗의 후손과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의 후손만 될 수 있는 제사장의 직분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도무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브람 시대에 등장하였던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율법이 규정한 레위지파의 서열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되셨다고 설명합니다.


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도무지 근본을 알 수 없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선포하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오경에 의하면 레위지파 가운데 오직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천 년을 지속하며 지켜온 도저히 흔들릴 수 없는 유대인들의 믿음이며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선포는 수천 년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어온 이스라엘의 율법 체계를 깨뜨리는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7:11-12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기존의 유대교 종교질서를 뿌리 채 흔드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아론의 후손이 아닌 다윗의 후손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레위지파 아론의 서열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제사장이 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사람이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는 베드로의 놀라운 선포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가 선포한 이 말씀은 기존의 종교질서를 완전히 깨뜨리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부나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탐욕스런 목사들 중에는 목사만이 구약의 제사장 직분을 물려받은 사람으로 목사에게만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의 기도가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제사장의 권한을 가진 목사의 기도가 성도의 기도보다 훨씬 더 세다고 합니다. 심지어 구약의 제사장과 같은 목사의 말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헛소리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론의 서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히브리서의 말씀과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베드로의 선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몰지각한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목사에게 축복권이 있으면 성도에게도 사람을 축복하는 축복권이 있습니다. 만약 목사에게 성도를 저주하는 권세가 있다고 한다면, 성도에게도 목사를 저주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전쟁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살렘 왕 멜기세덱이 맞이합니다. 아브람을 맞이한 멜기세덱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브람의 노고를 칭송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단숨에 가나안 지역 최고의 권력자로 떠 오른 아브람에게 자기 나라를 지켜줄 것을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람의 보호를 부탁해야 할 살렘 왕 멜기세덱은 오히려 아브람을 축복하며 대적을 물리치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면합니다.


대적을 물리치도록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살렘 왕 멜기세덱의 권면을 들은 아브람은 그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도무지 이길 수 없었던 기적과 같은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자신이 얻은 것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준 사건은 장차 이스라엘 역사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나는 십일조 제도의 기원이 됩니다.


전쟁의 승리로 아브람은 단숨에 가나안 지역 최고의 권력자로 떠올랐습니다. 아브람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쳤던 가나안 여러 족속들에게 엘람 왕에게 바치는 조공을 자기에게 바치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엘람 왕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는 자신이 얻은 것 가운데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조공을 받아야 할 살렘 왕에게 오히려 자신이 거둔 십분의 일을 준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준 십일조는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원리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세상은 남의 것마저도 내 것으로 만들려고 욕심을 내고 사기를 치고 심지어는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남을 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쳐 주는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내가 가지고 있다고 내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매우 중요한 영적 제도입니다.


일부 목사들 가운데 십일조에 대해 가르치기를 말라기 310절의 말씀을 이용해 십일조를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은 물론이고 모든 일에 형통하는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십일조를 하는데도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등록교인 13만 명이라는 한국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수시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암에 걸린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이런 식의 적용과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가 말씀하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말씀은 단지 성전에다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일조의 정신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십일조를 성전에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위선자들이라며 화가 있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율법이 가르치는 십일조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줄 때 땅을 나누어 주지 않고 성전을 위해 봉사하도록 명령하신 레위 지파의 생계를 돕기 위한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과부, 고아, 나그네들과 같은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사회 복지 기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 제도를 통해 이스라엘의 사회 정의와 긍휼 그리고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훈련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제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더 많은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불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한 제사장들은 성전에 드린 십일조를 개인 주머니로 빼돌렸습니다. 이것 역시 십일조를 강요하기 위해 성경말씀을 제멋대로 이용하는 목사들의 탐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불신앙입니다. 십일조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물질에 대한 탐욕이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수단이 된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율법이 되고 맙니다.


아브람을 맞이하러 나온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빼앗아 간 재물은 가져도 좋지만 붙잡혀갔던 사람들은 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물론 아브람이 전쟁을 통해 되찾은 재물과 사람들이 소돔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의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줄 의무는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가지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돔 왕은 차마 빼앗긴 재물을 돌려 달라고 부탁하지는 못하고 사람들만이라도 돌려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


아브람은 소돔 왕이 부탁대로 붙잡혀간 소돔 사람만 돌려주어도 대단한 큰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소돔 왕이 빼앗긴 모든 것을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소돔 왕의 재물은 실오라기 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브람이 왜 이런 결정을 했습니까? 창세기는 이것에 대해 아브람은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거둔 승리를 내 힘과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4:23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자신이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전리품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나섰던 아모리 족속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은 가져 갈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전리품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과 함께 전쟁을 나섰던 아모리 족속들에게는 저들의 방식대로 저들이 가져야 할 몫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14: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사건입니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재물을 포기하는 아브람의 행동과 태도가 대단히 훌륭하고 선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믿음 좋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믿음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자신의 믿음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강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차별 이른바 인종차별, 민족차별, 빈부차별 장애인 차별, 종교차별, 여성차별, 소수자 차별 등은 모두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다스리고 지배해야 한다는 약육강식이라는 세상의 질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난 주 저는 세상 질서에 저항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세상이 만들고 세뇌하고 있는 약육강식이라는 악한 세상 질서에 저항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세상에서 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아브람이 전쟁을 하는 목적이 달랐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힘 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 돈 많은 사람이 되려는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출세해서 남주냐!”며 출세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출세해서 남주자!”는 마음으로 출세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서 출세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벌어서 남주냐!”며 돈을 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돈 벌어서 남 주자!”는 마음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웃들을 돕기 위해 그리고 함께 잘 살기 위해 돈 벌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해서 남주냐!”는 마음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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