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창세기40-나그네로 나타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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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로 나타나신 하나님

창세기 18:1-15

 

창세기 강해 4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81절로 15절의 말씀을 가지고 나그네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8장 이전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모든 사건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특정한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까? 신비한 음성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오로지 마음의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음성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12:7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15: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17:1 아브람의 나이 아흔 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신비한 음성으로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눈이나 귀로는 보고 들을 수 없는 형상이 없으신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형상이 없으신 영이시라는 사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지만 형상이 없으시기에 우주보다 크시며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은 우주 만물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라고 합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39:7-8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여러 번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지만 아브라함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신비한 음성으로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18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또 다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8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다음부터 살던 지역입니다.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신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루 가운데 가장 더운 대낮에 자신의 장막 그늘 아래에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는 지역에서 여름 한 낮의 기온은 화씨로 120도 섭씨로는 50도 이릅니다. 이 정도의 기온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는 그 어떤 활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온도입니다. 그때 장막 그늘에서 쉬고 있던 아브라함은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저 멀리로 낯선 사람 세 명이 여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여행하는 나그네를 발견한 아브라함은 즉시로 그들에게 달려가서는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그냥 지나가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무더운 사막에서 여행하는 나그네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선한 물과 음식 그리고 휴식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에게 물을 가져다주어 목을 축이고 지친 발을 씻게 할 것이며 비록 변변찮은 음식이지만 자신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새 힘을 얻은 다음 길을 떠날 것을 부탁합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한 부탁에 나그네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18:3-5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대단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에는 무더운 사막을 여행하다 지친 나그네들이 아브라함의 장막을 발견하고는 그의 장막으로 달려가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8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오히려 무더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를 먼저 발견하고는 자기에게 여행에 지친 나그네들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나그네들이 그렇게 부탁하시니 사양하지 않게 잠시 대접을 받고 가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십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고대 사회에서 낯선 나그네는 경계의 대상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이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왜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합니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강도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 나그네이며 낯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무법천지 아브라함 시대에 낯선 나그네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더욱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도대체 왜 낯선 나그네들을 먼저 찾아가 영접하며 자신의 집으로 모셔 와서는 극진한 대접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한 것은 그들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천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은 뛰어난 영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그네를 보고는 단번에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그네로 변장한 하나님과 천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어 극진하게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저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사막을 여행하는 세 명의 나그네들을 보고는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면 굳이 하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이 사람으로 변장하신 하나님과 천사라는 사실을 알아챘더라면 굳이 나그네들을 사람처럼 대접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에게 사람을 대접하듯 발을 씻게 하고 음식을 대접한 것을 보면 그는 나그네들을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로 여겼다기보다는 자신이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나그네로 여긴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무더위 가운데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의 천사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무더운 날씨에 목숨을 걸고 여행을 하는 나그네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대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에서부터 가나안 땅까지 목숨을 걸고 여행을 했던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와서는 기근을 통해 또 다시 목숨을 걸고 이집트까지 피신을 가야 했던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은 무더위 가운데 여행을 하는 나그네를 외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정한 일이라가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무더위 가운데 여행을 하는 나그네를 외면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여행을 하다 살든지 죽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푼 것은 나그네를 천사로 여겼다기보다는, 나그네를 자신이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나그네로 나타나신 의미를 분명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나그네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신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극진하게 나그네들을 대접합니다. 아내 사라에게는 빵을 굽게 하고 하인에게는 살진 송아지 한 마리를 잡게 합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나그네들에게 대접하고 나그네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곁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하였습니다.


낯선 사람, 낯선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대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령 낯선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거절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 와서는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칭찬받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생색을 내거나 우쭐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나그네들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저들에게 감사해 합니다.


나그네를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환대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환대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나그네 환대는 사소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지키면 좋고,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일이 아닙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가르침이었습니다.


신명기서를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기를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주님이라고 가르칩니다.


10:17a (새번역)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너희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시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세상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참 주님이라고 선포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크신 권능의 하나님이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말이 좋아 나그네이지 지금으로 치면 나라 없이 떠도는 난민들입니다.


10:17-18 (새번역 )그 분만이 크신 권능의 하나님이시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도 그러했지만, 모세가 살던 시대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은 있었지만 그 어떤 신도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들을 돕는 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신들은 모두 힘 센 사람들을 위한 신이며, 부자들을 위한 신이고, 제물을 많이 바치는 사람들의 신입니다.


하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사람들, 갈 곳이 없이 방랑하는 사람들의 주님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렇기에 하나님은 높고 뛰어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나그네에 대한 사랑으로 결론짓습니다.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은 나그네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이 되어 주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10:19 너희가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너희도 한 때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구약성경의 가르침만이 아닙니다.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나그네는 단순히 문자 그대로 갈 곳을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여행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나그네는 약한 자, 가난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를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역시 약한 자, 작은 자, 가난한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최후의 심판 날에 예수님께서 의인들은 오른쪽으로 죄인들은 왼쪽으로 나눈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오른쪽 의인들은 영원한 삶으로, 왼쪽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의인과 죄인을 나누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른쪽 의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오른쪽 의인들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자신들이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왼쪽 죄인들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왼쪽의 죄인들이 뭐라고 따집니까? 자신들이 언제 주께서 굶주린 것을 보고 돕지 않았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도 외면했으며, 나그네 되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아보지 않았느냐며 항변합니다.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신실한 종교인들 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은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자신들은 주님을 위해 많은 것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책망하십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자신들은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사람 하나에게 나누고 베푼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신들은 주님을 위해 많은 것을 했다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25:4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25:4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2001813, 저와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세 살이 지난 상준이를 데리고 타코마로 이민을 왔습니다. 이민을 오며 가져 온 것이라고 이민 가방 두 개에 들어있던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습니다. 교회에서 준비해준 냄비 하나에 밥을 해서는 신문지를 깔고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 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의 미국인 부부가 어찌어찌 저의 가정의 소식을 듣고는 꽤 많은 음식재료와 쌀, 전기밥솥과 그릇을 사다 주셨습니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환대를 받은 것은 평생 처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도움에 너무나 고마워 나중에 먹고 살만해 지면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이 저희 부부에게 하는 말이 당신들에게 갚아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혹시 나중에 형편이 되면 당신들이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받은 도움을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제가 받았던 도움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사랑보다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환대를 베풀게 하시고 환대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환대를 베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요? 두 사람이 주고받는 환대는 두 사람의 환대로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흘러 보내는 환대와 사랑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대와 사랑을 누리게 합니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는 관계보다는 누군가에게 베푼 환대가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그나마 잘한 것 하나가 있다면 월드비전을 통해 교인 한 가정마다 한 명의 아이들을 도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우리교회 선교사역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헌금을 지출한 사역입니다. 하지만 지출한 헌금에 비하면 생색이 나지 않는 사역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기에 누구에게도 생색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것이 우리교회의 가장 귀한 사역이 아닌가, 예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린 사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99세의 아브라함과 89세의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절망적인 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무더운 날씨에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를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 왕을 대하듯 환대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 순간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대접하였던 낯선 나그네들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었으며 천사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신비한 음성으로만 들었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눈앞에 사람의 모습, 그것도 나그네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각과 교리를 산산이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공중을 날아다니거나 신묘한 축지법으로 종횡 무진하는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종교의 교리 안에 힘없이 감금된 포로 또한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만나는 낯선 자의 모습으로 나그네의 모습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때때로 만나는 낯선 사람을 그냥 지나치거나 아무런 감정 없이 대하면 말 그대로 그 사람은 낯선 자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대접하면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한 창세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더위 가운데 지친 모습으로 여행을 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예수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약한 자, 보잘 것 없는 자, 가난한 자를 무시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그들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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